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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일상생활에서의 바른 견해(1/2)

 

삶속의 불교.jpg

 

2장 일상생활에서의 바른 견해(1/2)

   


붓다의 가르침은 사람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어떤 방식으로 붓다의 가르침이 사람들로 하여금 선행을 하도록 하는가? 권위 있는 사람이 “집착하지 말고 선행을 하라”고 했다고 해서 우리가 선행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선한 얘기를 들으면 자극을 받아서 어느 정도까지는 선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선행의 근원은 우리 내면에 있다. 정신이 행동을 결정한다. 만일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면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원인을 이해해야만 한다. 선행을 해야 하는 이유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더욱 더 선한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도와줄 수 있다.

     

정신은 행동을 하게 하는 근원이다. 그러므로 행동의 겉모양만 보고 선행의 정도를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행에도 많은 단계가 있다. 그것은 선행의 동기가 되는 정신에 의존한다.

     

어려운 사람에게 돈을 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자만심이 없다거나 다른 이기적인 동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만심  없이 베푸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주는 등 아직 집착이 남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집착도 없이 순수한 자애의 마음으로 베푸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보다 선한 보시다.

    

이런 걸 그렇게 자세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지 갸우뚱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다양한 마음의 종류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되며 특정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면 도움이 된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마음은 항상 변하며 매우 빠르게 다른 마음이 뒤를 잇는다. 만일 우리가 서로 다른 마음을 구분할 수 있으면 선행을 할 때조차도 불선심이 바로 뒤이어 따를 수 있다는 걸 이해할 것이다.

 

"유익한, 선한(Wholesome)"은 빨리어 “꾸살라”를 번역한 말이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선한 행동이란 그 행동을 하는 순간 혹은 그 이후에 자기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라는 말이다.

      

외투 경(M88)에는 선한 행동과 선한 말, 선한 생각에 대해서 나온다. 파세나디 왕은 아난다 존자에게 불선행과 선행의 본질에 대해서 물었다. 다음 대화에서 몸으로 하는 선한 행위에 대해 읽을 수 있다.

     

그러면 존자시여, 어떤 것이 몸으로 하는 유익한 행위입니까?

대왕이시여, 비난 받을 일이 없는 몸의 행위입니다.

존자시여, 그러면 어떤 것이 비난 받을 일이 없는 몸의 행위입니까?

대왕이시여, 악의가 없는 몸의 행위입니다.

존자시여, 그러면 어떤 것이 악의가 없는 몸의 행위입니까?

대왕이시여, 즐거운 결과를 가져올 몸의 행위입니다.

존자시여, 그러면 어떤 것이 즐거운 결과를 가져올 몸의 행위입니까?

대왕이시여, 자신도 해치지 않고 다른 사람도 해치지 않으며, 그로 인해 해로운 법들이 줄어들고 유익한 법들이 증장하는 몸의 행위입니다.


   

선한 말, 선한 생각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가장 넓은 의미의 “꾸살라(유익한, 선한)”이다. 꾸살라에도 매우 여러 종류가 있으며 여러 강도가 있다. 바른 견해 즉, 지혜를 계발할 때의 선은 보다 높은 선이다.

     

지혜 혹은 바른 견해는 빨리어 빤냐를 옮긴 것이다. 빤냐는 책을 보고 공부해서 얻은 지식이 아니라 통찰력과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실재에 대한 바른 견해를 말한다. 지혜는 삶 속에서 계발된다. 지혜가 선심을 동반할 때, 그것은 매우 수준 높은 선심이다. 여러 수준의 지혜가 있으며 각 수준의 지혜는 그에 따른 과보를 가져온다.

     

안이비설신의를 통해 경험하는 정신적, 물질적 현상을 알아차리고 조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불교의 접근법이다. 이러한 접근법에 익숙하지 않다면 처음에는 좀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정신적, 물질적 현상을 조사하고 나면 그것이 우리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행동하는 다양한 방식을 이해할 수 있고 삶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을 것이다. 실재에 관해서 모호하거나 일반적인 용어로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왜냐하면 삶에서 경험하는 것에 대한 바른 견해는 그런 식으로 계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방법을 설교한 승려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내가 그 승려가 무엇을 말했는지 물으니 빨리어 ‘마음’에 해당하는 태국어 “citcai"라고 대답했다. 이 승려가 접근하는 방법은 옳다. 우리는 부처님의 전례를 따라야 한다. 사람들에게 선한 행동을 하라고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선한 행동을 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어떻게 하면 선한 행동을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선한 행동을 하는 근원인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빨리어를 번역한 말을 쓰는 것보다 빨리어 그대로 ‘찌따’라고 쓰는 것이 더 낫다. 왜냐하면 번역어는 그 용어의 뜻을 적합하게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citta'를 영어로 번역한 ’state of mind' 나 ‘mental state'는 무언가 머물고 변하지 않는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음에 대해서 배우고 나면 단 일초도 머무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마음은 일어났다가 곧바로 사라지고 다음 마음에 이어진다. 마음은 우리의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 즉, 마음은 우리의 행동을 조건 지운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접근하지 않는다. 사물의 겉모양을 보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외부세계 탐구에는 매우 앞서있지만 사람의 내면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사람들은 보고 듣는 데 주의를 기울이지만 보는 마음과 듣는 마음을 살펴볼 줄 모른다. 그들은 보고 듣는 기능을 하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보고 듣는 마음은 실재이므로 그에 대해서 더 많이 아는 것은 중요하다. 정신적 현상과 물질적 현상에 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비담마라고 한다. 아비담마는 실재하는 모든 것을 다룬다. 아비담마를 공부하면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뿐 아니라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많은 태국사람들도 아비담마에 대해서 배운다. 우리가 다양한 마음에 대해서 알면 더 선하게 살 수 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복수심을 느끼던 사람이 그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함에 따라 점차 극복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많은 태국 사람들은 아비담마에서 가르치는 실재에 대해서 알고 있고 일상생활에서 그들의 지식을 적용시키려고 한다.

     

외국인이 아비담마에 대해서 늘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태국 사람이 외국인에게는 아비담마에 대해서 잘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선심과 선심은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실재다. 이러한 실재에 대해서 더 잘 알려면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다른 사람을 돕기 전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완전히 알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겨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한 사람도 바른 견해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빤냐, 즉 지혜 혹은 바른 견해는 모든 번뇌와 슬픔의 뿌리가 되는 무지와 반대다. 지혜는 선심을 계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혜 없이 선행을 하는 것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무엇이 선심인지 혹은 불선심인지를 알고 선행과 불선행의 과보가 무엇인지 안다면 우리는 더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지혜도 많은 단계가 있다. 스승이 제자에게 감사와 정직함을 지닌 선심은 좋은 과보를 가져오고 탐욕과 성냄을 동기로 한 불선행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하면, 이것은 제자들에게 어느 정도 지혜를 갖게 하는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지혜와 함께하면 선심을 계발할 수 있고 더 많은 선행을 할 수 있다.

     

삶에서 즐기는 모든 것에서 무상을 안다면 매우 높은 수준의 지혜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안다면 좋아하는 것을 그렇게 집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사람들을 더 관대하게 하며 기꺼이 더 많은 다른 사람을 돕도록 자극한다. 뿐만 아니라 덜 이기적이 될 것이다.

     

이런 정도의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삶의 태도가 바뀌어 허례허식 없이 만족하며 살아갈 것이다. 또 집을 나와 집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이는 출가하여 승려가 된다는 말이다. 출가승의 생활은 쉽지 않다. 가족 없이 살며 작은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여섯 가지 청정 경(M112)에 출가자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런 나는 나중에 재산이 많건 적건 간에 다 버리고,

일가친척도 많건 적건 간에 다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했습니다.“


 
붓다는 사람들이 안이비설신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에 너무 집착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에 대해서 얘기하셨다. 수바 경(M99)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에 대해 나온다.

   

“바라문 학도여, 이러한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즐거움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에 짝하고 매혹적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이 있다.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다...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다...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다...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다. 바라문 학도여, 이것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이다.

바라문 학도여, 수바가 숲의 소유자이고 우빠만냐 성을 가진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재난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을 통찰함이 없이 그것을 수용한다.”

 

 

우리는 더 좋은 감각적 인상을 갖고 싶어 하고, 그것들에 너무 큰 중요성을 부여하고 집착한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감각적 즐거움이 진짜 행복이 아님을 잊는다. 마간디야 경(M75)에서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간디야여, 내가 전에 재가자였을 때 다섯 가닥의 얽매이는 감각적 욕망을 갖추고 완비하여 즐겼다.

....

그런 나는 나중에 감각적 욕망의 일어남과 소멸함과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를 제거하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열병을 없애고 갈증이 사라져 안으로 마음이 고요한 상태로 머물렀다. 그런 나는 다른 중생들이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에 사로잡히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열병에 불타고 감각적 욕망에 깊이 탐닉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부러워하지도 않았고 즐거워하지도 않았다."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한 즐거움보다 더 높은 행복이 있다고 아는 사람들은 고요함을 계발하려고 노력한다. 사마타에서 계발되는 고요함은 집착이나 성냄 그리고 다른 번뇌로부터 일시적으로 자유롭다. 붓다의 덕성을 생각한다든가 호흡을 알아차린다든가 자애와 같은 사마타 명상 주제가 몇 가지 있다. 어느 주제가 고요함을 가져올지는 개인의 축적된 성향에 달렸다. 사마타가 단순히 대상에 집중하는 것만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명상주제에 대한 바른 이해고, 명상주제에 의해 선한 고요함을 얻는 방법이다. 만일 선심과 불선심의 차이를 모른다면 고요함에 집착하기 쉽고, 그러면 사마타는 더 이상 계발되지 않는다.

   

해로움이 없는 유익한 선정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더 나은 선정의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사마타의 고요함은 명상주제에 온전히 몰입할 때 얻을 수 있고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선정의 몰입 즉, 자나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선정 상태에 있는 동안 우리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한 감각인상을 받지 않는다. 그 순간에는 감각에서 해방되어 더 높은 행복을 누린다. 깊은 선정에 들어가면 커다란 평온을 느낄 수 있고 이것은 어떤 열정에 사로잡히기 전까지 계속된다. 행복감을 넘어 평정의 상태에 도달한다. 그러나 마음이 선정에서 벗어나면 감각인상은 다시 나타난다.

    

사마타는 선심을 계발하기 위한 수단이다. 사마타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매우 평화롭고 우호적이다. 그들은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

   

하지만 사마타에서는 번뇌가 뿌리 뽑히지 않는다. 비록 선정에 있는 동안에는 감각인상에 속박되지 않을지라도 선정에서 나왔을 때는 여전히 집착한다. 자나는 지속되지 않고 무상하다. 더구나 선정의 행복에 집착하는 미세한 형태의 탐욕이 있다.

   

감각적 욕망에 탐닉하지 않을 때는 집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선정심에 수반하는 평온이나 선정의 행복에 여전히 집착할 수 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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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 00: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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