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속에서
정유년도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날은 제법 차갑게 언저리를 감싸고 동녘 하늘에 떠 있는 하얀 하현달은 2-3일 이면 꽉 차게 둥글게 되리라. 도시에 살고 숲이 사라져가고 바쁘다는 핑계로 하늘 한 번을 제대로 쳐다 볼 여유도 없고, 허공을 떠도는 달조차도 볼 기회가 별로 없다. 더군다나 하얗게 어스럼이 흐르는 달빛은 잊혀진지 오래이다. 시골 어릴 적에는 여름철 밤이면 마당에 멍석 갈고 누워서, 하얀 시내가 흐르는 듯한 은하수를 바라보고 그냥 내리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의 무리들을 쳐다보면서 막연한 두려움에 외경심을 느끼곤 하였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저 머나먼 은하수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세상의 끝이 어딘지, 있기는 한 건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동무들도 늦도록 이야기 하였었다.
60년대만 해도 전기가 제대로 보급이 되지 않아 밤이면 호롱불을 켜고 형편이 나은 집들은 촛불을 켰었다. 지금처럼 밝은 대명천지를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아득하기 만하다. 그때에는 약 1km 떨어진 큰 집에 조부모님 제사를 지내러 가곤하였다. 보통 밤 12시가 되어서야 지내기 때문에 제사를 끝내고 돌아올 쯤 이면 새벽 2시가 넘어간다. 어느 때는 구름이 끼여서 캄캄한 길을 대충 짐작하여 오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휘영청 밝은 달빛을 받으며 집으로 올 때는 달빛의 교교함에 취하여 환상 속을 걷는 느낌이 들고 하였다. 그날 그 순간의 물 흐르는 듯한 하얀 달빛은 내 머리 속에 지금도 잊을 길 없이 각인 되어 있다. 요즘이야 인공적인 불빛과 삶의 속박에 갇혀 달빛을 쬐이며 걷는 그런 판타스틱한 분위기는 느끼기가 어렵게 되었다. 오늘 문득 달을 보니 옛 생각이 절로 나며 이효석 님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달빛을 받으며 걷는 장면이 생각나서 자료를 찾아 옮겨 보았다.
<조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중에서)>
삶이 각박할수록,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매우 바쁘고 옆을 볼 시간조차 없어도, 짧은 순간순간에도 주변에 있는 자연의 현상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도록 노력하여야겠다. 저녁 늦게 돌아오는 길가에서 하늘 한번 쳐다보는 여유를 가지도록 하자.
2017년11월30일 밤, 현담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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