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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보라 - 십팔계(2)

 

법상.jpg

 

분별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보라

     

여러 사람이 똑같은 거리를 걸었을지라도 사람에 따라 그 거리에서 본 것은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똑같은 소리를 듣고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며, 같은 음식의 향기를 느끼면서 좋다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이처럼 육입처는 외부에 있는 육경이라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식대로 인식한다. 자기 마음에 끌리는 것만을 인식하는 것이다. 육근이 육경을 인식할 때 육근을 ‘나’라고 착각하는 육입처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육근을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육경을 인식할 때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가 원하고 욕망하는 방식대로 육경을 해석해서 보는 것이다.

 

‘나’라는 허망한 착각, 즉 아상이 생겨나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무엇이든 해석하려고 하지 않는가. 그것이 바로 아집이고, 욕망이며 탐욕이다. 육입처라는 의식에서 이처럼 아상과 아집, 욕망과 탐욕이 생겨난다. 그래서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자기 욕심대로 바깥 대상을 선별해서 차별적으로 분별해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상을 분별해서 인식하는 의식을 육식이라고 한다고 했다. 육식, 즉 마음은 언제나 대상을 분별해서 인식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 내가 관심가지는 것들과 관심 없는 것들, 나에게 도움 되는 것과 도움 되지 않는 것들을 분별해서 인식하기 때문에, 똑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우리의 식은 자기의 탐욕에 일치되는 것들만 받아들여 인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본다면, 똑같이 산행을 했는데, 건축업자는 나무의 쓰임새만 보며 걸을 것이고, 사진작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는 마음으로 산길을 볼 것이며, 꽃 연구가는 꽃에만 눈길이 갈 것이다. 또한 마음이 괴롭고 우울한 사람은 숲길 또한 음침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마음이 기쁨에 넘쳐 있는 사람은 생기로운 숲과 달콤한 공기, 맑은 자연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산행 이후에 각자가 본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처럼 식이라는 분별심으로써 세상을 의식하게 되면, 저마다 자기의 욕심과 탐욕이 원하는 것들을 기반으로 대상인 명색을 인식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식대로, 자기가 만들어 놓은 대상을 인식할 뿐이다. 결국, 육식의 인식 또한 환영에 불과하며, 온전한 의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수많은 경전이나 법문들에서는 ‘분별심을 버려라’는 무분별의 가르침을 설파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왜곡해서 볼 때, 왜곡된 자아관(안계 내지 의계)과 세계관(색계 내지 법계), 인식관(안식계 내지 의식계)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로 인해 온갖 분별, 판단, 비교, 평가 등이 생겨나며, 그 결과 우리의 삶이 복잡하고 괴롭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 삶의 모든 괴로움은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괴로움은 사실 진짜 괴로움이 아니라 내가 괴로움이라고 분별, 왜곡하여 인식한 것일 뿐이다. 즉, 내 스스로 외부의 대상을 왜곡하고 분별해서 인식한 뒤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그 인식을 대상으로 괴로움을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내 내면에서 일어난 허망한 장난일 뿐이다. 진짜 괴로울 일이 있어서 괴로웠던 것이 아니라, 공연히 마음속에서 의식으로 조작해 낸 거짓 괴로움을 가지고 그동안 우리는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안계 내지 의계)가 있고, 세상(색계 내지 법계)이 있으며, 내가 세상의 일로 인해 괴로웠다고 생각하며(안식계 내지 의식계) 세상을 원망하거나 못난 나 자신을 원망하고 살았지만(苦), 사실 알고 보니, 이 모든 것이 허망한 의식의 장난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진짜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괴로워 할 ‘나’도, 괴로움을 주는 ‘대상’도, 괴롭다는 ‘의식’도 모두가 식의 장난일 뿐이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허망한 식일 뿐이다. 그래서 뒤에 대승불교의 유식사상에서는 ‘오직 식일 뿐’이라고 역설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육식이라는 아상에 기초한 욕심으로 조작하고 분별하며 왜곡해서 보던 방식을 그저 단순히 ‘있는 그대로를 그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있다. 분별심으로 보지 않고 무분별로써,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데 있다. 다시말하면, 육식이 ‘나’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그 어떤 것도 자신과 동일화하지 않은 순수한 의식으로써 다만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식이 ‘나’라는 자기동일시가 없을 때, 아상과 아집과 탐욕이 사라지며, 그로인해 나와 세계를 구분 짓는 분별심이 사라지면, 그 분별해서 인식하던 허망한 식 또한 사라지게 되고, 비로소 그 때 여여하게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던 세상에 대해 아무런 시비도 붙이지 않고, 아무런 분별도 개입시키지 않은 채로 그저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바라보게 된다. 이것을 지혜라고 하며, 유식에서는 전식득지라고 하여, 허망한 식을 지혜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뒤에 팔정도에서 언급하겠지만 이와 같이 세상을 분별심으로 허망하게 인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보는 것을 정견(正見)이라고 한다.

 

십팔계를 관하는 수행, 계분별관

        

초기불교의 대표적인 선정 수행으로는 사념처가 있는데, 이 사념처 수행의 예비적 수행으로 오정심관이 있다. 오정심관은 탐욕, 분노, 어리석음, 아만, 분별이라는 다섯 가지 번뇌를 다스려 가라앉히는 수행법으로 부정관, 자비관, 인연관, 계분별관, 수식관을 말한다.

 

이 가운데 계분별관은 아만이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수행법으로 십팔계의 18가지를 관함으로써 이 모든 것에 고정된 자아가 있는 것이 아니며(무아) 이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흐르는 것(무상)일 뿐임을 알아차리는 수행법이다. 이 십팔계의 작용을 보고 이것이 ‘나’라고 생각하는 아만과 무지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수행법인 것이다.

 

눈으로 대상을 볼 때 인식이 일어난다. 여기에서는 십팔계 중에 안계, 색계, 안식계, 의계, 의식계가 함께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이 때 이 모든 계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본다면, 눈으로 대상을 볼 때, 눈동자가 갑자기 커진다거나, 초점이 흐려진다거나, 게슴츠레 해 진다거나 하는 등등으로 대상에 따라 우리의 눈동자도 변화하는데 이것을 관찰하는 것이 안계에 대한 관찰이다. 눈으로 보여지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 색경에 대한 관찰이며, 눈으로 대상을 볼 때 좋거나 나쁘다고 인식해서 보는 눈의 분별을 관찰하는 것이 안식계에 대한 관찰이고, 그러면서 의계와 의식계는 다른 들리고 냄새 맡아지고 감촉이 느껴지는 등의 나머지 감각활동의 도움을 받거나, 과거의 경험등을 떠올리면서 대상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비교하고, 분별하면서 인식하는 작용을 하는데 대한 관찰을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귀코혀몸뜻에서도 나와 대상, 그리고 인식작용 모두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계분별관의 수행법이다.

 

[붓다수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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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0 08: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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