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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유감(有感)

 

설날 유감(有感)

 

어제 밤에 일찍 잤더니 새벽녘에 잠이 깨었다. 내일이면 설날이다. 예전에는 설 전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여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서 아침에 일어나 눈썹을 먼저 살펴보곤 하였다. 매년 반복되면서도 하얀 눈썹이 되었는지를 확인하였다.

설은 일반적으로 '신정' '구정'이란 표현을 쓰고 있으며 양력 11일을 신정, 음력 11일을 구정이라고 구분해 부른다. 그러나 여기서 '구정'이란 단어가 일제 치하의 잔재라는 점에서, 구정으로 불러서는 안 되고 설이라 불러야 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설날'은 많은 부침을 겪어 왔다. 우선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음력 11일 정월 초하루를 가리켜 '설날'이라 하여 명절로 즐겨 왔다. 1895년 을미개혁으로 태양력을 받아들이면서 정부는 양력 11일을 새로운 '설날'로 지정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관습적으로 여전히 음력 11일을 설날로 보내며 이날 조상에 제사를 지내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렸다.

그 후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 식민통치가 시작되면 양력설을 쇠는 일본은 우리나라도 자신들처럼 양력에 설을 쇠길 원했으며, 우리의 전통문화인 음력설을 없애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래서 일본은 우리의 음력설을 '옛날 설'이란 의미로 구정이라 깎아내렸고, 양력설은 신정이라 부르며 쇠기를 강요했다. 이때부터 신정과 구정이란 단어들이 쓰였다. 일제치하에는 음력설 쇠는 걸 막기 위해 공권력 까지 행사했다. 광복 이후에도 한 동안 양력과 음력설을 모두 쇠는 '이중과세 방지를 명목으로 계속되어 음력설을 쇠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국민은 음력설을 '설날'로 인식했고, 매년 음력설 때면 고향으로 가는 길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에 1985년 음력설이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공휴일 지정이 됐고, 1989년에는 '설날'이란 명칭을 복원하고 3일의 공휴일을 지정했다. 1998년에는 양력설을 ''이 아닌, '11'로 규정하고 공휴일도 하루로 축소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가 어릴 때에는 신정을 쇠는 사람들도 있었고 구정을 쇠는 사람들로 혼재해 있었다. 공무원이나 직장인들은 신정을, 대부분의 농사짓는 사람들은 구정을 쇠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일가친척들이 근동에 살아서 서로 교류하면서 세배도 다니고 차례도 같이 올리고 하였으며 각종 놀이도 같이 했었다. 그 때는 어려운 시절이지만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모든 것이 즐거웠고, 아마도 어른들은 삶의 고달픔 속에서도 그 날만은 즐겁게 보냈던 것 같다. 큰집, 작은 집, 외갓집, 고모네, 이모네, 일가친척어른들, 동네 어른들께 다니면서 세배도 드리고 세뱃돈도 챙겼으며 맛있는 음식으로 종일토록 배가 꺼지지 않았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추억은 아련하고 그립고, 비록 궁핍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모든 이웃들이 가난한 편에 속했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거의 똑같아서 지금처럼 상대적인 빈곤감은 없던 시절이었다.

많은 세월이 지나 나 자신도 할배가 되어가고 있고 모든 것들이 정신적, 물질적으로 확대되고 발전되었다. 좁은 사회에서 넓은 사회로 확대되다 보니 친척들도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어서 사촌들끼리도 만나기 어렵고 육촌들은 아예 만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나마 사촌간은 설, 추석 명절 때, 혹은 집안 대소사 때에나 잠깐 볼 수 있을 뿐이다. 또 명절 자체에는 엄마들의 희생적인 노고 덕분에 다른 가족들은 정말 즐겁고 행복하고 배부른 명절을 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명절증후군이라고 하여 왜, 엄마, 며느리 여자들만 희생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반론이 일어나면서 많은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는 이런 갈등으로 인하여 부부가 이혼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면 그 시대에 맞는 패러다임에 적응할 줄 알아야 한다. 남자들이 온종일 여자들이 차려주는 밥상만 받을 게 아니라 같이 도와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겠다. 우리가 어릴 때 보면 엄마는 온종일 손님 치다꺼리에 방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아침 먹고 나면, 금방 점심, 손님 접대하고 나면 또 저녁, 명절 내내 손 마를 시간이 없었다. 또 지금처럼 가스나 전기로 요리를 하는 게 아니라 연탄불이나 나무를 때서 조리를 하여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 입장에서는 명절이 원망스럽고 무척이나 괴로웠을 것이다. 그저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당연시 여기며 견디셨던 것 같다. 우리 집은 가게를 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똑같이 일하면서도 엄마 입장에서는 가사를 전부 전담해야 했기 때문에 엄청나게 힘드셨을 것이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저녁 늦게 까지 장사를 하고 나서 그제서야 우리 집 차례 음식을 하셨으니 엄마는 아마도 슈퍼우먼이었을 게다.

이제 많은 세월이 흘렀고, 나도 수원에 큰 형님이 살고 있기에 매번 명절 때에는 아침 일찍 가서 차례를 지내고 음복을 하고 나서 바로 처갓집으로 가곤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에 맞는 설을 쇠고 있을 것이다. 어떤 집은 설에 여행을 가서 현지에서 간단히 차례를 지내거나 아예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은 지키면서 그 시대에 맞는 관습과 격식으로 명절을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이번 설에도 조카들의 아이들인 손자들에게 세배 돈을 주어야겠다. 우리 아이들은 언제 결혼해서 내 친손자들을 맞이할까나?. 기대를 해보며 즐겁고 행복한 설을 보내자.

 

2018215일 새벽, 현담 씀

 

 

2018.02.15 06:03:26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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