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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불교강의] <26> 禪불교(2)

 

서양의 불교.jpg

 

 

- “우주전체 풀어야할 화두”- 
- 지적이해 보다 체험 직관 중시- 
- 다도· 꽃꽂이 등 생활선 일본서 정착 - 

깨달음을 통한 자아발견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선사들은 가끔 화두 대신 거친 방법을 썼다. 한번은 수로화상이 마조(馬祖)를 방문하여 물었다. “달마조사가 서방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대답 대신 마조는 그에게 절을 하라고 명했다. 수로가 몸을 숙이자마자 마조는 그를 짓밟았다. 이상하게도 수로는 당장에 깨닫게 되었다. 일어나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기이하고 기이하다. 수백 수천의 삼매(三昧)와 무량한 묘의(妙義)가 한 터럭 끝에 그 근원을 두고 있구나!” 그는 스승에게 큰 절을 올리고 물러갔다. 수로는 후에 방장이 되고 난 후 가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조가 나를 짓밟은 후, 나는 줄곧 웃고 있다.”다른 선사들도 할(喝:고함소리)이나 방(棒:방망이) 등 충격요법을 사용했다. 덕산(德山)은 깨닫기 전에, 용담(龍潭)선사가 있는 절에 가서 머물게 되었다. 어느날 저녁, 선사가 좌정하고 있던 덕산에게 말하였다. “밤이 깊었는데 어찌 물러가 쉬지 않는가?” 덕산은 인사를 드리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고 밖으로 나갔다가 곧 다시 돌아와서 말하였다. “밖이 너무 어두워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선사는 호롱불을 켜서 그에게 건네 주었다. 그러나 덕산이 막 호롱불을 받으려하자 선사는 갑자기 불을 훅 불어 꺼버렸다. 이 순간에 덕산은 문득 깨달았고 스승에게 예배하였다. 
선불교는 기독교나 이슬람 신비주의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수단에 불과한 논리적 도식(圖式)을 믿지 않는다. 수십권의 ‘신학대전’도 진리에 대한 구체적 체험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 감각을 통한 인식보다는 직관적 인식을 더 선호한다. 셋째, 논리적 갑론을박을 초월하여 결정적 확신을 안겨주는 절대지(絶對智)를 추구한다. 이것을 파악한 사람은 전제(前提)나 결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는 현 단계에서의 사물들의 대립관계가 보다 높은 차원에서는 모두 통합된다는 것을 인지한다. 따라서 세속적인 도덕윤리관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성 어거스틴이 “먼저 사랑하라. 그러면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도 되리라”고 말한 것은, 깊은 사랑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악한 행위를 할 수 없으리라는 의미일 것이다. 넷째, 에고의 소멸을 말한다. 과거의 개인적 삶은 전체 속으로 용해되고 그때 평화와 법열(法悅)이 보상처럼 따라온다. 다섯째, 자아와 삼라만상이 모두 일체감을 가진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블레이크는 이렇게 노래했다. “모래알 속에서 우주를 보고, 들꽃 속에서 하늘을 본다. 너의 손바닥 안에 무한(無限, infinity)이 있으며, 찰라 속에 영원이 깃든다.” 여섯째, 무한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한편 이 종교들 사이의 차이점도 크다. 불교는 유일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선불교에선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이해되기 어렵다. 유태교와 그 지파인 기독교와 이슬람에서와는 달리, 선불교에는 죄와 참회 그리고 용서라는 감상적인 개념들이 존재치 않는다. 깨달음은 기도와 두려움, 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속죄 등에 의해 얻어지지 않는다. 덕산선사는 결코 기도하지도 않았고, 죄의 사함을 빌지도 않았으며, 불상(佛像)을 숭배하지도 않았다. 그는 경전에 매달리지도 않았고, 촛불을 켜고 두 손을 빌지도 않았다. 그의 생각에 그런 행위들은 형식적인 의례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깨달음을 향한 꾸준하고 집중적인 노력이었다. 

대혜(大蕙)선사는 깨달음을 막 꺼지려는 촛불이나 우리 목에 댄 칼날로 비유했다. 이 우주 전체가 우리가 풀어야 할 생생한 화두이다. 모든 화두는 사실 우주라는 큰 화두에 포함되는 것이다. 또한 부분은 전체를 머금고 있다. 일중일체(一中一切)요, 다중일(多中一)이다. 작은 화두 하나가 풀리면, 우주 전체가 드러난다. 

불교교리를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적 깨달음의 무아경(無我境)이다. 인도에서 흔히 쓰는 여행자의 비유가 있다. 어떤 사람이 사막을 걷다가 다른 사람을 만나, 피곤하고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샘이 있는 곳의 길을 일러주었다. 그러나 길을 아는 것은 실제로 물을 마시는 것과는 다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샘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사막은 생사로 가득찬 속세이고, 목마른 여행자는 우리 모두이며, 길을 가리켜 준 자는 부처님이고, 샘은 열반(니르바나)이다. 

불교는 언어와 변론을 믿지 않는다. 앞에서 얘기한대로, 붓다는 초기 설법에서, 화살에 맞은 사람에게 시급한 것은 화살에 맞은 이유가 아니라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라고 했다. 선불교는 이 가르침에 충실하여 모든 의례와 논리와 사변에 앞서 정각(正覺)에 비중을 둔다. 따라서 갑자기 열린 꽃봉오리에 흔히 비유되는 깨달음이야말로 선의 시작이자 끝이다. 

선(禪)은 그 가르침이 퍼졌던 사회의 일상생활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건축, 시, 회화, 서도 등 많은 예술이 선미(禪味)를 담고있다. 신중한 생략과 암시가 그 생명이다. 동양화의 여백미와 일본의 단시(短詩) 하이쿠(俳句)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하이쿠는 5·7·5조의 단시이다. 

  바람에 너울대는/풀잎끝 이슬방울/덧없는 인생 
  인형가게에 들린/자식없는 부인/만지작 만지작 인형을 못놓네 
  강물에 출렁이는/살구꽃 그림자/떠내려가진 않네 
  난간에 기대어/가을달을 바라보니/내 본래 얼굴이로다 

검술과 궁술의 고된 수련도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흔히 정신수양의 한 방편으로 이용된다. 숙련된 궁사는 어둠속에서도 정확히 과녁을 맞춘다. 그는 정신적 안정을 통해 어둠을 꿰뚫는 심안(心眼)을 터득한 것이다. 

생활속의 선불교는 일본에서 토착화되면서 일본예술혼의 기저를 이루었다. 불교의 유입과 함께 꽃꽂이가 시작되었다. 처음에 사원에서 의식(儀式)으로 시작된 꽃꽂이는 후에 민간에서도 널리 행해졌다. 꽃꽂이의 미학은 기묘한 불균형을 이루는 디자인 형태에 달려있다. 그것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상징하는 세 요소의 조화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에 꽃꽂이 하는 사람의 신앙적 정성이 깃들면 그 아름다움은 배가 된다. 

일본식 정원도 유명하다. 작은 공간에 바위와 관목 그리고 물로 자연스러움을 창조한다. 

다도(茶道) 또한 선불교적 정서의 산물이다. 차를 마시는 일상의 작은 행위도 생의 오묘한 이면을 드러내고 고양시키는 신성한 종교적 의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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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3 12: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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