아이디 비밀번호 로그인 | 회원가입
삼법인 三法印
http://www.templevill.com/

mcidsee8512    
애국 (mcidsee8512)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과 개인의 삶 사이에 균형이 머무는 곳,
일반게시판
삭제
에라이 !!! 당신같...
이글을 어떻게 읽으셨나...
에라이 !! 정신들 ...
고맙습니다. 오랫만에...
반갑습니다.
글로벌 삼성을 이렇게 ...
다녀가심에 고마움을 전...
글 잘읽었습니다. 묘선...
인간의 존엄을 되찾은 ...
吏??由??????
해동마을
바람
흰여울 rapids
연승. 성원스님
활구참선 수행
도라지꽃
korea
문수행
지혜림 나연실
 애국
청와대 감상하세요
20대 윤석열대통령이 취임을 하며 개방된 청와대는 74년 영욕의 시절을 끝마치고 시민들에게 자리를 내준 것이지요.

74년이면 1948년 건국 이후를 말하는데 엄밀히 얘기하자면 일제강점기 이전 부터이니 150년도 훨씬 넘는 세월 동안 닫혀 있던 금단의 땅이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도 청와대를 개방하려고 노력은 해왔는데 이에 개인적으로 2010년에 청와대와 칠궁을 어렵게 예약하여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요.

물론 당시는 청와대 앞 부분만 멀리서 구경하는 수준이었고 지금처럼 청와대 경내와 뒷편의 북악산까지 전면개방은 꿈에도 생각할수 없는 일이었지요.

청와대 경내를 속속들이 구경하고 뒷편의 북악산까지 오르니 그져 감격스러울 뿐!

 

잠시 청와대 역사를 살펴 볼까요.

서울 북쪽, 북악산 아래에 있는 청와대(靑瓦臺)는 고려때에 남경(南京)으로 별궁(別宮)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이 되었습니다.

고종 5년(1868)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문무가 융성하길 기원하는 의미로 경무대(景武臺)라 이름 붙였으며  일제강점기 이 자리에 총독관저가 들어섰고 해방후에는 미군정 사령관이 머물기도 했으며,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후에는 대통령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1960년 기와집이라는 뜻의 청와대로 이름이 바뀐 역사가 있습니다.

 

청와대를 둘러보니 참으로 천하제일의 명당터에 구중궁궐처럼 잘 꾸며 놓았네요.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한 곳에 있고, 온갖 수목초화가 잘 가꾸어져 있으니 이만한 천국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며 정말 신비롭고 별천지 같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라도 이 안에 한번 묻히면 초심을 잃어버린채 나태의 늪으로 빠질수밖에 없는 그런 분위기이니

이곳에서 존경받는 대통령이 탄생할수 있을까요?

74년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려준 조치는 정말 획기적이요 잘한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2022.5/10(화)  20대 윤석열대통령 취임을 시작으로 전면개방된 청와대.

 

 

개방된 청와대를 보기 위해 걷는 효자로.

옛날 전차가 다녔고 1960.4/19(화)에는 경무대로 향하던 많은 젊은이들이 흉탄에 쓰러진 역사적인 장소이지요.

 

 

정면에 북악산이 바라보이는 청와대 입구 삼거리.

 

 

청와대 앞 분수대.

뒷편으로 북악산 아래에 자리한 청와대가 보이기 시작.

 

 

도로를 건너 영빈관 앞의 영빈문에서 기히 예약한대로 출입 체크.

 

 

청와대 관람순서는 영빈관, 본관, 수궁터, 관저, 오운정, 미남불, 침류각, 상춘재, 녹지원, 춘추관, 북악산, 칠궁까지 .

욕심이 많다보니 오늘 전체적으로 모두 둘러보려 합니다.ㅎㅎ

 

 

예약바코드를 체크 후 영빈문을 입장하면 영빈관.

국빈이 방문했을때 우리나라를 알리는 민속공연과 만찬 등이 베풀어지는 공식행사장으로 이용되었던 영빈관.

 

 

원래 이 자리는 1893년(고종 30) 경농재(慶農齋)를 짓고 황제가 친히 농사를 지으며 풍년을 기원했던 곳이라고.

영빈관은 1978년 처음 지어졌으며 지금의 건물은  2000년 6월에 다시 지은 건물로 이때 칠궁 영역을 잠식하여 논란이 되기도.

 

 

영빈관 내부 모습.

 

 

영빈관에서 낮은 경사길을 오르면 본관.

 

 

낯익은 청와대 본관.

청와대를 상징하는 파란 기와가 북악산과 더불어 한폭의 그림과 같네요.

본관에는 대통령집무실, 국무회의가 열리는 세종실, 정상회담장으로 사용되는 집현실을 비롯해 충무실, 인왕실, 무궁화실 등 기능별로 다양한 공간과 회의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1991.9/4 완공되어 뉴스로 보도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 넘었네요.ㅎㅎ

 

 

본관과 2개의 부속건물에는  100년 이상을 견딜수 있는 총 15만개의 전통청기와가 덮여 있다고.

본관 앞 잔디마당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각종 야외행사장으로 사용.

 

청와대 본관 앞 대정원의 연단 모습.

 

 

청와대 본관 입구.

 

 

정면에서 바라본 본관.

 

 

본관 앞에 설치된 표석.

청와대터의 역사성과 본관, 관저를 건립하게 된 배경과 준공시기를 말해주고 있네요.

 

"청와대의 이 터전은 고려조의 이궁으로 조선조 경복궁의 후원으로 천년에 걸친 역사의 숨결이 깃든 곳이다.

일제가 우리의 옛 건물들을 헐고 이곳에 지은 총독의 집을 국가원수가 건국 이후 이제껏 써왔다.

노태우대통령은 1988년 12월 17일 민족문화의 전통을 잇고 드높아진 나라의 위상에 어울리는 청와대를 신축토록 하였다.

관저가 1990년 10월25일 완공되고 본관이 1991년 9월4일 준공되니 천하에 으뜸가는 복지 위에 겨레의 앞날을 무한히 밝혀 줄 청와대가 새로 지어졌다."

 

 

본관 앞에서 바라본 대정원.

 

 

호화롭게 시설된 본관 로비.

 

 

한반도 그림이 걸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본관 2층에서 처음 만나는 충무실.

대규모 인원에 임명장을 수여하거나 회의를 하고, 외빈이 왔을때 만찬, 공연을 하던 다용도 공간.

각부처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던 곳이 이곳이었군요~~!!

 

 

간담회나 오찬, 만찬이 열리던 소규모 연회장인 인왕실.

인왕실에서는 외국 정상 방한때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장소로도 활용.

 

 

인왕실 중앙벽에 걸린 그림.

부산항 일대를 그린 그림인 모양인데 탐 나는데요.ㅎㅎ

 

 

2층에 있는 대통령집무실.

본관의 핵심공간으로 대통령이 업무를 보고 소규모 회의도 주재하던 장소.

 

 

대통령 책상과 1인용 탁자, 회의용 탁자.

 

 

대통령집무실의 회의용 탁자.

이곳에서 장관들에게서 보고를 받거나 수석들과 회의를 하고 업무지시도 했겠지요.

 

 

대통령 접견실.

대통령과 외빈이 만나는 장소.

 

 

황금색 십장생문양도가 걸린 대통령, 영부인 자리.

아주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이 탁월합니다.

 

영부인이 사용하던 무궁화실.

 

 

외빈을 만나거나 집무실로 쓰였으며 역대 영부인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모습.

 

 

역대 영부인들의 얼굴들.

앞의 세분을 빼곤 모두 낯익은 모습들이네요.

 

 

청와대 정문에서 바라본 경복궁 신무문.

예전에는 신무문에서 멀리 떨어진 본관을 보곤 했는데 거꾸로 보니 감격스럽네요.ㅎㅎ

 

 

본관과 수궁터 사이의 소정원.

 

 

소정원에 있는 불로문.

 

 

영빈관, 본관을 본 후 소정원을 통해 수궁터로 갈 차례.

 

 

언덕을 이룬 수궁터 가는 길.

 

 

천하제일복지인 옛 경무대터(혹은 수궁터).

삼각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북악을 거쳐 경복궁 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이 지나는 이곳은 일찌기 천하제일의 명당자리.

 

구 본관터(수궁터)에 있는 740년 나이의 주목(朱木).

740년이면 고려 충렬왕 재위기인 1280년이니 살아 천년, 죽어 천년간다는 주목이 청와대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네요.

 

 

 

청와대 구본관터, 천하제일복지 표지가 있는 옛 경무대터.

조선시대에는 궁궐을 지키는 군사시설인 수궁(守宮)이 있어 수궁터라고도 불리지요.

구본관은 1948년 8월부터 1990년까지 대통령관저로 사용되다가 1993년 8월에 철거되었습니다.

 

 

경무대(구 본관)터에 대한 안내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삼각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북악을 거쳐 경복궁 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이곳은 일찌기 명당으로 알려져

고려 숙종 9년(1104) 왕실의 이궁이 세워졌고, 조선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으로 왕궁을 지키기 위한 수궁(守宮)과 융문당, 융무당, 경농재, 벽화실, 오운각 등 총 232칸의 건물과 임금이 친히 논을 일궈 국사의 근본임을 일깨운 8배미의 논이 있었다.

이 가운데 융문당과 융무당이 있던 높은 터를 경무대라 불렀다

예로부터 천하제일복지라고 알려졌던 이곳 명당터에 일제는 1939년 7월, 총독관저를 건립하여 우리의 민족정기 단절을 획책함으로써 이 건물은 경복궁 내의 조선총독부청사와 더불어 외세침탈의 상징이 되었다.

총독관저는 해방후 1948년 3월까지 미군정 사령관 숙소로 사용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는 초대 이승만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들의 집무실 및 관저로 이용되었으나 1990년 10월, 관저를 새로 건축했고 다음해 9월에는 본관 건물을 새로 지어 옮김에 따라 빈 집으로 남게 되었다.

1993년 11월, 민족정기를 바로 잡고 국민들의 자긍심을 되살리기 위해 구 총독관사 건물을 철거한 후 옛 지명 그대로 복원해 원래 이 터의 이름을 따서 경무대터라고 하였다."

 

 

정원으로 조성한 경무대터에 있는  절병통, 받침돌.

 

 

사진의 절병통은 1983년 구본관 남쪽에 현관을 지으면서 기와지붕에 올렸던 장식.

절병통은 한옥지붕중 모임지붕 중심에 놓는 호리병 모양의 장식을 말합니다.

1993년 철거 당시 구본관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그 자리에 남겨둔 것이라고 하네요.

 

 

경무대터에서 북동쪽으로 100여 m만 올라가면 대통령관저.

 

 

관저 주변에는 익어가는 사과가 탐스럽네요.ㅎㅎ

 

드디어 청와대 높은 곳에 자리한 대통령 관저~~!!

관저는 1990년 10월에 건립되었으니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관저 정문인 웅장한 인수문(仁壽門).

 

 

인수문에서 바라본 ㄱ자 모양의 관저.

관저는 본채, 별채,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동향을 하고 있는 전면의 건물이 대통령 생활공간인 본채이며  침실은 예상외로 왼쪽 끝.

 

 

본채의 현관인데 벌써 퇴락한 모습이 역력~!

외부만 볼수 있을뿐 대통령 가족이 살던 내부는 볼수 없으니 다소 아쉬운 일.

 

 

관저 잔디밭 한켠에 있는 아담하고 예쁜 한옥은 사랑채인 청안당(淸安堂).

 

 

청안당은 맑고 편안한 곳이라는 뜻이니 대통령 가족들이 차를 마시며 여가를 보내던 곳으로 생각됩니다.

 

 

인수문을 들어서며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접견행사 공간인 별채.

정남향으로  접견실, 만찬장, 경호원실 용도.

 

 

관저의 끝에서 바라본 인수문 방향.

앞쪽에 너른 잔디밭이 무척 인상적이네요.

 

 

대통령의 드레스룸이었다고.

내부에는 들어갈수 없고 밖에서 바라본 모습.

 

 

다소 옹색한 관저 뒷편.

바위산을 깎아내고 집을 지었으니 난공사였을듯.

 

 

관저 뒷편의 작은 샘.

맑은 물이 흘러내리니 대통령들이 가끔 이용했을것 같네요.

 



 
/tbody>

애국 | 2023.03.12 20:23:57 | 조회수(1300)
Today 424 Total 1943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