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다섯 번째, 수연 스님의 수행의 준비와 실천 <工夫>
사과 : 무아의 이해
자아의 모습인 삼독심과 해탈법인 사성제 – 탐욕(貪慾)이 손바닥이라면 진에(塵恚)는 손등이 됩니다. 내적으로 보면 불만이지만, 외적으로는 욕망입니다. 동일한 의미의 양면인 탐진과 진탐은 내가 있다는 우치(愚癡)에서 비롯된 고통입니다.(2)
<<집(集) - 고통의 저변에는 자아가 있다. 욕망은 자아로부터 샘솟는다. 자아는 업이 집착된 힘이다>>
비유하자면 탐욕이 손바닥이라면 진에는 손등이 됩니다. 진에가 손바닥이라면 탐욕은 손등이 됩니다. 내적으로 보면 불만이지만, 외적으로는 욕망입니다. 이처럼 동일한 의미의 양면인 탐진과 진탐은 내가 있다는 우치에서 비롯된 고통입니다. 불만은 탐욕과 진에의 뜻을 함의한 단어이며, 동시에 행복의 반대이기도 합니다.
연기 실상에 어두워서 내가 있다는 허망한 분별이 일어납니다. 이 허망한 분별은 지혜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지혜는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진여)’을 아는 것입니다. 또 현상이 실상이 아닌 허망한 연기일 뿐이라는 것을 통찰(정견)하는 혜안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아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굳이 지혜라고 표현하는 것은 실상을 잘못 알고 있는 우자(愚者)의 관점입니다. 본래의 관점에서 보면 지혜라고 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실상에 어두운 우치로 인해 주체인 자아가 홀연히 등장합니다. 이 자아는 끊임없이 고통을 일으킵니다.
<<苦 – 不滿足感 >>
분별의 사유영역을 벗어나면 주체인 허망한 자아는 소멸됩니다. 고통의 원인인 자아가 소멸되면, 절대의 평안인 영원한 행복에 안주하게 됩니다. <161-163쪽>
209년8월16일 아침, 현담옮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