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대단한 원력의 불모(佛母)보살 ~
금강산 신계사 아래 마을에 세살 박이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신여성(新女性)이 있었다. 어느날 엄마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아이는 엄마를 몹시 찾았다. 애타게 기다려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아이는 울다가 땅 위에 흘린 눈물을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점 그림에 재미를 붙여 나중에는 사금파리를 들고 그려 마당을 온통 채워 놓고 말았다. 돌아온 엄마는 뜰을 가득 메운 그림을 본 뒤 탄복하여 백로지 100장을 사다 주었다. 이렇게 해서 ‘금강산의 그림 신동’으로 불리던 아이는 13세때 석두(石頭)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오늘의 불모(佛母) 삼락자(三樂子) 석정(石鼎)이 되었다.
“불화(탱화)는 감상위주의 일반회화와는 달리 장엄한 불국토의 화현이요, 신심의 결정체입니다” 14세때 당대 대불모(大佛母)였던 일섭(日燮)스님 아래로 입문한 뒤 팔순을 바라보게 된 스님의 말이다. 석정스님이 그린 부처님의 얼굴은 엄숙하면서도 자애롭다. 엄숙함과 자애로움이 공존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스님은 “부처님의 32상(相) 80종호 가운데 음성과 혀는 드러나지 않는데 표현되지 않은 부분까지 그릴 수 있어야 된다”고 밝힌다. 스님의 불화는 1941년 동승 불모로서 그린 선산 원각사의 탱화를 비롯해서 송광사 대웅보전과 사자루 53선지식 탱화와 통도사, 대원사 등 수많은 사찰에 산재해있다.
문화재청은 최근 단청장(丹靑匠)에 포함됐던 불화제작 기능을 단일종목으로 분리, 중요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佛畵匠)으로서 석정스님을 지정했다. 이에 따라 불모 전수교육조교 추가선정 등 전통불화의 맥을 체계적으로 잇게 됐다. 이화입도(以畵入道, 그림으로 도에 이른다)에 이른 스님에게는 그동안 두 가지 숙원사업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전국 각 사찰에 모셔져 있는 5000여점의 고(古)탱화를 집대성한 〈한국의 불화〉 편찬사업이다. 이미 통도사 성보박물관장 범하스님과 함께 1차분 20권을 발간한데 이어 2차분도 조만간에 회향할 예정이다. 이제 역대 고승대덕의 정신세계와 체취가 담긴 글씨와 그림 등을 모아 선묵집(禪墨集)을 내는 일만이 남았다고 한다. 참으로 대단한 원력의 불모보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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