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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붓다의 가르침, 담마(1/2)

 

삶속의 불교.jpg

 

3장 붓다의 가르침, 담마(1)


붓다는 자애심으로 사람들에게 담마를 가르쳐 주었다. 담마를 가르쳐 주는 것이 왜 유독 붓다의 자애를 입증하는지 의아스러울 것이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려면 아픈 사람을 찾아가 본다든지 친절한 말을 하는 등의 방법도 있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거나 친절한 말을 하는 것도 남을 돕는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참 행복을 가르쳐줄 수 없다. 남에게 친절하면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해 줄 수 있고, 덜 우울하게 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도 불안해하고 우울해 하는 사람도 있다.

 

붓다는 행복과 슬픔의 가장 깊은 원인이 인간의 내면에 있음을 알았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는 없다. 다만 잠시 동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을 줄 수 있다. 붓다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도왔다. 붓다는 인생과 자기 자신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져서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도록 했다.

 

제자들은 붓다를 따라 그가 한 대로 사람들에게 담마를 가르쳤다. 찬나를 교계한 경(M144)에 보면 사리뿌따와 마하 쭌다는 독수리봉 산에 머물 때 찬나라고 하는 아픈 승려를 찾아 갔다. 먼저 사리뿌따는 찬나에게 음식과 의약품은 충분한지, 만일 원한다면 개인적으로 이것들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절한 말과 행동만으로는 불충분했다. 삶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사리뿌따와 마하쭌다가 찬나에게 담마를 말해야 할 순간이 되었다.

 

무쟁의 분석경(M139)에서, 붓다가 사와띠 근처 제따숲에 머물 때 중도인 팔정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감각적 쾌락을 추구해서도 안되고 자기 학대를 해서도 안된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른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말하지 말고 칭송과 비난도 하지 말고 오직 무엇이 바른 길인지 그른 길인지 가르치고, 또 과보를 가져오는 원인에 대해서 가르치라고 하셨다. 그들은 단지 담마를 가르쳤다. 담마란 있는 그대로의 것을 말한다. 붓다는 좋든 나쁘든 간에 사람들이 경험하는 모든 것에서 바른 견해를 계발하도록 도왔다.

 

만일 번뇌를 제거하고 싶으면 먼저 불선심이 무엇인지 선심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하며, 그것들이 언제 일어나는지 알아야 한다. 마음이 나타날 때 알아차려야 마음을 알 수 있다. 생각으로는 마음을 알 수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마음은 지속하지 않는다. 마음은 일어났다가 금방 사라지며 다음 마음에 이어진다. 마음이 없는 순간은 없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등의 다양한 기능을 하는 많은 마음들이 있다. 더 나아가 불선심과 선심이 있다. 마음은 한 순간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불선심과 선심은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선심이 사라진 직후에, 심지어 선행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불선심이 일어날 수 있다. 선심이 사라지고 선행에 대해서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불선심이다.

 

위에서 언급한 찬나를 교계한 경(M144)에서 찬나가 병이 걸려 매우 고통스러웠음을 알 수 있다.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자 자살했다. 붓다는 찬나가 죽기 전에 병이 나게 한 불선한 행위의 동기인 불선심 이후에 선심을 가졌음을 알았다. 찬나는 그 후에 스스로의 번뇌를 정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찬나는 갈애 없이 죽었다”라고 하셨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행동하는 겉모습을 보고 마음을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매순간마다 다른 마음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겨우 자기 자신의 마음이 불선할 때와 선할 때를 구별할 수 있을 뿐이다. 비록 그것이 아주 어려울지라도.

 

불선심은 세 가지 불선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
탐욕(로바)
성냄(도사)
어리석음(모하)
뿌리라는 말은 마음의 토대를 의미한다. 뿌리가 나무를 지탱하고 자라게 하는 것처럼 마음의 뿌리는 마음의 토대가 된다. 이 세 가지 불선한 뿌리에는 매우 다양한 수준이 있다.

 

불선심은 어리석음, 무지에 의해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무지는 무엇이 불선심인지 선심인지 모르며 삶에서 어떤 원인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모른다. 무지에도 여러 수준이 있다. 동물은 매우 무지하다. 동물은 선심과 불선심이 무엇인지 모르며 어떻게 하면 선심을 계발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물만 어리석음이 있는 건 아니며 인간도 어리석음이 많다.

 

불선심은 선심보다 더 자주 일어나는데, 우리가 걷거나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때 어리석음이 있는 순간은 무수히 많다. 그러므로 지혜가 계발되어 완전한 상태, 즉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이자 네 번째 성인의 지위인 아라한에 이르러서야 무지가 뿌리 뽑힌다.

 

마음이 탐욕, 집착, 무지를 동반하고 일어나면 “탐욕에 뿌리를 둔 마음”이라고 한다. 그 순간에는 모든 불선심에 공통된 어리석음만 있는 것이 아니고 탐욕도 있다. 어리석음과 탐욕에 뿌리를 둔 마음은 실재에 대한 무지인 어리석음만 있는 마음과 다르다.

 

탐욕은 과욕, 정욕, 이기적인 욕망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매우 미세한 집착을 말하기도 한다. 매우 미세한 집착은 바른 견해를 갖기 전에는 거의 인지할 수 없다.
탐욕은 즐거운 느낌을 동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름다운 음악을 즐길 때, 거기에는 탐욕에 뿌리를 둔 마음이 있다. 그러면 마음은 불선심이 된다. 비록 이런 탐욕이 그렇게 큰 과욕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은 즐거운 느낌이 수반된 마음을 선심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즐거운 느낌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선심은 아니다. 불선심을 동반한 즐거운 느낌도 있다. 예를 들어 선행을 하면 즐거운 느낌을 동반한 선심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름다운 음악이나 좋은 경치를 보면서 행복을 느낄 때의 마음은 불선심이다. 우리는 진리에 대해서 잘못 알기 쉽다. 우리는 느낌을 너무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그 외 다른 것은 잘 보지 못한다. 그 순간의 느낌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선심인지 불선심인지 알지 못한다.

 

탐욕, 즉 집착에 뿌리를 둔 마음은 즐겁거나 덤덤한 느낌을 수반한다. 우리가 서거나 걷거나 물건을 집을 때 일어나는 탐근심은 덤덤한 느낌을 동반한다. 서거나 한 잔의 물을 마시려고 할 때 항상 즐거운 느낌을 느끼는 건 아니다. 우리에게는 탐욕이 자주 일어난다. 아라한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탐욕에 속박되어 있다.

 

붓다는 “죄”니 “벌”이니 하는 말에 아직도 오염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붓다는 실재하는 것을 말했으며 과보를 가져오는 원인을 이야기했다. 사람이 하는 나쁜 행동은 씨앗이 나무가 되듯이 그 자신의 과보를 야기한다. 이것을 업, 과보,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라고 한다. 붓다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칭찬하지도 말고 비난하지도 말며 다만 담마를 가르치라고 하셨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실재하는 것을 알 것이다. 탐욕은 실재하는 것이므로 탐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그 특성이 무엇인지, 언제 탐욕이 일어나는지도 알아야 한다.

 

또 다른 불선 뿌리는 성냄이다. 일어나는 마음이 성냄과 어리석음을 수반하면 성냄에 뿌리를 둔 마음이다. 그 순간에는 모든 불선한 마음에 공통되는 어리석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냄도 있다. 성냄은 분노나 악의 같은 가장 거친 형태로 드러난다. 살아있는 것을 해칠 때나 죽일 때, 거친 말을 할 때나 욕설을 할 때 성냄이 있다. 성냄은 항상 불쾌한 느낌을 동반한다. 좀 더 미묘한 형태의 성냄도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언짢게 보거나 들을 때 혹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가벼운 성냄이 일어난다. 성냄은 그것에 수반되는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뭔가 편치 않은 모호한 느낌이 있을 때도 틀림없이 성냄이 있다. 성냄은 하루에도 여러 번 일어난다. 시끄러운 소리를 듣거나 추한 광경을 볼 때도 성냄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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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9 22: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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