跬步而不休 破鼈千里
累土而不輟 丘山崇山
반보로 가도 쉬지 않는 자라가 천리를 가고
흙 쌓기를 쉬지 않으면 언덕과 산을 이룬다.
차별천리란 말이 새해 벽두에 떠올랐다.
파별이란, 완전하지 않은 자라다.
완전하지 않으니 절름발이를 뜻한다.
절름발이이니 그나마 걸음도 자라 걸음으로 한보가 되지 않고 반보다.
그 절름발이가 어떻게 천리를 가겠는가?
발이 온전하다 해도 자라 걸음으로 천리가 가당치나 한가.
그런데 천리를 간다......,
어려서 배운 교과서에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가 있다.
이 교훈은 인간世에 있어 항상 유효하다.
재주를 가지고서 교만하지 않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그 재주에 팔리다보면 목적도 희미해지고 만다.
토끼는 스스로의 빠름을 믿고 한 방에 내달리는 호기를 부린다.
그러나 거북에게 있어 속도는 무의미하다.
그냥 가는 만큼 가는 거다.
어쩌면 갈 수 있어서 행복한지도 모른다.
토끼의 한 걸음은 빠름에 묻혀 소홀하고 가볍게 여겨지기 십상이지만,
거북의 힘든 한 걸음은 소중하다.
걷기가 당초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절름발이 자라가 천리를 간다는 말을 새해벽두에 생각했다.
거북이 토끼와의 경주에 이기고,
절름발이 자라가 반보의 걸음으로 천리를 간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면 그 약점이 오히려 약이 된다.
걷는 약점을 잘 아는 자라는 그래서 쉴 수가 없다.
출발선상의 환경에 너무 마음 쓰지 말자.
한 걸음이건, 반걸음이건 갈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지 않는가.
그 기쁨은 언덕이 되고 산이 된다.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도 순간순간, 하나하나 쌓여야 인생의 언덕이고 산이다.
春風得意 馬蹄急
一日觀盡 長安花
과거에 급제하니 말발굽이 급하네
하루에 장안의 꽃을 모두 보았지
당나라 때에 맹교(孟郊)란 사람이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고나니 마음이 격동되어 환희로움을 형용한 것이다.
병술년.
모두 春風得意하시길 빈다.
www.bubryun.com 신행생활>>주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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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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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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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6 17:58: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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