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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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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uapapa    
(aquapapa)
작년의 가난함은 가난함이 아니요[去年貧未是貧]
금년의 가난함이 참으로 가난함이라.[今年貧始是貧]
작년에는 송곳 하나 꽂을 자리가 없더니[去年貧無卓錐之地]
금년에는 송곳마저 없도다.[今年貧錐也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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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방참문어록 35~36~37

35.
어떤 숙덕(宿德) 10명이 함께 물었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불법을 파괴해 없앤다.'하였는데, 불법이 파괴해서 없앨 수 있는 것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범부나 외도들은 불법을 파괴해 없앤다고 하고, 이승(二乘)은 파괴해 없애지 못한다 하거나와, 나의 정법에는 이런 두 가지 소견은 없다. 만일 정법을 말하자면 범부 ․ 외도뿐 만 아니라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는 이승이라도 모두 나쁜 사람들이다."
“참 법, 허망한 법, 빈 법, 비지 않는 법들이 제각기 종자의 성품이 있습니까?”
“법에 종자의 성품이 없기는 하나 사물에 따라 모두 나타난다. 마음이 허환(虛幻)하므로 온갖 것이 함께 허환하나니, 한 법이라도 허환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허환이란 일정함이 있을 것이다. 또 마음이 공하므로 온갖 것이 모두 공하나니, 한 법이라도 공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공’의 정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혹할 때엔 사람이 법을 따르고, 깨달을 때엔 법이 삶을 말미암는다. 마치 삼라만상이 ‘공’에 이르러 극치를 이루고, 백 갈래의 개울은 바다에 이르러 극치를 이루고, 모든 성현은 부처에 이르러 극치를 이루고, 12분경과 5부의 율장과 다섯 가지 베다는 마음에 이르러 극치를 이룬다. 마음은 삼매의 오묘한 근본이며, 만 가지 법의 큰 근원이다. 또는 지혜장(智慧藏)이라고도 하고,
혹은 무주열반(無住涅槃)이라고도 하여 백 천 가지 이름들이 모두가 마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어떤 것이 허환한 허깨비입니까?”
“허깨비는 일정한 정체가 없나니, 마치 빙글 돌리는 불 바퀴나 건달바의 성이나 기관(機關)으로 된 꼭두각시나 아지랑이나 허공의 꽃과 같아서, 모두가 실다운 법이 없다.” “누구를 큰 요술쟁이라 합니까?”
“마음을 큰 요술쟁이라 하고, 몸을 큰 요술의 성이라 하고, 이름과 형상은 큰 요술의 의식(衣食)이라한다. 항하사 세계에는 허환한 허깨비 밖의 일이 없는데, 범부는 요술을 알지 못하고 곳곳에서 요술 같은 업에 홀리고, 성문은 요술의 경계를 두려워하여 마음을 어둡힌 채 적멸에 들고, 보살은 요술의 법을 알고 요술의 본체를 통달하여 온갖 이름과 형상에 구애되지 않고, 부처님은 큰 요술쟁이로서 큰 요술의 법륜을 굴리어 큰 요술의 열반을 이루고, 요술 같은 생멸을 바꾸어 생멸치 않음을 얻고, 항하사같이 많은 더러운 국토를 바꾸어 청정한 법계를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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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한 스님이 물었다.
“무슨 까닭에 경을 읽지 못하게 하면서 나그네의 말이라 하십니까?”

대사가 말했다
“마치 앵무새와 같아서 다만 사람의 말을 배울 뿐이요, 사람의 뜻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은 부처님의 뜻을 전하는데 부처님의 뜻을 얻지 못하고 경만 읽으니, 이는 말을 배우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허락 치 않는다.”
“문자와 언어를 떠나서 따로이 뜻이 있을 수 없습니까?”
“그대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역시 말을 배우는 것이다.”
“똑같은 말인데 어째서 치우쳐 반대하십니까?”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경전에 분명한 글이 있다. ‘내가 말한 것은 이치의 말이고 글이 아니요, 중생이 말한 것은 글의 말이고 이치의 말이 아니다.’하였다. 뜻을 얻는 이는 들뜬 말을 초월하고, 이치를 깨달은 이는 문자를 초월한다. 법은 언어와 문자를 지난 것이니 어찌 법수와 언구 속에서 구하랴. 그러므로 보리의 마음을 일으킨 이는 뜻을 얻고 말을 잊으며, 이치를 깨닫고는 교리를 버린다. 흡사 고기를 얻고는 통발을 잊고, 토끼를 잡고는 그물을 버리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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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어떤 법사가 물었다.
“염불은 형상 있는 대승인데, 선사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형상이 없어도 대승이 아니거늘, 하물며 형상이 있는 것이겠는가. 경에 말씀하시기를, ‘형상을 취하는 범부에게는 그 상황 따라 말해준다.’하셨다.”

또 물었다.
“정토(淨土)에 태어나기를 원하는데, 실제로 정토가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정토를 얻고자 하면 그 마음을 맑게 하라. 그 마음이 맑아지면 부처님 국토도 맑아진다.' 하셨다. 마음이 청정하면 있는 곳마다 모두가 정토이니, 마치 왕의 집에 태어난 아들은 결정코 왕의 지위를 이어 받는 것 같이, 마음을 일으켜 불도를 향하면, 이는 부처님 정토에 나가는 것이다. 만일 마음이 부정하면 태어나는 곳마다 모두가 더러운 국토이니, 더럽고 깨끗함은 마음에 있고 국토에 있지 않다."

또 물었다.
“매양 도를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데, 어떤 사람이 볼 수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지혜의 눈이 있는 이가 본다.”
“대승을 퍽 좋아 하는데, 어떻게 배워 얻을 수 있습니까?”
“깨달으면 얻고 깨닫지 못하면 얻지 못한다.”
“어찌하여야 깨닫습니까?”
“자세히 관찰하기만 하라.”
“무엇과 비슷합니까?”
“비슷한 물건이 없다.”
“그러면 끝내 공하겠군요.”
“‘공’에는 끝내랄 것이 없다.”
“그러면 있는 것이겠습니다.”
“있으되 형상이 없다.”
“깨닫지 못할 때엔 어떠합니까?”
“대덕 스스로가 깨닫지 못할 뿐이요, 아무도 막을 사람은 없다.”
“불법이 세 살피[三際; 겉, 안, 중간]에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현재는 형상이 없어서 밖에 있지도 않고 응용이 무궁하여 안에 있지도 않으며, 중간에 머무를 곳이 없나니, 세 살피를 얻을 수 없다.”
“그 말씀이 퍽 혼돈스럽습니다.”
“그대가 바야흐로 혼돈하다는 한마디를 할 때엔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제자는 더듬고 찾아도 안 팍은 자취가 없습니다.”
“자취가 없다면 위에서 말한 것이 혼돈치 않음을 분명히 알라.”
“어찌하여야 부처가 되겠습니까?”
“마음이 부처이니, 이 마음으로 부처가 된다.”
“중생이 지옥에 들어가면 불성도 들어갑니까?”
“지금 바로 악을 향할 때 선이 따로 있는가?”
“없습니다.”
“중생이 지옥에 들 때에 불성도 그렇다.”
“온갖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는데, 어떠합니까?”
“부처의 작용을 하는 것이 불성이요, 도적이 되었을 때엔 도적의 성품이요, 중생의 작용을 하면 중생의 성품이니, 성품은 형상이 없는 것이나 작용에 따라 이름을 세운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온갖 성현들은 모두가 하염없는 법에 의하여 차별이 있다.’하였다.”
2007.02.14 20:12:14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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