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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숙업 / 목우스님

스님말씀 조사어록.jpg


눈꽃이 하얗게 핀 산이 아름답다.
 
5월이 되어야 얼음이 녹는 이 곳 강원도 평창의 금당계곡에서도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한참을 더 들어와야 하는 이곳에 머물기 시작한 지도 어느듯 4년째가 된다.
 
양지바른 뜰 앞에는 작은 채마밭과 연못이 있고 양지당 바로 뒤로 떨어지는 폭포는 마셔도 좋고, 뜰 옆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그냥 퍼 마셔도 좋은 곳이 이곳이다.
 
그러니까 내 나이 열두 살 때였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은 인생의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는 하루종일 농사를 지으시고도 밤에는 잠도 주무시지 않으신 채 밤새 '옴마니반메훔'을 염하신 분이셨다.
 
가실날을 미리 아셨고, 12월 22일 시계바늘 세 개가 딱 12시에 겹치는 그 순간 호홉을 멈추셨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불가사의다.
 
아니 부처님으로 여겨진다.
 
나는 열세 살 나이에 출가를 결심하고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산 속 암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찾아든 산중의 작은 암자 댓돌 위에는 고무신 한 켤레가 놓여져 있었다.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으며 한 자리에 돌부처처럼 서서 스님이 나오길 기다렸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방문을 열고 나온 일흔 살이 넘은 노비구니스님이 깜짝 놀라시며 "무슨일로 왔느냐?"고 물으셨다.
 
"도를 닦으러 왔습니다."
 
"도를 닦으려면 망월사로 가라."
 
열세 살의 어린 소년은 망월사로 출가를 했다.
 
처음엔 부목 소임을 맡아 나무를 하고 청소를 해야 했다.
 
그런데 어린 행자의 눈에도 스님들이 쓰시는 용상방(龍象榜)이 너무나 멋져 보였다.
 
붓과 종이가 귀했던 시절인지라 나뭇가지나 못을 가지고 땅바닥에 용상방을 흉내내어 글씨를 써보곤 했다.
 
달리 한문을 배우거나 글씨를 배운 적이 없었기에 옥편을 뜯어 그것을 그대로 써 보기도 하고, 글자가 보이는 대로 원문과 해석을 무조건 외웠으나 보면 잊고 들으면 잊어버렸다.
 
망월사는 선방이어서 책을 안 보는 터라 누구 하나 한문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글씨 쓰는 것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
 
구할 수 있는 서첩은 다 구해서 써보았다.
 
15년을 그렇게 했다.
 
군대 제대 후 3년 동안은 아예 일어나지 않고 않은 자리에서 글씨만을 썼다.
 
그 때문에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
 
그야말로 다음 생이나 기약해야 할 형편이 되었다.
 
죽기 전에 부처님께 기도나 올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망월사 부처님 전에 100일 지장기도를 발원했다.
 
"어떤 사람 발심하여 경전을 외우고 미혹한 이들을 제도하여 피안에 이르게 하고자 할새 비록 뛰어난 큰 원을 세웠으나 읽자마자 금방 잊고 막힘이 많은 것은 이 사람의 업장과 미혹 때문에 대승경전을 읽고도 기억하지 못하네.
 
향과 꽃과 의복과 음식과 여러가지 진귀한 것으로 지장보살께 공양하며, 청정수를 지장보살 앞에 놓아두고 하루 낮 하루 밤을 지난 뒤 마시며, 소중한 마음을 내어 오신채를 삼가고 술과 고기, 사음과 망어를 삼가며, 21일 동안 살생하지 말라.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의 이름을 외우면 곧 꿈 속에서 가없는 몸을 나타내나니 깨고 나면 문득 눈과 귀에 총명 얻으리, 경전의 가르침이 귓가에 지나만 가도 천생이고 만생이고 길이 잊지 않으리, 이것은 지장보살의 불가사의한 힘이라."
 
지장경을 보니 불망념지(不忘念地)라는 것이 있었다.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입으면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는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아, 그래요. 지장보살님 한번 보고 들으면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지장기도 90일쯤 되었을까, 지장보살님을 친견하는 인연이 왔다.
 
장대 같은 비가 내려서 온 우주가 다 떠내려가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시뻘건 황톳물에 집도 산도, 그리고 자신도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저쪽 방둑길에서 한 사람이 "나좀 보고 가라"고 했다.
 
떠내려가다 보면 그물이 처져 있으니 잡고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정말 그물이 있어 그 그물을 잡고 내려가다 보니 한 동자가 하얀 강아지 검은 강아지를 데리고 있으면서 자신을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동굴로 들어가 용궁으로 들어가니 구척 장신의 지장보살님이 계셨다.
 
지장보살님께서는 "내가 젊은이를 만나기 위해 30년을 기다렸다"며 이마를 만져주셨다.
 
그 순간 눈물이 한없이 쏟아져 잠에서 깨어보니 베개가 다 젖어있었다.
 
그때부터 보고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게 되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불가사의한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났다.
 
망월사 행자시절 그믐날 밤 초하룻날 쓸 기름을 구하러 내려가다가 열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는데도 "기성아, 빨리 가서 기름을 구해와야지" 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기름을 구해 간 적도 있다.
 
그리고 한문이라고는 전혀 배운 바가 없는 나에게 꿈속에서 현인들이 글씨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리고 몇 번인가 전생사를 들락거리며 전생의 숙업을 보게 된 바에 의하면 전생에 해마치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해 이생에 다시 온 것이라는 것도 보게 되었다.
 
"첫째, 늘 잊지 않고 어느 상황이나 화두를 들게 하여 지이다.
 
둘째, 내 모양이나 내 이름을 듣는 모든 이들이 뜻하는 바 모든 소원을 이루게 하여지이다.
 
셋째, 밝은 스승을 만나서 훌륭한 공부를 하게 하여지이다."
 
불가사의한 지장보살님의 가피에 감사의 삼배를 올리며 항상 세 가지 원을 세운다.
 
출가하여 춘성 스님으로부터 받은 조주무자(無字)화두는 30년째 잘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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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6 09: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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