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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낭자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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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nnae    
청원 (grinnae)
보림사 공주(공양주의 줄임말이래요),청원낭자의 작은 보금자리입니다. 성불하세요..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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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무리

 지난 주엔 맑고 향기롭게 살다가신 법정스님의 입적 소식도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일이 있었다.

 첫째주 철야정진을 마치고 뒷정리를 하다보니 동이 터올 무렵에 잠이 들어 점심

무렵에 눈을 떴다.  며칠 후 있을 행자교육을 앞두고 잠시 짬을 내어 올라오신 스님과

어머니의 점심을 준비할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해인심 보살님의 전화였다.

  간밤 철야정진 때 친정어머님의 위독하시다하여 자정 무렵에 잠깐 올라와 불단에

절만 하고 내려가셨는데  아무래도 노보살님 상태가 여의치 않은 모양이었다.

  예전부터 입버릇처럼 어머니 가실 때 스님께서 염불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노보살님

께도 평소에  '엄마, 나무아미타불 열심히 하세요.' 신신당부하셨다더니 모처럼 스님

께서 올라오실 때 연이 닿았나보다.

 4년 전에도 한차례 고비가 있어 스님을 모시고 간적이 있었는데(그때도 우연찮게 스

님께서 계실 때였다) 이번엔... 목탁과 요령,침향, 불경을 챙겨 스님을 모시고 절을 나

섰다.

  노보살님 댁에 도착하니 각지에 있던 친인척들이 모여 있었다. 재작년 초파일에 휠체

어를 타고 절에 올라오셨을 때만해도 건강하셨던  무량광 보살님은 이제 너무나 야읜

모습이셔서 그야말로 부처님의 고행상을 연상케 했다.

 며칠전부터는 조금씩 드시던  공양도 끊으시고 물도 거의 드시지 않는다고 했다.

말은 안했지만 모두들 마지막을 예감하고 있었다.

  따님인 해인심 보살님 얘기가  전날부터 자꾸만 허공에 대고 손짓을 하신다고, 불안

해 하시는 모습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스님이 노보살님의 손을 잡고 인사를 하시

니 말씀을 못하셔도(이미 혀가 말려 있다고 하신다) '스님 오시니까 고마워, 엄마?'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신다.

   보살님과 슬하의 8남매, 며느리와 사위, 손주들까지 모두 집에 들어오자 스님의 집

도로  의식이 시작되었다.  무량광 보살님은 수년 전에 보살계를 받으셨는데 오늘은

임종계(팔관재계)를 받게 되신 것이다.

   천수경과 팔관재계 수계에 이어 법문과 원각경(보안보살장) 독송, 아미타경 독송의

순으로 조촐한 의식이 진행되었다. 보살님 옆에 맑은 침향을 피우고 스님께서는 경건

하게 팔관재계에 대해 설하시고, 모두는 보살님이  편안한 마음으로 임종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발원하였다.

   보살님께서 허공에 대고 손짓을 하며 불안해하시는 것은 '화보'라는 것으로, 일생

동안 알게 모르게 지었던  업들이 임종을 앞둔 순간 마치 스크린 속 장면처럼 하나씩

 되살아나면서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왔던 것들이  몸과 마음이 허해지면서

아주 크고 무섭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것 또한 허상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진심으로 참회하는 마음으로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하라고 일러주셨다.

   팔관재계 의식을 할 때까지도 간간이 손을 저으셨다가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시던

보살님의 움직임이 어느 순간부터   조용해졌다고 느낄 무렵,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

보다 보살님의 얼굴은 맑고 편안해 보였다.

내내 눈물을 흘리던  가족들도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스님께선 모든 의식을 마치고 나오기 전에 가져왔던 불경(금강경과 원각경)을 놓아

두고 가족들에게 계속 읽어드릴 것과  아미타불 염불을 해드리라고 하셨다. 혹시

보살님이 임종하시더라도 울지 말고 염불하라는 말씀도.

   다음날 아침 보살님께서 임종하셨다는 연락이 와서 스님을 모시고 장례식장에

갔다.  연락을 받고 모인 신도분들과  함께 보살님 영전에 낭랑한 음성으로 경을 읽어

드리는데 뭐랄까.. 깨끗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 가까이 임종을 준비하느라 상주들은 지친 모습이 역력했지만 어머님이 큰

병환 없이, 고통 없이 가셔서   다행이라고 했다. 계를 받으신 후 하루낮, 하루밤을

드시지 않고 화려하게 입지도 않고 오직 독경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쉼없이 염불하였

으니 그야말로 철저히 계를 지키고 가신 셈이다. 가시기 직전까지 미처 보지 못한 지인

을 기다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감았던 눈을 뜨고 만나본 후 곧 편안하게 숨을 거두

셨다고 하니 평소 모습처럼 여든아홉의 생을 깔끔하게 마치신 것이다.

   그리고 스님께 유명계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신 무량광 보살님은 평소 원하던

 바를 이루셨으니, 모인 사람들 모두  쉽지 않은 일이나  마치 준비된 것처럼 이루신

보살님이 부럽다고 입을 모았다.

   발인 다음날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에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마음으로- 최근에

제대로 읽었던 책이, 어머니 입원해  계시던 병원에서 읽었던 법정스님의 '일기일회'

였다- 기사를 읽다가 스님의 어떤 일화를 보고 다시 노보살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평소 아픈데 없이 살아오다 노환에 기력이 떨어지자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크게

잘못한 기억은 없으나  다만 젊었을 때 밭을 매다 이웃집 호박넝쿨이 넘어온 걸 보고

줏어올리다가 그만 호박 몇 개가 떨어진 걸 보고 엉겁결에 이웃집 밭으로 던져 버린

게 지금껏 후회된다'고 말씀하셨단다.  정확한 내용은 생각 나지않지만 스님의 출가

직전이라던가..비슷한 일화로 지금껏 참회하신다는 걸 본 적이 있다.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의 마무리를 접하면서 한 분은 수행자로, 또 한 분은 그야말로

 평범한 우리네 어머니로  살아오셨지만  다른듯 하면서도 닮은 듯한 그 모습은 나에게

많은 느낌을 주었다.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언제 닥칠지 모를 마지막 순간에 과연 어떤 모습으로 대할 수

있을까?  지나온 날들에 너무 매여 있었던 것은 아닌지,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날들에

불안해하며  순간순간을 헛되이 지내는 것은  아닌지..

  '한 생 안 태어난 셈 치고'사는 삶이라 해도 때때로 방향을 잃고 헤매는 날들 속에 

그 두 가지 마무리는 죽비소리처럼  다시금 나를 낮게 두드린다.

  

2010.03.16 00:14:54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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