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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경 제7품 8품정리 요약
★지장경 제7~8품 내용정리★

송산 스님

<제7품 ‘이익존망품’>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알게 모르게 죄업을 짓게 되는데 이 품에서는 그 죄업의 길에서 벗어나는 일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또 죄업 중생들이 죽음에 임했을 때 유족들은 어떻게 해야 망자를 위한 최선의 길이 되는 것인가? 돌아가신 뒤에는 또 어떻게 하는가? 49재를 지내게 된 근거와 재를 지냈을 때 공덕의 비율은 어떤가? 그리고 재를 지낼 때 주의사항들은 무엇 무엇인가를 상세하게 설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의 불교는 ‘49재 불교’ ‘천도재 불교’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천도하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부 내로라하는 사찰에서도 천도재 전문 사찰처럼 선전을 하고 있는 걸 흔희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큰 이유는 우리나라가 그 옛날 농경사회를 근간으로 대가족 가부장적 가족문화가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면서 노인을 공경하고 부모를 섬기는 경로효친(敬老孝親)사상이 민족정신으로 자리매김 해왔으며 특히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이러한 사상이 바탕이 되어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불리 우며 칭송을 받고 우리 민족은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후손들에게 잘 계승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리고 또한 〈지장경〉으로 스님들께서 앞장서서 유도하고 있는 것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지장보살 마하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관찰하니 이 염부제 중생이 발을 옮기고 생각을 움직이는 것이 죄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만약 선한 이익을 만나더라도 처음 먹은 마음이 흔히 물러나서 악한 인연을 만나게 되면 순간마다 죄가 더하게 됩니다.

이러한 무리의 사람은 진흙길을 가는데 무거운 돌을 짊어진 것과 같습니다. 갈수록 피곤하고 무거워져서 발이 점점 깊이 빠집니다. 만약 선지식을 만나면 그 짐을 덜어서 대신 져다 주거나 혹은 전부 다 져다주게 됩니다. 이 선지식은 큰 힘이 있기 때문에 다시 서로 도와주며 붙들어 주고 권해서 그로 하여금 평지에 이르게 되면 걸어온 악한 길을 반성해서 다시는 악한 길을 지나가지 아니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을 돌아보면 모두가 나쁜 일만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 입니다.

모든 언론들은 사람들의 악한 일, 부정과 부패와 사기와 음모와 시기질투와 싸움들을 보도하기에 바쁩니다. 지장경에서의 지적은 정확합니다. 이렇게 악이 난무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암담합니다.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진흙길을 가다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서 다시는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 것입니다.

모두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 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올바른 선지식을 만나 좋은 가르침을 통해서 선하고 의롭고 정직하게 살아야 할 것 입니다.

지장경 뿐만 아니라 다른 경전 에서도 올바른 선지식의 가르침은 큰 힘이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선지식을 만나는 일은 짐을 대신 지어 주는 일이며 더 이상 수렁에 빠지지 않고 평탄한 길을 활보하며 걷을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그러한 선지식은 우리불자님들은 이미 만나셨을 것입니다. 바로 부처님의 법을 만난 것이 큰 선지식을 만나는 것이라 생각 됩니다. 하지만 인연이 닿아서 부처님의 법과 좋은 스승을 만나더라도 정작 자기 자신이 그동안의 허물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악을 익히는 중생들은 털끝만한 것에서 시작하여 한량없는 곳까지 이르게 됩니다. 모든 중생들이 이와 같은 습관이 있으므로 목숨이 다할 때 남녀의 권속들이 마땅히 그를 위해 복을 베풀어 앞길을 밝혀야 합니다.

혹 경을 읽으며, 혹 불상과 모든 성상에 공양을 올리며, 혹 부처님과 보살과 벽지불의 이름을 염하여 임종하는 사람의 귀에 들리게 하여 아뢰아식에 남아 있게 합니다.”

이렇게 임종할 때부터 행할 일과 49재를 꼭 지내야 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49재를 지내는 공덕은 돌아가신 이가 7분의 1을, 유족이 6을 얻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불교를 공부하지 않은 이도 49재는 꼭 지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재를 지낼 때의 주의사항은 모름지기 정성을 다하고 경건하고 청정하게 하기를 당부하였습니다. 재를 지내는 것은 어찌보면 우리의 민족사상 속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불교적으로 생각해 보면 재를 지내는 일은 당연히 좋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재(齋)의 본뜻은 재계(齋戒)할 재. 공경할 재. ①명복(冥福)을 비는 불공. ②삼업(三業: 身·口·意)을 정제(整齊)해 악업을 짓지 아니하며, 절에서 부처에게 드리는 공양. ③성대한 불공이나 죽은 이를 천도하는 법회. ④승려에게 공양(供養)을 올리면서 행하던 불교의식 등을 말합니다.

재(齋)는 한 마디로 ‘몸과 마음을 모두 깨끗이 한다’ 는 뜻입니다. 이를 토대로 불교에서는 부처님과 수행자에게 공양을 올리거나 죽은 자의 명복을 기원하는 불공 의식을 모두 ‘재(齋)’ 라고 공칭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부처님이나 수행자의 식사를 의미하기도 했으나, 점차 공양의식으로 진행되는 각종 법회에 이르기까지 모두 재(齋)라고 통칭되면서 오늘날 불교의식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재를 지내는 것은 많은 대중들에게 즉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들 모두에게 덕을 배푸는 좋은 일(씨앗,인因)이 때문에 훗날 좋은 결과(열매,과果)를 얻어 갈 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장보살의 근본정신인 원력을 잊어서는 안될 것 입니다.


<제8품 ‘염라왕중찬탄품’>

여덟째 품을 설할 무렵 철위산에 있던 수많은 귀신의 왕들이 염라대왕(閻羅大王)과 함께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도리천에 모여 들었으며 부처님께 귀신으로서의 하는 일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 부처님께 질문을 하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중생들을 제도하려는 서원(誓願)을 세우게 됩니다.

그 뒤 이 품의 이름 그대로 부처님께서 염라대왕의 무리들을 찬탄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귀신들과 그 대표인 염라대왕을 찬탄하는 내용이 귀신에 대한 선입관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악한 귀신이라고 해서 내쫓고 물리치는 일은 없습니다.

모두를 거두어 드리고 제도해야하는 대상들로 생각 하심니다. 그들도 다른 보살들 못지않은 선행을 하는 이들이라 말씀하시며 그래서 부처님은 중생들을 잘 보살피라는 당부를 하시고 크게 찬탄하시며, 끝내는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까지 주심니다. 즉 그들도 부처님이라는 보증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람의 명을 맡은 귀신 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대 자비로 큰 서원을 세워 나고 죽는 가운데서 모든 중생들을 구호하는 구나. 미래세에도 남녀중생들이 나고 죽을 때 그대가 이 원력에서 결코 물러서지 말고 모두 해탈하게 하여 안락함을 얻게 하라.”

그리고 또 부처님은 지장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이 수명을 맡은 주명귀왕(主命鬼王)은 이미 과거 백 천생 동안을 지나오면서 대귀왕이 되어서 나고 죽는 가운데서 중생들을 보호하고 있다. 이는 보살이 자비원력으로 대귀왕의 몸을 나타낸 것이지 실지로는 귀신이 아니니라. 앞으로 일백 칠십 겁을 지나서 주명귀왕은 마땅히 부처를 이루리라. 그 이름은 무상여래(無相如來)이고, 겁의 이름은 안락(安樂)이며, 세계의 이름은 정주(淨住)이리라. 그 부처님의 수명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는 겁이 되리라.

지장보살이여, 이 대귀왕의 일은 이와 같이 불가사의하여 그가 제도하는 사람과 천인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라.”

부처가 되리라고 수기를 주는 일보다 더 큰 찬탄은 없을 것입니다.

대승경전에서 십지(十地)의 지위에 오른 큰 보살들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지장경〉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아주 후대에 편찬된 경전이기 때문에 〈법화경〉과 같은 대승경전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에 나오는 수기사상(授記思想)은 법화경의 정신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 할수 있을 것입니다.

수 십 년 부처님을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수행한 상수(上首)제자들에게 수기를 주시고 다음은 중간 근기들에게 주시고 또 다시 하근기의 사람들에게까지 수기를 주다가 마지막에는 상불경(常不輕) 보살의 입을 통하여 모든 사람 모든 생명들에게 다 같이 본래로 부처님이라는 수기를 주심니다.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부처의 삶이란 곧 사람 사람들의 지금 이 순간의 삶이라는 뜻이라 말할수 있으며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들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장경〉에서는 심지어 귀신들까지도 본래성불이라는 뜻이며 그러므로 주명귀왕을 일컬어 구체적인 여래의 이름과 겁의 이름과 세계의 이름을 일러주었습니다.

〈지장경〉이 인과의 이야기나 선악의 이야기나 과보를 받는 문제나 지옥의 고통들을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덕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내용들이 주로 설하여 졌습니다.

그러나 수기의 문제는 사람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부처님이라는 불교 궁극의 교리이며, 특히 선불교의 종지(宗旨)입니다. 어떤 불교교리도 이제 이 이상은 더 나아갈 데가 없다.

사람이 곧 부처님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람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길 때 불교를 이해하고 불교를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019.07.19 13:03:50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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