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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명상(251-255)

 

5분명상.jpg

 

251. 무상과 무아

 

걷는 수행을 하면서 한 걸음씩 발을 내디딜 때마다 같은 발걸음은 하나도 없다. 발을 내디디려는 의도가 다르고, 발의 움직임도 다르고, 닿는 곳도 다르다. 걸을 때 모두 같은 발걸음이라고 보면 바르게 안 것이 아니다. 시간이 다르고, 아는 마음도 달라서 모두 새로운 것만 있다.

 

걸을 때 내가 걷는 것이 아니다. 걸으려는 의도가 있어서 발의 움직임이 있다. 들으려는 의도가 있어서 드는 행위가 있고 내리려는 의도가 있어서 내리는 행위가 있다. 서려는 의도가 있어서 서는 행위가 있고 돌려는 의도가 있어서 도는 행위가 있지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일어나고 꺼지는 호흡도 같은 호흡이 하나도 없다. 먼저 일어난 호흡과 나중에 일어난 호흡은 같은 호흡이 아니다. 호흡은 의도도 같지 않고, 시간도 같지 않고, 일어난 모양도 같지 않다. 시간이 흐르고, 그것을 보는 마음도 흐르고, 호흡도 모두 새로운 것이다.

 

호흡을 할 때 내가 호흡을 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력이 있고, 단지 호흡을 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호흡을 한다. 만약 내가 있어서 호흡을 한다면 죽을 때 마지막 호흡을 더 지속시켜 죽지 않고 살 수 있어야 한다.

 

 

 

252. 옳고 그름

 

옳은 것을 말할 때는 단지 옳은 것을 말하면 된다. 옳은 것이라고 해서 극단적인 주장을 하면 옳지 않은 것을 배척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옳지 않다고 말할 때도 단지 옳지 않은 것을 말하면 된다. 옳지 않다고 해서 극단적인 주장을 하면 오히려 옳은 것에 대한 반감만 생긴다.

 

옳은 것을 말할 때나 옳지 않은 것을 말할 때나 모두 상대를 배려하는 예절이 있어야 한다. 예절이 없으면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여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 된다. 무조건 내가 옳고 네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말하는 자신도 옳지 않다.

 

옳은 것도 두 가지가 있는데 단지 자신이 옳다고 판단해서 옳은 것이 있고, 또 객관적 진실에 비추어서 옳은 것이 있다. 자신이 옳은 것이라고 극단적으로 주장하면 자신의 기준에서만 옳은 것이다. 객관적 진실에 비추어서 옳다고 여길 때는 극단적으로 주장을 하지 않는다.

 

옳고 그른 것을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자아를 가지고 말하기 때문이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은 단지 행위일 뿐이다. 여기에 나와 네가 없다. 나와 너라는 개아로 사물을 보면 항상 욕망을 가지고 하기 마련이라서 극단에 빠지기 쉽다.

 

 

 

253. 바뀌지 않는 성향

 

누구나 자신의 축적된 성향은 바꿀 수 없다. 바뀌지 않는 성향을 바꾸려 해서 괴로움이 따른다. 그러나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바꾸려 하지 않고 축적된 성향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것이 축적된 성향을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오랫동안 쌓여온 성향을 그대로 두고 그렇네하고 대상을 분리해서 알아차려야 한다. 바꾸려하는 것은 욕망이고 그렇네하고 지켜보는 것은 지혜다. 이것이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성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렇게 할 때만이 개선의 여지가 있다.

 

바뀔 수 없는 축적된 성향을 바꾸려고 하면 바꾸려 한만큼 반발력이 생겨 더 강해진다. 무엇이나 바꾸려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다. 바꾸는 것을 집착하면 오히려 바꾸려고 하는 욕망만 더 커진다. 그래서 괴로움뿐인 악순환이 계속되어 끝없는 윤회를 계속해야 한다.

 

지금 이순간의 마음은 일어나서 사라지고 없지만 마음속에 있는 종자가 다음 마음에 상속되어 흐름이 지속된다. 그러나 알아차리는 마음에는 알아차리는 마음의 종자가 있어서 다음 순간에 축적된 성향이 전해지지 않는다.

 

 

 

254. 괴로움의 통로

 

괴로움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괴로움과 내부에서 일어나는 괴로움이 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괴로움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다. 내부의 괴로움은 자신의 마음에 있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통해서 일어난다. 수행자는 괴로움이 어느 곳으로 들어오는지 알아차려야 한다.

 

눈이 대상을 볼 때 괴로움이 일어난다. 귀가 소리를 들을 때 괴로움이 일어난다. 코가 냄새를 맡을 때 괴로움이 일어난다. 혀가 맛을 볼 때 괴로움이 일어난다. 몸이 접촉을 할 때 괴로움이 일어난다. 마음이 생각을 할 때 괴로움이 일어난다. 이것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괴로움이다.

 

마음에 있는 탐욕이 일어날 때 괴로움이 생긴다. 성냄이 일어날 때 괴로움이 생긴다. 어리석음이 일어날 때 괴로움이 생긴다. 관용이 일어날 때도 괴로움이 생긴다. 자애가 일어날 때도 괴로움이 생긴다. 지혜가 일어날 때도 괴로움이 생긴다. 이것이 내부로부터 일어나는 괴로움이다.

 

어느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괴로움일지라도 괴로움이 일어날 때마다 알아차리면 소멸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지속된 괴로움은 알아차렸다고 해서 완전하게 소멸하지는 않고 충분한 조건이 성숙되어야만 소멸된다.

 

 

 

255. 마음의 대상

 

법은 마음의 대상이다. 법은 대상의 법과 진리의 법이 있다. 범부는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부딪칠 때 알아차리지 못해서 법이 없다. 그러나 수행자는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에 부딪칠 때 알아차리기 때문에 법이 있다. 법은 항상 있지만 대상을 알아차리는 자에게만 성립된다.

 

수행자에게는 어느 것이나 알아차릴 대상에 속한다. 수행자에게 알아차릴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과 물질을 가지고 마주치는 모든 것이 대상이다. 그래서 법이 아닌 것이 없다. 이러한 법은 항상 있지만 법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법이 없는 것이다.

 

대상의 법을 충분하게 알아차려서 조건이 성숙되면 차츰 진리의 법이 드러난다. 대상의 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서 고요함을 얻어야 한다. 고요함을 얻으면 대상에 숨겨져 있는 무상, , 무아의 진리의 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수행의 시작은 대상의 법을 맞이하는 것이며 수행의 결과는 진리의 법을 맞이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법이 아니다. 법은 알아차리는 사람에게만 법이다. 알아차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법이 아니다.

2019.01.13 11: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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