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하라고 하는데!!!
유튜브에 어느 신부님이 성당에서 강론을 하시는데 요지는 < 어느 자식이 부모에게 지금은 형편이 안 되니 나중에 효도 하겠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자식은 부모가 죽을 때 까지 절대 효도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장례식장에 갔더니 부모 영정 앞에서 그 자식이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알아보니 그 자식은 부모가 아픈데도 10년 동안이나 왕래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 자식은 조금만 더 사셨으면 효도할 테인데 벌써 돌아가셨다고 통곡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식도 앞으로 10년을 더 사셨더라도 절대로 효도를 안 했을 것이다. 행복도 지금 행복해야지 나중에 행복이라는 것은 없다. 지금 여행 가고 싶으면 가고, 맛있는 거 있으면 먹어야 한다. 나중에 라는 것은 없다.>
효도는 지금 해야지 나중에 라는 것은 없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는데 부모가 언제까지나 살아있을 수도 없고, 중간에 어떤 사고가 날지 모른다. 지금 형편에 맞게 효도하면 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내 능력껏 모시면 된다. 소고기 사 드릴 수 없으면, 돼지고기 사 드리면 되고 해외여행 시켜줄 능력이 안 되면 가까운 국내 여행이라도 해 드리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가까운 식당에서 자장면을 사 드려도 된다. 그도 저도 안 되면 안부라도 자주 묻고 자주 찾아뵙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오해할 때가 많다. 봉사나 보시는 재물을 많이 주고 거창하게 해 드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봉사나 보시는 내 능력껏 정성 드려 해 주면 된다. 재물이 안 되면 마음을 내어줘도 되고, 위로해 주고 같이 슬퍼해 주고, 때로는 같이 기뻐해 주기도 하고, 배려하고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외보시가 바로 이것이다. 또 무재칠시도 마찬가지이다. < 잡보장경(雜寶藏經)에 나오는 무재칠시는(無財七施), 첫째는 화안시(和顔施)로 얼굴에 화색(和色)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으로 '미소(微笑)'를 이름이요,
둘째는 언시(言施)로 말로써 남에게 얼마든지 베풀 수 있으니 사랑의 말, 칭찬(稱讚)의 말, 위로의 말, 격려(激勵)의 말, 양보(讓步)의 말, 부드러운 말 등이다.
셋째는 심시(心施)로 마음의 문을 열고 따뜻한 마음을 주는 것이며,
넷째는 안시(眼施)로 사랑을 담은 눈으로 사람을
보는 즉 눈으로 베푸는 것이고,
다섯째는 신시(身施)로 몸으로 베푸는 것인데 짐을 들어준다거나
하는 것이 바로 신시이다.
여섯째는 좌시(坐視)로 자리를 내주어 양보(讓步)하는 것이요,
일곱째는 굳이 묻지 않고 상대의 속을 헤아려 알아서 도와주는 찰시(察施)이다.>
우리는 재물이 아니더라도 남을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척 많다고 하겠다. 다만 실천을 못할 뿐이다.
많은 선지식들이 지금 행복하라고 한다. 지나온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다가오는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도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만족하며 행복하라고 한다. 참 옳은 말이며 진리의 말씀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순간순간 즐겁고 행복함 보다는 스트레스 받고, 짜증나고, 남하고 경쟁하며 험담도 주고받고, 매 순간 고통이 더 많을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즉 사바세계는 인욕토라고 하여 참고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만큼 행복보다는 불행, 고통이 더 많다. 그러나 그 행복이나 불행도 통틀어 보면 고통이라고 한다. 영원한 행복은 없으며, 그 행복도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똑 같이 10억 원을 줘도 감격에 겨워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부족하여 더 가지려고 다툼을 하며 갈등 속에 잡혀 고통의 나락으로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 행복의 기준은 환경적 요인인가, 마음먹기 나름인가? 물론 근본적인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어느 거지 부자(父子)가 불타고 있는 집을 보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우리는 집이 없어서 불탈 게 없어서 행복하다”고 한 이야기가 있다. 정말 그 거지는 행복한지는 몰라도 적어도 불타고 있는 순간은 홀가분하고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너무 가난하고 가진 게 없으면 그 또한 불행하다. 얼마쯤 있어야 행복할 것인가는 명확한 기준을 정하기가 어렵지만 법정 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富)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이 말씀도 다분히 주관적일 수는 있는데, 자신의 처지에서 꼭 필요한 최소한을 가지고도 만족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즉 양(量)보다는 지족(知足)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 일게다. 우리 인간이 사는 목적을 묻는다면, 왜 사냐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다양한 대답이 있을 것이다.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다’, ‘행복하기 위하여’, ‘먹기 위하여’ 등등 많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명확한 답은 없다. 그저 성인들이 말씀하는 것처럼 하루하루, 순간순간 그 상황을 즐기면서, 행복하다면 행복한대로, 고통스럽다면 다행히 이 정도 고통이라서 등 매순간이 이보다 나은 삶이라고 마음먹는다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20년2월13일 밤 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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