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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불교강의] <33> 연재를 마치고 <좌담회>

서양의 불교.jpg


- “화엄의 바다에서 리얼리티 찾아”- 
- 무아사상 심취 포스트모더니즘영향 - 


*참석자 
조달공 <성균관대명예교수> 
김호성 <동국대강사> 
김홍근 <편역자 외국어대강사 > 

현대불교신문은 지난 1월 17일자(61호)부터 32회동안 연재해 온 ‘보르헤스의 불교강의’를 마감하며 그간 연재된 내용을 정리하고 불교와 보르헤스문학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좌담을 마련했다. 이 좌담에는 조달공씨(성대명예교수), 김호성씨(동대강사), 편역자 김홍근씨(외대강사)가 참여했다. <편집자 주> 

김홍근: ‘보르헤스의 불교강의’를 연재하며 그의 불교에 대한 천착(穿鑿)에 가장 감명 받은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편역자의 입장에서 보다는 첫 독자로서의 입장에서 그의 글을 읽고 정리하며 저는 두가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나는 동양인도 유럽인도 아닌 아르헨티나, 중남미인이 불교라는 종교와 그 사상을 어떻게 보았느냐에 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종교학자나 철학자가 아닌 문인가 그것도 환상문학을 하는 입장에서 불교를 어떻게 보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조달공: 이번 연재를 보며 저도 보르헤스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의 영향은 프랑스 문학에도 지대하게 끼쳐져서 까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자를 밟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문학가로서 어떻게 불교의 정신을 그토록 정확히 받아 들이고 자기화 시켰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김호성: 동양권 종교 사상의 큰 기둥인 불교가 근대 이후 서구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야 잘 알려진 얘기지만 보르헤스란 인물을 알면서 저도 상당히 놀란 것이 사실입니다. 그의 <불교강의>는 우리나라에서도 넓게 읽혀져야할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저는 그의 소설을 몇편 읽었는데 상당히 어렵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의상스님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김홍근: 그의 <불교강의>나 강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자신의 마음에 꼭 각인된 것, 다시말해 자신이 충분히 소화한 것만을 남에게 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철저히 천착하며 불교를 자기화 시켰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 가운데 그는 부처님의 생애와 전생담과 같은 불전(佛傳)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호성: 저는 굳이 ‘전설상의 붓다’와 ‘역사상의 붓다’를 구분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갖습니다. 부처님의 전기는 합리성과 역사성으로만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관심 가졌던 설화적 요소들은 이미 우리들도 다 듣고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전설적인 붓다’와 ‘역사적인 붓다’를 구분하는 것은 근래의 일이고 불교전통 자체는 그것이 어우러져서 서술되는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조달공: 불교를 역사적으로 풀이하려는 것은 학자들의 입장이고 그 존재에 대한 믿음의 필요성은 보편적인 사람들의 입장입니다. 불교적 특이성으로 이해될 수 있는 ‘전생담’과 같은 이야기는 믿음의 차원에서 보편적으로 받아 들여져야 하는 것이지 역사나 전설이나 신화라는 관점에서 이해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불교본래의 의미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김홍근: 바로 그런 점에 보르헤스의 특성이 있습니다. 그는 2백여년간 서구를 지배해 온 이성주의에 대한 회의에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설화적 요소를 통해 상상력을 발현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설화를 통해 보다 원형에 가까운 붓다의 모습을 보려했습니다. 이는 곧 그의 문학관으로 직결됩니다. 그는 늘 질문했습니다. 무엇이 리얼리티냐 라고 말입니다. 그 질문에서 그는 “이성적 판단에 의지한 사실은 환영(겉모습)이다.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을 봐야한다”라는 답을 얻은 것이고 거기서 그의 환상적 사실주의 문학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조달공: 리얼리티란 불교에서 보면 현상계의 반쪽에 지나지 않는것입니다. 진리의 본체는 현상의 리얼리티로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리얼리티는 인식계의 한 모습에 불과하고 진리의 얼굴 즉, 진리의 본체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김호성: 아까 의상스님을 생각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스님은 <화엄일승법계도기>를 쓰셨고 또 <법성게>를 쓰셨는데 시의 형식을 빌었습니다. 후에 누가 “왜 시에 의지해서 법계의 진리를 나타내려 했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스님은 “허(虛)에 즉하여 실(實)을 나타내기 때문이다”라고 답합니다. 허는 환상 허구이고 실은 사실인데 허와 실이 둘이 아니란 것이지요. 보르헤스도 그걸 잘 파악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그의 허구를 통한 리얼리티, 환상적 사실주의는 화엄의 이치와도 통해 있는 것입니다. 화엄의 인드라망이나 일중일체 다즉일의 진리를 문학에 충분히 용해시켰다는데 그의 위대성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김홍근: 그의 환상적 사실주의란 ‘색즉시공’의 문학적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전기 중 깨달음의 장면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서 <알레프>와 같은 작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조달공: 그는 니체나 쇼펜하우어의 정신을 많이 읽었는데 그런 영향도 영향이지만 <알레프>와 같은 작품을 통해 서구의 시간관과 세계관을 부정하고 불교적인 시간관과 세계관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역시 그가 불교를 체득하여 문학에 용해시킨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김홍근: 보르헤스는 윤회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윤회의 주체를 ‘업’으로 파악하고 업사상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업과 관련한 견해를 ‘현생의 나의 행동 가운데 전생의 나의 행동과 무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업이란 쉬지 않고 짜여지는 인연의 그물이다’라고 피력했습니다. 서구사상에 미로의 개념이 있습니다만 그는 업의 그물을 체득함으로 공간적 미로가 아닌 ‘시간적 미로’라는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것입니다. 서구인에게 쉽게 이해되지는 않으리라고 자신도 생각했던 이 업보사상을 그는 <갈라지는 오솔길의 정원>을 통해 표현 하고자 했습니다.

김호성: 보르헤스는 윤회를 매우 길게 얘기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윤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도 윤회의 주체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아무래도 윤회의 주체는 업이라는 쪽이 많은 설득력을 갖습니다. 보르헤스도 이를 제대로 본 것입니다. 그가 얻은 미로라는 아이디어는 의상의 법계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 법계도의 길을 따라 가는 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의 업이고 최종에는 정각을 이루는 것입니다. 서양의 미로에 대한 아이디어는 그 핵심에 신(神)을 두고 그 신을 보면 죽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법계도는 그 핵심에 붓다 즉, 성불을 둡니다. 

조달공: 윤회란 그것을 따지기도 이전의 필연입니다. 사물이나 시간이란 것도 사실은 없는 것입니다.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을 보는 시각을 의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서구 기독교의 경우 시간의 시작과 끝을 얘기하지만 불교는 지옥이나 극락 마저도 윤회의 한 과정(장소)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인간 구제에 대한 관점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신의 의지를 내세운다면 불교는 인연의 흐름을 말하죠. 그러니까 모든 것의 주체는 자기이고 모든 인연도 결국은 자기의 것이어서 성불도 자기의 일이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이 자신의 확대된 개념이 중생이고 우주이고 법계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홍근: 그렇기 때문에 궁극으로 확대된 자아(自我), 그러니까 ‘무아(無我)’에 대한 관심이 보르헤스를 지배하기도 했던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는 이 테마에 심취해 연극에서의 배우와 관객의 의미를 설정했습니다. 배우로서의 나가 있지만 그를 바라보는 관객으로서의 나도 있다는 이 아이디어는 상당히 신선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김호성: 무아라는 것은 서구사상에서 하나의 방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체와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우파니샤드 등의 인도사상에 영향 받은 쇼펜하우어나 니체 같은 사람들이 이 정설을 부정하는데, 실체 존재 이성 로고스에의 구조적 부정은 요즘 얘기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황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보르헤스의 관심이 무아설에 얼마나 깊게 들어갔는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조달공: 불교에 많은 영향을 받은 쇼펜하우어나 니체를 서양에서는 리힐리스트(허무주의자)로 몰아 세우기도 했지만 그들은 허무주의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불교는 허무주의와 전혀 다르니까요.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미 플라톤에서 시작 된다고 봅니다. 2차대전이 끝나며 벽에 막힌 현실을 탈피하려는 노력에서 비로소 존재의 가치를 실체와 현상에서만 찾지 않고 보다 깊은 곳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해 많은 실천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서양사회의 사상적 근저인 ‘진리는 고정불변’이란 관념이 깨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힘들었습니다. 무상을 몰랐던 것이지요. 플라톤의 원소이론만 해도 무상의 진리를 내포한 것인데 그 자체를 활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김호성: 얼마전에 원로학자 김지견 박사님은 ‘포스트모더니즘은 의상(義相)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의상은 ‘법계도기’를 쓰고도 자신의 이름을 붙히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쓰면 이미 집착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스님은 ‘무유주(無有主)’라 했습니다. 보르헤스도 무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매우 깊었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홍근: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텍스트는 연기론이라는 측면에서 고정불변의 텍스트는 없다는 개념을 확고히 할 수 있습니다. 보르헤스도 도서관과 책의 얘기에서 이에대한 언급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선불교에 대한 관심도 지대해서 ‘보르헤스와 나’라는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김호성: 선불교에 대해 그는 ‘부처님 가르침을 가장 원형에 가깝게 가지고 있는 것이 극동지역의 선불교’라고 말했는데 저는 이 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전법륜 속의 근본진리를 꿰뚫는 선불교의 모습에 그는 상당히 매력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김홍근: 보르헤스의 문학이 폭넓게 소개되는 것과 함께 그의 불교적 천착 그리고 문학에 영향 끼친 불교의 요체들을 점검해 보니 역시 보르헤스는 아직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해줄 큰 인물임을 느낍니다. 우리나라의 불교학자나 문인 또는 일반 불자와 독자들 모두가 문학가로서의 보르헤스와 불교를 폭넓게 소화한 사상가로서의 보르헤스를 균형있게 만나는 기회가 많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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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1 1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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