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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생애와 사상』 붓다가 발견한 진리 연기법

 

붓다의 생애와 사상.jpg

 

붓다의 생애와 사상

붓다가 발견한 진리: 연기법

마성 스님 / 팔리문헌연구소장

 


불교철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교리가 연기법(緣起法, paticcasamuppada)입니다. 연기법은 모든 불교철학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무리 복잡한 불교교리도 연기법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흔히 “붓다는 법을 깨달았다.” 혹은 “바른 법[正法]을 성취했다.”고 말합니다. 붓다가 깨달았다고 하는 ‘법(法)’이란 바로 연기법을 말합니다. 붓다는 보리수 아래에서 이 연기법을 관찰함으로써 붓다가 되었던 것입니다.1) 

 

그러므로 연기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붓다의 가르침 전체를 이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연기의 원리를 터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붓다는 처음 깨달음을 이룬 직후, 이 법을 설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였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쌍윳따 니까야(Samyutta-nikaya, 相應部)]에 나오는 ‘권청(勸請)’ 설화가 바로 그것입니다.2) 이 경전에 의하면, 연기설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 첫째 이유는 이 법(法)은 심히 깊고 미묘하여 오직 지혜로운 자만이 능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유는 세상 사람들은 욕망을 즐기고, 욕망에 빠지고, 욕망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아함의 [상적유경(象跡喩經)]에서는 붓다가 깨달아 가르친 진리가 ‘연기법’이라는 것을 좀 더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3) 여기서 ‘본다’라는 것은 ‘이해한다’라는 뜻입니다. 즉 연기법을 이해하는 사람은 법(法)을 이해하고, 법을 이해하는 사람은 연기법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경전에서 붓다는 제자들에게 “법을 보는 자는 곧 나[붓다]를 보며, 나를 보는 자는 곧 법을 본다.”4)라고 하였습니다. 

 

연기(緣起)라는 말은 빨리어 ‘빠띳짜사뭇빠다(paticcasamuppada)’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단어는 ‘paticca’와 ‘samuppada’라는 두 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paticca’는 ‘… 때문에[緣]’, ‘… 에 의해서’ 또는 ‘말미암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samuppada’는 ‘태어남’, ‘형성(形成)’, ‘생김[起]’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연기란 ‘… 때문에 태어나는 것’, ‘…을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조건에 의한 발생’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모든 존재는 그것을 성립시키는 여러 가지 ‘원인이나 조건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원인이나 조건을 말미암아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역에서는 ‘연기(緣起)’ 즉 ‘말미암아 일어남’이라는 뜻으로 번역하는데, 잘 옮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쌍윳따 니까야]에는 ‘연기의 공식(公式)’ 혹은 ‘연기의 정의(定義)’로 알려져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Imasmim sati idam hoti,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Imassuppada idam uppajjati.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Imasmim asati idam na hoti,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Imassa nirodha idam nirujjhati.5)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6)

 

위 빨리어 원문에 대응(對應)하는 한역의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차기고피기(此起故彼起)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
차무고피무(此無故彼無)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7)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

 

위 인용문 팔리어 연기의 공식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형태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즉 "imasmim sati idam hoti, imassuppada idam uppajjati."는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또는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입니다. 그리고 "imasmim asati idam na hoti, imassa nirodha idam nirujjhati."는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또는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할 때 저것이 소멸한다.”입니다. 여기서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此有故彼有 此無故彼無]”라고 하는 것은 동시적(同時的) 의존관계를 나타낸 것이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此生故彼生 此滅故彼滅]”라고 하는 것은 이시적(異時的) 의존관계를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8) 다시 말해서 연기의 공식에는 무(無)시간적, 논리적 관계는 물론 시간적, 생기적(生起的) 관계가 고려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9) 이러한 인과관계를 계기인과(繼起因果)와 동시인과(同時因果)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불교 술어로 표현하면 연기의 계기성(繼起性, anupubba-jata)과 구기성(俱起性, saha-jata)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연기의 발생 원리는 계기성과 구기성의 양면(兩面)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인과론적인 종적(從的) 관계로의 해석은 계기성에 착안한 것이고, 인연론 중심의 논리관계로의 해석은 구기성에 착안한 것으로 보입니다.”10)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와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라는 구절로써 존재의 발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다.”와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라는 구절로써 존재의 소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그것을 형성시키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만이, 그리고 상호관계에 의해서만이 존재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결국 연기법이란 존재의 ‘관계성(關係性)’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연기(緣起)는 관계성(關係性)의 법칙(法則)이요, 상의성(相依性)의 법칙(法則)이며, 원인(原因), 결과(結果)의 법칙(法則)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기의 원리에 의하면 어떠한 존재도 우연히 생겨났거나 또는 혼자서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그 존재를 성립시키는 여러 가지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게 됩니다. 서로는 서로에게 원인이 되기도 하고 조건이 되기도 하면서 함께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존재를 성립시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변하거나 없어질 때 존재 또한 변하거나 없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전적으로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입니다. 그것은 공간적으로도 그리고 시간적으로도 서로 관계를 가짐으로써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홀로 존재하는 것도 있을 수 없고, 영원한 것도 그리고 절대적인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11)

 

연기법은 붓다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역시 붓다 이외의 다른 어떤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존재의 이법(理法)으로서 존재와 더불어 있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기법은 붓다와 같은 어느 한 사람이 세상에 출현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는 사실과는 관계없이 존재합니다. 붓다는 단지 이 법칙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경전에서는 붓다 자신이 이 사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제자가 이 문제에 대해 “세존이시여, 이른바 연기법은 세존께서 만드신 것입니까? 다른 사람이 만든 것입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붓다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비구들이여, 연기(緣起)란 무엇인가. 생(生)이라는 연(緣)에 의해 노사(老死)가 있다. 여래(如來)의 흥기(興起)와 불흥기(不興起)에 관계없이 그것은 상주(常住)의 계(界)이고, 확법(確法)이고, 정법(定法)이며, 연기성(緣起性)이다. 이것을 여래(如來)는 깨달았던 것이고 달성했던 것이다. 깨달아 도달하여 설명하고, 가르치고, 설시(說示)하고, 광설(廣說)하고, 분별(分別)하고, 명백히 함으로써 그대들은 그것을 보라고 말하는 것이다.12)

 

이 경전에 의하면, 연기설은 여래(如來)의 출세(出世)나 불출세(不出世)에 관계없이 고정(固定)된 법(法, 진리)이라는 것이다. 붓다는 이 연기설을 자신이 창작한 것이 아니라 발견하였을 뿐임을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서 붓다는 연기법의 발견자이지 발명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그는 존재의 법칙인 이 연기법을 처음으로 발견해서 그것을 자신의 문제를 위해, 그리고 중생들의 문제를 위해 응용하고 실천했을 뿐입니다.

 

이와 같이 붓다는 연기법을 옛 길[古道]의 비유를 가지고 설명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광야(曠野)를 여행하다가 옛 사람이 다니던 오래된 길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 길을 따라갔다가 사람이 살지 않는 옛 성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에는 왕궁과 동산과 목욕 못과 깨끗한 숲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옛 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모두 그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여행자는 옛 길과 옛 성을 발견했을 뿐이지 그 길과 성을 자신이 개척하고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붓다도 옛 사람들이 밟았던 길을 따라 수행한 결과 법(法)을 깨달아 붓다가 되었고, 그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가르쳐 많은 이익이 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13)

 

이 연기설은 붓다의 자각(自覺)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일찍이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진리였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연기설도 다른 사상과 마찬가지로 당시 사상계로부터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칼루파하나(David J. Kalupahana)는 이 연기설의 원형을 저 베다 전통에서부터 찾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인도의 사상가들은 붓다 재세시(在世時)와 그 이전에 변천(變遷)과 인과율(因果律)의 문제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을 내놓았다. 불교 이론은 이들 사상가들의 견해에 대한 종합, 흡수, 비평의 소산(所産)이다.”14)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연기법이 붓다가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와 무슨 관계가 있었으며 실제로 붓다는 연기법으로써 무엇을 해결했는가. 그리고 연기법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연기법이 진리라고 해도 붓다 자신의 문제와 관계가 없었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인간의 문제와 관계가 없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것일 뿐입니다. 연기법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붓다 자신의 문제를 포함한 우리 인간 모두의 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임에 틀림없습니다.15)

 

붓다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해결하고자 했던 것은 인생의 ‘고(苦, dukkha)’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그가 출가한 것도, 6년에 걸쳐 힘든 수행을 한 것도 그리고 성도(成道) 후 45년간 쉬지 않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 사람들을 가르친 것도 고(苦)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의 처음과 끝은 ‘고와 고에서의 해탈’이었습니다.16)

 

경전에서는 이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하고 있습니다. 잡아함의 [삼법경(三法經)]에서 붓다는 “(고의 문제가 없었다면) 모든 붓다 세존께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세상이 나왔다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모든 붓다, 여래께서 깨달으신 법을 사람들을 위해 널리 말씀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붓다는 그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나는 단지 고와 고에서의 해탈만을 가르친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붓다가 발견한 연기법과 고(苦) 문제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라든지, 또는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다”라고 하는 이 단순한 원리가 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

 

연기법의 입장에서 보면 고(苦)의 고유성(固有性) 또는 실재성(實在性)은 인정될 수 없습니다. 고는 신이나 절대자와 같은 어떤 존재가 우리를 벌주기 위해서 만든 것도 아니고 우연히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원인과 조건에 의하여 생긴 것입니다. 따라서 고를 발생시키는 원인과 조건을 제거해 버린다면 고도 사라지게 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17)

결국 연기법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응용해 고(苦)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붓다는 그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고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설명과 방법을 고안해 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지혜의 수준이나 그들의 성향, 또는 처해 있는 상황이 모두 달랐으므로 그것에 맞추기 위해 여러 가지 교리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다양한 교리들이 생겨나게 된 이유입니다.18)

 

그리고 붓다의 설법태도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붓다가 연기설을 설한 본래의 목적은 우리들 인간존재의 근저(根底)에 뿌리박고 있는 ‘고(苦, dukkha)’를 어떻게든지 해결하려고 설한 것이었습니다. 즉 고(苦)라고 하는 인간의 실존상황(實存狀況)을 극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경전에서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를 설하는 경우 반드시 ‘생노병사 우비고뇌(生老病死 憂悲苦惱)가 전고온(全苦蘊, keval‎‍a dukkhakhandha)의 집(集) 혹은 멸(滅)이다’라고 끝맺고 있음에 주목해야만 합니다. 이른바 고(苦)의 집(集)과 멸(滅)의 원리를 설명한 것이 연기설(緣起說)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연기가 말해진 본래의 목적은 단순한 일반적 현상보다도 오히려 인간의 고뇌가 어떠한 조건 원인에 의해 생겨나고, 어떠한 인연 조건에 의해 사라지는가 하는, 인생의 고락(苦樂), 운명(運命)에 관한 관계 항목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19)▣

 

 

Notes:

1) Vin. Ⅰ, p.1f; S. Ⅱ, p.10; Ud. p.1. 하지만 漢譯 阿含經에서는 ‘붓다가 四聖諦를 三轉十二行으로 수행한 결과 無上의 正覺을 얻었다’고 술회하는 대목도 있다. 大正藏 2, pp.103下-104上(雜15, 379); 大正藏 2, p.107下(雜15, 402) 참조.
2) S. Ⅰ, p.136.
3) M. Ⅰ, pp.190-1: “Yo paticcasamuppadam passati so dhammam passati, Yo dhammam passati so paticcasamuppadam passatiti.”
4) S. Ⅲ, p.120: “Yo kho Vakkali dhammam passati so mam passati, yo mam passati so dhammam passati.”
5) S. Ⅱ, p.28, 65, 70, 78; cf. M. Ⅰ, p.262, 264, Ⅲ, p.63; Ud. p.2.
6) 이것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기도 한다. 즉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할 때 저것이 소멸한다.
7) [雜阿含經] 권10, 大正藏 2, p.67上; [雜阿含經] 권12, 大正藏 2, p.85上.
8) 木村泰賢 著, 朴京俊 譯, [原始佛敎 思想論] (서울 : 경서원, 1992), p.103.
9) 후지타 코타츠 外, 권오민 옮김, [초기, 부파불교의 역사] (서울 : 민족사, 1989), p.73.
10) 최봉수, [원시불교의 연기사상 연구] (서울 : 경서원, 1991), p.266.
11)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불교사상의 이해] (서울 : 불교시대사, 1997), p.77.
12) S. Ⅱ, p.25: “Katamo ca bhikkhave paticca-samuppado, Jatipaccaya bhikkhave  Jaramaranam uppada va Tathagatanam anuppada va Tathagatanam, thita va sa dhatu dhammatthitata dhammaniyamata idappaccayata. Tam Tathagato abhisambujjhati abhisameti, abhisambujjhitva abhisametva acikkhati deseti pannapeti patthapeti vivarati vibhajati uttani-karoti passathati caha.”
13) “이렇게 하여 내가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法에 있어 眼이 生하고, 智가 生하고, 慧가 生하고, 明이 生하고, 光이 生하였다. 흡사 이것은 어떤 사람이 曠野를 방황하다가 先人이 밟은 古道, 古徑을 발견하고는 그 길을 거슬러감에 따라서 先人의 마을, 선인의 王城, 庭園, 森林, 蓮池, 墻壁 등을 갖춘 선인의 주소를 찾아낸 것과 같다.” [S. Ⅱ, pp.104-6]
14) David J. Kalupahana, Causality, Preface.
15)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앞의 책, p.81.
16)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81.
17)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82.
18)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82.
19) 水野弘元, [原始佛敎] (京都 : 平樂寺書店, 1956),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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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08: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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