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비밀번호 로그인 | 회원가입
Here and Now
http://www.templevill.com/

Happy    
보 현 성 (Happy)
  
   일체개고 (一切皆苦)
   제법무아 (諸法無我)
   제행무상 (諸行無常)
   열반적정 (涅槃寂靜)
 
어디서와서어디로가는가(終)
수행 ♡ 어떻게 하는가(終)
법상스님 ♡ 보왕삼매론(終)
물위에떠있는공처럼
아비담마 ♡ 길라잡이
12연기와 ♡ 위빠사나(終)
붓다의 ♡ 생애와사상(終)
스님말씀 ♡ 조사어록
경전말씀 ♡ 마음공부
마음공부 ♡ 생할수행
법상스님 ♡ 감동어구
스님들의 ♡ 즉문즉답
위빠사나 ♡ 아포리즘
묘원의 ♡ 명상언어
초기불교 ♡ 동영상(終)
아비담마 ♡ 동영상(終)
한줄 ♡ 명언 교훈
부처님 ♡ 가르침(終)
법정스님 ♡ 말씀
법상스님 ♡ 말씀
불교 ♡ 기초교리
대념처경 ♡ 법문
부처님 ♡ 전생담
초기불교 ♡ 산책(終)
법구경 ♡ 이야기
백유경 ♡ 이야기(終)
아함경 ♡ 이야기(終)
옹달샘 ♡ 우체통
향기글 ♡ 감동글
팝송 ♡ 영어공부(終)
100문 ♡ 100답
붓다의 ♡ 옛길(終)
빠알리 ♡ 경전
탈무드 ♡ 명언
초전법륜경 ♡
사념처 ♡ 수행(終)
불교의 ♡ 향훈(終)
틱낫한 ♡ 스님
티벳 ♡ 인디언
부모 ♡ 은중경(終)
생활의 ♡ 지혜
몸짱 ♡ 다요트
오늘의 ♡ 명언
서양의 ♡ 불교
따뜻한 ♡ 하루
사랑밭 ♡ 편지
숫타니파타 ♡
달라이 ♡ 라마
우화(禹話) ♡(終)
풍경 ♡ 소리
5분 ♡ 명상
위 ♡ 빠사나
선가 ♡ 귀감(終)
열반 ♡ 경전(終)
인과 ♡ 법문
불교 ♡ 의식
여행 ♡ 정보
불교 ♡ 설화
영험 ♡ 모음
茶 & 커피 ♡
허브 ♡ 나라(終)
도란 ♡ 도란
꽃 ♡ 사랑(終)
자비관 ♡(終)
경구 ♡ 게송
수필 ♡
(*^▼^*)복이와요
詩 ♡
삶속의 불교 ♡
수행 ♡ 문답
윗 사진은 우리부부의 ...
해동마을
바람
블로그 쉼터
 보 현 성

8. 마음과 염처별 수행

 

수행문답.gif

 

8. 마음과 염처별 수행

 

< 질문 >

 

예전에 묘원법사님의 강의를 듣던 중 메모했던 것을 보면 “마음은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내용을 보고 약간 의문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극장에서 슬픈 영화를 보고 있을 때 “이 영화를 보니 슬픈 느낌이 드는구나.” 등으로 알아차림을 하고 있다면, 마음은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하므로 대부분의 시간은 정신없이 영화에 집중하고 나머지시간에 잠깐씩 알아차림(영화가 슬픈 것을 앎)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식이라면 제가 잘못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깨어 있는 시간은 항상 알아차림을 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질문할 내용은 수념처에 관한 내용입니다. 밑에도 관련되는 내용이 있지만 제가 정확하게 이해를 못한 것 같아서 질문 드립니다.

 

제가 알기로는 느낌은 6근이라는 감각기관이 6경이라는 대상과 부딪쳐서 6식이 일어날 때 생긴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좌선 중에 몸에 통증이 생기면 身識이 생겼음을 알고, 여기서 싫어하는 느낌을 관찰하고(수념처), 나아가서 화난 마음(심념처)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념처경에는 “(부처님이) 비구들이여 여기에 비구는 몸에서는 몸을 전심전력으로 마음 챙김 하여 분명한 앎으로 관찰하여 세상의 욕망과 고뇌에서 벗어나서 지낸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또 이 구절에 대한 케마마하짜리 선사의 해설은 “여기에서 말하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라는 의미는 관찰의 대상이 서로 혼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몸의 관찰은 관찰의 대상으로 몸이 되어야 하고, 감각의 관찰은 감각이, 마음의 관찰은 마음이, 법의 관찰은 법이 그 각각 관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관찰의 대상이 혼합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저와 같이 통증에서 신념처, 수념처, 심념처를 한꺼번에 보는 것은 안 된다는 의미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답변 >

 

마음이 있는지 알아차리기도 어렵지만 마음에 대해서는 더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마음은 항상 하고, 이것이 자아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밖에 알 수 없는 것은 마음이 비물질이고 지혜의 눈으로 보지 못하면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대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최고의 지혜로 보신 부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이해해야 하며, 다음으로 자신의 체험으로 지혜가 나야 더욱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음은 매우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이것은 혜안으로 보아야 압니다. 우리가 흔히 망상을 하거나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 것도 마음이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무상인데 사실은 이것을 법으로 보지 못합니다. 이때 이것이 똑같은 마음이 아니고 매순간 새로 일어나는 마음이라고 알아야 비로소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한 순간에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필름이 돌아갈 때 한 장면, 한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지속되기 때문에 하나의 줄거리가 진행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타나는 장면만 보지 여러 장면의 필름이 모여서 지속되고 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한 순간에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한 순간에 한 컷의 필름밖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한 컷, 한 컷이 모여 영화가 되듯이 한순간의 마음이 모여 마음이 흐릅니다.

 

마음을 이렇게 알게 되면 마음이란 항상 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지혜가 납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마음이 아니고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일 뿐이라고 압니다. 그래서 새로 일어난 마음이 먼저 있는 마음을 알아차렸다면 먼저 있던 마음을 이미 과거의 마음이므로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당한 시간을 이미 지나간 과거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단지 이미 지나간 기억일 뿐인데 현재로 갖다 놓고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알아차리면 시제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아 괴로움에서 벗어납니다. 괴로울 때 괴로운 마음을 알아차리면 이미 새로운 마음이 지켜보는 것이므로 괴로운 마음은 과거가 됩니다. 이것이 수행의 이익이며 지혜입니다.

 

좌선을 할 때 호흡도 있고, 통증도 있고, 망상도 있고, 졸음도 있고 몇 가지의 대상이 동시에 있지만 사실은 마음이 빠르게 이것저것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알아차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바르게 알 수 있을 때 마음에 대한 이해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생각으로는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신, 수, 심, 법이라는 네 가지 대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이 말은 몸을 알아차릴 때 몸이라는 대상을 마음이 알아차리는 것이며 이때 아는 것이 느낌으로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몸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것이 법입니다. 그러므로 네 가지가 모두 작용해야 수행을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가지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면 신념처가 되고 수념처가 되고 심념처가 되고 법념처가 됩니다.

 

몸을 알아차릴 때는 오직 몸을 알아차리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미 몸을 알아차린다고 해도 마음과 느낌과 법이 함께 합니다. 그러므로 몸을 알아차리기 때문에 다른 것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고 집중력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의 대상을 선택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몸을 알아차릴 때는 망상을 해서는 안 되며 오직 몸을 알아차리는 일에 전념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이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때 이것을 대상으로 집중하면 몸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때 발의 모양을 알아차리면 신념처 수행을 하는 것이며 사마타 수행을 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흔들림 없이 알아차림을 지속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발의 움직임이 가볍고 무거운 느낌으로 나타납니다. 이때 수념처 수행을 하는 것이며 관념이 아닌 실제를 아는 것이라서 위빠사나 수행으로 전환됩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느낌을 알아차리면 이제 느낌을 알아차리는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때는 심념처 수행이 됩니다. 계속해서 발의 느낌을 마음을 알아차리다 보면 이제 이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무상이라고 알 게 됩니다. 이때 법념처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느 대상이거나, 어느 염처이거나, 하나의 대상, 하나의 염처를 알아차릴 때는 마음을 모아 그 대상을 정확하게 겨냥해서 지속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것이 몸에 대하여서는 몸을 알아차리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몸을 알아차린다고 해서 느낌이 나타나면 느낌을 알아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대상이거나 그 대상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지속해야 합니다.

 

좌선을 할 때 호흡을 알아차리면서 망상을 하고, 졸음에 빠지고, 하기 싫어서 갈등을 느끼거나, 때로는 멍하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것은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고 호흡을 알아차리는 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흡을 알아차릴 때는 마음을 모아 오직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에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이 호흡에 대하여서는 오직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24.gif
2018.09.03 15:45:30
스팸댓글 또는 악의적인 댓글의 제한을 위해 사찰에서 블로그를 개설하신 후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12345678
Today 93 Total 3367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