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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세계에는 사바세계의 여덟 괴로움이 없고 여덟 즐거움으로 바뀐다.”

 

극락세계에는 사바세계의 여덟 괴로움이 없고 여덟 즐거움으로 바뀐다.”

 

믿음이란 사바세계는 참으로 괴롭고 극락세계는 참으로 즐겁다고 믿는다는 말이다. 사바세계의 괴로움은 무량무변하지만 총괄하면 팔고(八苦)를 벗어나지 못하니 바로 태어나는 괴로움, 병드는 괴로움, 죽는 괴로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괴로움, 오음(五陰)에 가려 불길같이 타오르는 괴로움이다. 이 여덟 가지 괴로움은 부귀함이 절정에 이른 사람이나 비천함이 구걸에 이른 사람이나 누구든지 있다. 앞 일곱 가지는 과거세의 인으로 감득한 과보로 자세히 생각해보면 상세히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 수 있다. 말해봤자 먹물과 종이낭비일 뿐이다. 여덟째 오온에 가려 불길같이 타오르는 괴로움은 현재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며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행위 일체가 모두 미래에 괴로움을 낳는 원인임을 가리킨다. 인과에 연거푸 말려들어 끊임없이 상속되어 과거무수겁에서 미래 겁에 이르도록 해탈할 수 없다.

 

오음은 곧 색((((()이다. 색은 곧 업보로 감득한 몸이고 수상행식은 곧 경계에 접촉하여 일으킨 환 같은 망념이다. 환 같은 몸과 마음 등 일체존재로 말미암아 색성향미촉법 육진(六塵)의 경계에 대해 미혹을 일으켜 업을 지음이 불길같이 맹렬하여 멈출 줄 몰라서 불길같이 일어난다고 한다. 또한 ()’은 뒤덮는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오음이 존재하여 진성을 뒤덮어서 그것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이다. 짙은 구름이 해를 가리면 비록 햇빛이 눈부시게 비추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을지라도 구름에 가려서 만물이 햇빛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다. 범부중생이 혹업(惑業)을 끊지 못하고 이 오음의 장애에 뒤덮여 진여본성의 지혜가 드러나지 못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이치이다. 이 여덟째 괴로움이야말로 일체 모든 괴로움의 근본이다.

 

도를 닦는 사람은 선정의 힘이 깊어 육진경계에 대해 조금도 집착하지 않아 미워하고 사랑하는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만약 이 기초 위에서 가행정진으로 수행하고 나아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면 혹업은 전부 다하고 생사윤회의 근본은 끊어진다. 이러한 공부는 결코 쉽지 않아 요즘 같은 말세에는 증득하기가 실로 어렵다. 그래서 모름지기 정업(淨業)을 전수(專修)하여 극락에 태어나길 구하고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원력에 기대어 서방에 왕생하여야 한다. 즉시 극락세계에 왕생하면 연꽃에 화생하여 태어나는 괴로움이 없다. 모두가 하나같이 사내아이의 모습으로 수명 등이 허공같이 무량하고 몸에는 재앙으로 인한 변고가 없으며 늙음 병듦 죽음 등의 이름조차 듣지 못하거늘 하물며 그것이 실제 존재하겠는가?

 

극락세계에서는 성중을 뒤따라 아미타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물과 새와 숲에서 모두 법음이 연설되어 자신의 근성(根性)을 따라 법문을 듣고 각자 증득함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도 마침내 없거늘 하물며 원수에 대한 미움이 있겠는가? 옷을 생각하면 옷을 얻고 음식을 생각하면 음식을 얻으며 누각당사는 모두 칠보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모두 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화현한 것뿐이니 곧 사바세계의 일곱 괴로움은 극락세계에서 일곱 즐거움으로 바뀌게 된다. 각자의 몸에는 모두 큰 신통력과 큰 위신력이 갖추어져 자신이 머무는 곳을 떠나지 않은 채 일념 가운데 시방제불세계를 두루 다니면서 갖가지 불사를 지어 위로는 불도(佛道)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

 

마음에는 곧 큰 지혜와 큰 변재를 지녀서 일법 가운데 제법실상을 두루 알아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법해도 잘못됨이 없고 비록 세간의 언어로 말해도 모두 실상의 미묘한 이치에 들어맞을 수 있다. 오음에 가려 불길같이 일어나는 괴로움이 없고 몸과 마음이 적멸의 즐거움에 머문다. 그래서 아미타경에서 말씀하시길 저 국토의 중생들은 어떠한 괴로움도 없고 오직 온갖 즐거움만 누리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극락이라 하느니라고 하셨다. 사바세계의 괴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고 극락세계의 즐거움은 그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 없다. 부처님 말씀을 깊이 믿어 조금도 의심이 없어야 진실한 믿음이라 한다. 부디 범부 외도의 지견으로써 제멋대로 추측하여 극락정토의 갖가지 불가사의하고 수승 미묘한 장엄은 모두 우화나 신화로 마음에서 생각해 낸 것이지 결코 실제 존재하는 경계가 아니다라고 말하지 말라. 만약 이러한 삿된 앎, 그릇된 견해가 있다면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실제 이익을 잃고 말 것이니 그 위험과 해로움이 얼마나 큰지 결코 몰라서는 안 된다.

 

 

<출처 : 법보신문, 2019.11.5.일자, 글쓴이 허만항(번역가)>

 

2019.11.07 10:56:39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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