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3월입니다. 아직은 곳곳에 싸늘한 바람이 남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 한구석에도 싸늘한 기운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입니다. 따듯한 봄바람처럼 우리의 가슴에도 따듯한 봄이 찾아오기를 기원해봅니다.
이달의 기원은 따듯함과 함께 하는 기원을 해보겠습니다.
먼저 내가 모시고 있는 불보살의 명호를 부릅니다.
그리고 가피를 청합니다. 그런 다음 기원합니다.
"부처님,
저에게 가피를 내려주십시오.
제가 부처님의 성품과 하나로 연결되게 해주십시오. "
부처님의 성품을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부처님의 성품이라고 할 때 무엇이 느껴지나요?
자비, 지혜, 밝음, 사랑, 평온함, 모든 것을 다 수용하고 이해해주는 마음, 따듯함, 인자한 마음, 부모 같은 느낌, 편안하고 안락함, 안정감, 등등...
네 그렇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성품인 것입니다.
자 깊게 호흡을 하며 내 자신을 자각해 봅니다.
옛 어른들 가르침 속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천척사륜 직하수 [千尺絲綸 直下垂]
일파자동 만파수 [一波纔動 萬波隨]
야정수한 어불식 [夜靜水寒 魚不食]
만선공재 월명귀 [滿船空載 月明歸]
풀이를 하자면
“천 길이나 되는 깊은 물속에 낚시 바늘을 드리우니 한 물결이 일어나고 그 물결이 다른 물결을 만들어 저절로 수많은 물결이 일어나네. 고요한 밤 차가운 물에 물고기 하나 물지 않으니 텅 비어 충만한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온다네.” 대충 이런 뜻입니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 같지만, 풀이하자면
부처님께서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수많은 중생을 위하여 깨달음의 낚시 바늘을 드리웠으나, 한 중생도 건짐이 없이 모든 것이 다 원만하여 부처의 세계가 이루어졌다. 라는 뜻입니다.
좀 더 풀이하자면 누가 누구를 구제하고 누가 구제 받고... 이런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미 완전한 부처의 모습인데, 그 완전성을 우리의 탐진치(貪嗔癡)로 인해 발견하지 못하고 고통의 바다를 헤매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진리의 낚시 바늘을 드리워서 이미 내 자신이 붓다임을 자각하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한 물결이 일어나면 수많은 다른 물결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리는 원래 완전한 부처입니다. 배에 가득히 달빛만 싣고 옴이 완전성을 뜻합니다. 우리가 잘 먹는 감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홍시나 곶감. 정말 맛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드셔보셔서 알겠지만 익지 못한 감은 몹시 떫습니다. 그러나 잘 익으면 향긋하고 달콤합니다. 풋과일을 잘못 먹으면 배앓이를 하지만 잘 익은 과일은 우리의 건강을 도와줍니다.
왜 떫은맛에서 익으면 달콤하게 변하는 걸까요? 신(神)이 어느 날 달콤함을 넣어주었을까요? 그런 건 아닙니다. 원래 달콤한 성품이 내재해 있었던 것입니다. 무르익어 가면서 내재되어 있던 달콤함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탐진치라는 삼독(三毒)에 허우적거릴 때 서로에게 상처주고 상처받기 일쑤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내 스스로가 위대한 붓다임을 잊고 있지요. 그러나 우리가 성숙하면 저절로 드러나는 감의 달콤함처럼 내재되어 있던 우리 불성이 드러나면서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미 완전한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지요.
다시 한 번 기원 드려 봅니다.
"부처님, 저에게 가피를 내려 주십시오.
제가 부처님의 성품과 하나로 연결되게 해주십시오.
부처님의 성품이 현실로 드러나게 해주십시오."
부처님의 따듯하고 자비롭고 지혜로우며 모든 것을 수용하고 이해해주는 그런 성품이 현실로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할 일입니다.
살다보면 부처님의 성품이 아닌 모습이 드러날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때 마다 ‘감도 젊은 날엔 많이 떫었지’ 하며 스스로를 자각하고 원숙해 지도록 기도합시다.
초선당에서 적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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