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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치유 이야기 (2) 작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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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둘, 작은 눈 - 릴리언 얼네프

 

 

어릴 적에 정신적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하는 간단한 일이 나는 쉽지 않다. 강렬한 수치심, 나는 공처럼 자그맣게 움츠러든다. 종이 위에 쓴 고통의 목록 역시 수치스럽다. 목록은 너무도 길고 섬뜩하여 때론 사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거기 적힌 모든 일들이 사소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마도 나는 자신을 비교하고 판단하는 일을 내려놓는 수행을 영원히 마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해를 끼친 가해자들 중에는, 그 소행이 폭로되었다면 중범죄로 기소되었을 만한 사람들도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그런 가공할 만한 행위의 피해자가 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사실 정말 소소한 일이었다. 또한 그 사건은 내가 치유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사례이기도 하다.

 

내가 자란 동네는 남루했다. 햇빛에 노출된 모든 것들은 빨리도 녹이 슬었다. 하지만 오대호 분지는 사계절 내내 아름다웠다. 사계절이 뚜렷해서 들판은 나무와 바위가 있는 색채 풍성한 미술도구 상자가 되었다. 그 안에서, 만들기를 좋아하는 어린아이는 장식품을 만들 재료를 맘껏 구할 수 있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밖에서 작은 모형 마을을 만들며 보냈다. 그 모형 마을에는 학교는 물론 주류전문점도 교회도 감옥도 없었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은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유토피아였던 셈이다. 나는 풀을 엮어 초가집을 짓고, 나무껍질로 돌집을 만들었다. 빙하토 위에 만든 길은 살짝 경사지게 했다. 빗물을 받아서는 호수와 운하를 만들었다. 집을 계속 지어 나가면서 마을도 커졌다. 우리 집 정원에서 받은 씨앗을 심어 ‘거대한’ 무와 당근이 자라는 농장도 모형 마을 안에 꾸몄다.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 가축과 공룡들을 모형 마을로 옮겨 동물농장도 세웠다. 이 소규모 토목 프로젝트에 사계절 몰두하면서 나는 온 세상을 25센티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착시에 빠져들었다. 나의 ‘작은 두 눈’이 있어 나는 늘 기쁨을 느꼈다.

 

어느 겨울날 아침이었다. 일요일지만 일찌감치 잠에서 깬 나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간밤에 내린 눈에 덮여 있을 나의 모형 마을을 볼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우리 집 뒤에서 바람을 막아주는 향나무 방풍림에 이르렀을 때, 나는 작고 어두운 한 쌍의 발자국이 우리 집 앞문에서 나의 마을 쪽으로 찍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겨울이면 주민들이 흔히 신는 고무를 댄 설피가 아니라 바닥이 단단한 신발이 낸 발자국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학교에서 신는 신을 눈 속에서 신고 다니느라 누군가 힘들었겠다고 별 걱정 없이 생각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 그 발자국의 진짜 의미가 내 머리를 때렸다. 발자국이 밖으로 나간 흔적이 없었다. 그 방문자와 나의 마을과 동물들이 한순간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집 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나를 벌하기 위해 나의 작은 세상을 부순 아버지를 비난했다.

 

그날 실제로 일어났던 일은 지금도 납득할 수 없다. 그때까지 나는 다른 종류의 폭력과 학대는 경험했었지만 그 누구도 내게서 무언가를 글자 그대로 ‘앗아간’ 적은 없었다. 누군가가 나의 동물과 예술작품들뿐 아니라 나의 ‘작은 두 눈’까지 앗아가 버렸다. 나는 땅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예술 활동이 어색해져서 자주 하지 않았다.

 

나는 살아 있는 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행을 하고 있음에도 감사한다. 수행공동체에 들어가 명상도 한다. "길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라는 금언은 나를 위로해 줄 뿐 아니라, 겉모습을 의심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수행공동체 친구들이 트라우마나 어릴 적 경험한 학대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수련회를 조직해서 이름을 “내 안의 아이를 치유하기”라고 지었을 때, 내 안의 열혈 비평가는 화를 냈다. 내면의 날씬이, 내면의 천재, 내면의 프랑스 요리사 등과 같은 ‘내면의 조력자’를 팔아 돈 버는 산업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구 헐뜯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나는 무지 두려웠지만, 어쨌든 수련회에 참가신청을 했고 다양한 수행에 참여했다. 나는 어린 나에게 편지까지 쓰기 시작했다. “이봐 꼬마야, 나는 네가 네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렇다면 나는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렇게 시작된 편지를 나는 오랫동안 써내려갔다. 하지만 머잖아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아이가 내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냥 울었다. 그러다가 귀를 기울였다. 종국에는 밖으로 나가서 아이가 내게 하라고 시킨 일을 했다.

 

개울가로 간 나는 표면이 부드럽고 차가운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감촉이 좋았다. 나는 그 돌들을 모래 위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저녁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나는 퍼뜩 집중 상태에서 깨어났다. 손에 묻어 있는 모래를 털어내고 일ㄹ어선 나는 내가 만든 것을 내려다보았다. 작은 돌 탁자위에 두 개의 돌 접시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개울의 풀에서 딴 씨앗이 쌓여 있었다. 탁자 옆에는 두 개의 돌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의자에서 바라보면 물가의 경치가 아주 좋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나는 개울가로 다시 갔다. 그 작은 식탁 풍경은 아직 그대로였고, 축축한 모래 위에는 식탁 주변을 조심스레 걸어 지나간 사슴, 새, 기타 작은 동물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씨앗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날 오후 나는 다시 개울가로 갔다. 차가운 물은 방향을 바꾸었고, 인적이 없는 매끈한 개울둑은 땅거미가 깔려 새로워 보였다. 그 때 나는 알았다. 내게서는 무엇도 앗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선방으로 돌아오면서 뒤돌아보니 지상에서 약 30센티미터 높이까지 모습이 선명하고 정교하게 보였다. 마침내 나는 슬픔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나의 ‘작은 눈’이 되돌아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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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9 09:5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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