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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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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죽음



가까운 사람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의 실상이다. 우리는 친척이나 친구를 잃으면 매우 큰 슬픔을 느끼고 견딜 수가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도록 한다. 붓다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 생기는 슬픔에 대해서 여러 번 말씀하셨다.

 

 

애생경(愛生經, M87)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 즈음에 어떤 장자의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외아들이 죽었다그는 아들이 죽자 일할 생각도 나지 않고 밥 먹을 생각도 나지 않았다그는 계속해서 묘지에 가서 '외아들아, 어디 있는냐

외아들아, 어디 있는냐?'라고 하면서 울었다.

 

그러자 그 장자는 세존을 뵈러 갔다. 세존을 뵙고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한 곁에 앉은 그 

장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자여, 그대의 감각기관들은 자신의 마음이 잘 안정되어 있는 사람의 감각기관들과 같지 않구나.

그대의 감각기관들은 심히 어지럽구나." 

"세존이시여, 어찌 저의 감각기관들이 어지럽지 않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저의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외아들이 죽었습니다.

그가 죽자 일할 생각도 나지 않고 밥 먹을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저는 계속해서 묘지에 가서 

'외아들아, 어디 있는냐? 외아들아, 어디 있는냐?'라고 하면서 웁니다.

 

"장자여, 참으로 그러하다. 장자여, 참으로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생겨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누가 그렇게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생겨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생한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것은 즐거움과 기쁨입니다."

이처럼 그 장자는 세존의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고 불만을 드러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장자는 부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부처님이 뜻하시는 바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처님이 세상에 대해서 가르친 것, 우리 자신에 대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가르친 것을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붓다의 가르침은 사성제로 요약할 수 있다.

 

 

 

진리 상윳따(S56)에서 부처님은 바라나시 사슴 공원에서 첫 다섯 비구들에게 설법하셨다. 성스러운 진리의 첫 번째는 괴로움 혹은 불만족으로 번역되는 둑카에 대한 진리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보라, 이것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다. 태어남은 괴로움이요, 늙음은 괴로움이요, 병듦은 괴로움이요, 죽음은 괴로움이다. 슬픔, 비애, 고뇌, 비탄, 절망도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것,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 한마디로 집착에 뿌리를 둔 오온이 모두 괴로움이다.

 

 

 

오온, 즉 우리의 안과 밖에 있는 정신현상과 물질현상이 모두 괴로움이다. 왜 그것들이 모두 괴로움인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마음을 자아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은 정신현상일 뿐이며 일어났다가 즉시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몸을 자아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몸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낱 물질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일어나는 즉시 사라져 버린다. 진리를 모르면 이런 현상들이 지속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자아로 여긴다. 예를 들어 슬픔이 어느 정도 머문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보고 듣고 생각하는 등 많은 다른 현상들이 있다. 우리가 슬픔이 오래 계속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실상은 연이은 많은 다른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 중에 어떤 것도 머무는 것은 없다.

 

 

 

무상인 현상은 진실로 행복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괴로움이다. 둑카는 자주 괴로움으로 번역되지만 그것은 행복하지 않은 느낌만은 아니다. 성스러운 첫 번째 진리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현상에 관련된 것이다. 우리 인생에 괴로움이 아닌 것이 없다. 행복한 느낌조차도 괴로움이다. 지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성스러운 진리는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에 대한 것이다. 상윳따 니까야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인가? 그것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 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가 그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갈애가 남아 있는 한, 정신과 물질은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생을 받을 조건이 된다. 그러면 괴로움이 일어난다.

 

 

성스러운 진리의 세 번째는 괴로움의 소멸, 닙바나에 관한 것이다. 위에 인용한 경전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볼 수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다.

그것은 바로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이다.

 

 

갈애는 괴로움의 원인이다. 그래서 갈애가 멈추면 재생이 소멸하고 따라서 괴로움이 사라진다. 닙바나는 괴로움이 없는 것이다. 모든 갈애를 제거한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은 재생을 가져올 조건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이것은 괴로움의 종식을 의미한다.

 

 

같은 경전에서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에 대해서 볼 수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수행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다.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로 된 성스러운 도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알아차림, 바른 삼매다.

 

 

팔정도는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에 대한 바른 견해를 계발하는 것이다. 수다원은 7번 이상 재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재생이 남아있긴 하지만 언젠가 재생이 끝난다. 우리는 내면이나 주위의 세계를 사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안다.

 

 

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는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신식과 마음을 통해 감각접촉을 받아들임으로서 세계를 경험한다. 다섯 가지 감각의 문과 마음의 문을 통해 경험하는 모든 것은 매우 짧은데, 그것은 현상이란 모두 일어나면 바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볼 때 보이는 대상이 있지만 오래 지속하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들을 때 소리의 세계가 있지만 그것은 무상하다.

 

 

냄새, , 감촉, 정신적 대상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도 지속하지 않는다.

 

 

<청정도론 VIII, 39>에서 우리는 세계의 덧없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을 수 있다.

....궁극적인 뜻에서 인간의 수명은 매우 짧다. 그것은 오로지 한 마음이 일어나는 동안 만큼이다. 마치 수레바퀴가 굴러갈 때 바퀴의 테두리의 한 부분이 [땅에 닿아] 굴러가고 설 때도 바퀴의 테두리의 한 부분이 서듯이 중생들의 수명은 한 마음 순간 만큼이다. 그 마음이 소멸할 때 중생이 멸했다고 한다.

 

 

오직 수명과 자신과 행복과 고통이

훌쩍 지나가 버리는 하나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멸한 무더기[]는 이미 죽은 자의 것이거나

살아있는 자의 것이거나 모두 같나니

가버린 뒤 다시 오지 않는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태어남이 없고

마음이 현존할 때 살아있는 것

마음이 무너지면 세상은 죽은 것이니....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순간마다 마음이 일어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마음이 사라지는 각 순간마다 마음의 죽음이 있다. 일어나는 각 마음은 완전히 사라지지만 그것은 다음 마음을 조건 짓는다. 이 생의 마지막 마음인 죽음의 마음은 다음 생의 첫 마음인 재생연결식에 계승된다. 우리 삶의 어떤 순간이라도 자아는 없기 때문에 이 생에서 다음 생으로 옮아가는 자아는 없다.

 

 

무지가 우리로 하여금 몸과 마음이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한다. 우리는 몸과 마음에 집착하고 그것을 자아로 여긴다. 우리는 보고 듣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을 자아라고 생각한다. 자아에 대한 집착 때문에 슬픔이 생긴다. 우리는 삶을 마음대로 조절해서 즐거운 것만 경험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늙음과 질병과 죽음과 부딪치면 매우 슬프다.

 

 

실재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은 슬픔이 집착으로부터 생긴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은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이 갈애라는 두 번째 성스러운 진리다. 무상, , 무아인 정신과 물질을 알아차려야 한다. 일어나는 모든 물질과 정신이 무상, , 무아임을 알아야 한다.

 

 

붓다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현상의 무상함을 강조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내 몸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몸의 무상함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몸의 더러움에 대해서 명상하라고 하셨고 여러 단계로 분해되어 가는 시체를 명상하라고 하셨다. 염처경(M10)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볼 수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바로 그것을 자신의 몸과 비교해 본다.

 

 

이 몸도 비슷한 성질이고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니) 오래 지나지 않아 저렇게 될 것이다.

 

 

청정도론(VI, 88)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시체와 마찬가지로 이 살아있는 몸도 부정하다. 단지 더러운 것이 외부의 장식으로 가려졌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살아있는 몸도 마찬가지로 더럽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몸의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염처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이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내려가며 반조한다. 이 몸에는 머리털·몸털·손발톱·이빨·살갗··힘줄··골수·콩팥·염통··근막·지라·허파·큰창자·작은창자···쓸개즙·가래·고름···굳기름·눈물·[피부의] 기름기··콧물·관절액·오줌 등이 있다.

 

 

몸의 더러움에 대한 알아차림은 우리가 몸에 덜 집착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몸을 있는 그대로 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알아차리는 것이며 몸에 대해서 그것을 구성하는 물질의 요소로 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염처경에서 부처님께서 몸을 네 가지 요소로 알아차리는 것을 말씀하셨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을 처해진 대로 놓여진 대로 요소[]별로 고찰한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의 요소, []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

 

 

확장과 단단함의 요소인 지대는 딱딱함과 부드러움의 특성으로 나타난다. 응집의 요소인 수대는 유동성과 응집력으로 나타난다. 열기의 요소인 화대는 뜨거움과 추위의 특성으로 나타난다. 움직임의 요소인 풍대는 운동 즉 진동과 압력의 특성으로 나타난다. 이 요소들은 시체거나 살아있는 몸이거나 다 똑같다. 시체거나 살아있는 몸이거나 똑같이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요소일 뿐이다.

 

 

우리는 다섯 가지 감각의 문과 마음의 문을 통해 물질과 정신이 스스로를 드러낼 때 있는 그대로의 특성을 알아차려야 한다. 예를 들어, 화대의 특성이 몸의 감각을 통해 드러날 때,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또 부드러움이 나타나면 이를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실재하는 것의 서로 다른 특성을 알게 되고 그것을 요소로서 보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자아라는 개념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기 위해서 실재가 스스로를 드러낼 때 실재의 다양한 특성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몸의 부드러움을 내 몸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자주 부드러움의 특성을 알아차리는 방법을 배운다면 부드러움은 시체나 산 사람의 몸에서나 똑같은 특성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어떤 것을 알지 못하거나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고유한 특성이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안다. 즉 그것은 자아가 아니라 물질이다. 그러면 우리는 내 몸이라는 개념에 덜 집착하게 된다. , 슬픔, 행복 그리고 생각 같은 것을 알아차리면 우리는 그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정신적 현상의 다양한 형태에 지나지 않음을 알 것이다. 그것들은 괴로움이다. 눈은 괴로움이요, 보는 것은 괴로움이요, 본 것에 대해 일어나는 느낌도 괴로움이다.

 

일상생활에서 정신과 물질이 나타날 때마다 알아차리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호소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에서 진실로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 봐야한다. 계속해서 무지한 상태로 있으면서 몸과 마음을 자아로 여기기를 원하는가? 어둠 속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혹은 지혜를 계발해서 괴로움을 종식시키기를 원하는가? 괴로움을 종식시키는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지혜를 계발해야 한다. 볼 때, 들을 때, 생각할 때 슬프거나 행복할 때마다. 이것이 괴로움과 괴로움의 일어남과 괴로움의 소멸을 이해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다. 무지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자아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때 우리는 정신과 물질을 알아차릴 수 있는 동기를 얻게 될 것이다.

 

 

붓다께서는 죽음에 대해 알아차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에게 각 순간들이 얼마나 무상한 지를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 죽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삶은 매우 짧으므로 우리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현재 순간을 이해해서 실재에 대한 무지를 없애야 한다. 무지는 짧은 시간에 제거할 수 없다. 오로지 깨달음의 마지막 네 번째 단계를 얻었을 때만 제거된다. 더 이상 번뇌가 없을 때만 무지는 완전히 걷힌다.

 

 

대반열반경(D16)에 보면 붓다께서 열반하실 때 아직 슬퍼서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존께서 반열반하시자 반열반과 함께 애정을 버리지 못한 비구들은 손을 마구 흔들면서 울부짖고 다리가 잘린듯이 넘어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 "세존께서는 너무 빨리 반열반 하시는구나너무 빨리 선서께서는 반열반 하시는구나너무 빨리 눈을 가진 분이 세상에서 사라지시는구나."라고 하였다. 그러나 애정을 벗어난 비구들은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그러니 여기서 [슬퍼함이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하셨다.

 

그러자 아누룻다 존자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하였다."도반들이여이제 그만하십시오슬퍼하지 마십시오탄식하지 마십시오. 도반들이여참으로 세존께서는 전에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같은 경전(대반열반경)에서 붓다가 열반하기 전에 아난다에게 하신 말씀을 볼 수 있다.

 

 

아난다여이제 나는 늙어서 나이 들고 노후하고 세월을 보냈고 ....

 

아난다여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自燈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自歸依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法燈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歸依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아난다여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어떻게 비구는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비구들이여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머문다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되어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머문다...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머문다...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머문다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되어 머문다.

 

아난다여이와 같이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몸에서 몸을, 느낌에서 느낌을, 마음에서 마음을,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면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에서 자아를 보지 않게 된다. 만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드러나고 있는 모든 정신과 물질을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그것들이 무상, , 무아임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종식, 죽음의 끝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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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4 21: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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