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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오지 . 봉화 큰터마을 .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 십승지(十勝地)로 알려진 곳 중의 하나인 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 사이에 있는 구마계곡(지금은 고선계곡). 서남쪽으로 각화산, 동북쪽으로 청옥산이 자리 잡아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양쪽으로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길도 없다. 들어오는 통로라곤 계곡 따라 올라오는 길 뿐이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사람들은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이곳으로 난을 피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IMG_5241.JPG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마을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는 하천 옆으로 난 길이다.

지금은 단순한 적송이 숲을 이루고 있지만 일제시대 초기만 하더라도 아름드리 춘양목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첩첩산중, 그 산속을 흉년․전염병․전쟁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 하여 십승지 중 한곳에 포함시켰다. 십승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 등 산이 높고 험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된 곳이다.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강원도 영월 상동읍 연하리 일대 정동 상류,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화남리 난증항 일대,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유구와 마곡의 두 강 사이,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금계촌 일대, 경북 예천군 용궁면 금당동 일대, 경북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 남쪽 만수동 일대, 전북 무주군 무풍면 덕유산 아래 방음, 전북 부안군 변산면 변산 동쪽 호암 아래, 전북 남원시 운봉읍 두류산 아래 동점촌 일대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등이다. 십승지는 외부와 연결하는 통로가 대개 물이 빠져나가는 험한 계곡과 협곡으로 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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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일부 외지인에 알려져 단체로 오는 방문객이 간혹 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외부와 차단된 곳이어서 산림은 다른 어느 곳보다 우거졌다. 그 우거진 산림이 봉화엔 오히려 화(禍)를 불렀다. 일제는 아름드리 금강소나무를 가만두지 않았다. 첩첩산중 심산유곡 그곳에 처음으로 많은 사람을 맞았다. 시끌벅적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벗겨졌다. 그 흔적이 각화산 끝자락 구마(고선)계곡 상단 조그만 공터에 비석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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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터마을의 터줏대감 안세기옹이 집안을 정리하고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금강소나무의 눈물이 담긴 조선임업개발주식회사 주재소 터’라고 쓰여진 비석엔 현재까지 그곳에 살고 있는 안세기(88) 옹의 증언으로 당시 일제의 벌목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인 소화(昭和) 3년(1928년)부터 해방되던 1945년까지 17년간 봉화군 일대 금강소나무(춘양목)를 벌목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세운 조선임업개발주식회사 주재소 터이다. (후략)’

안 옹은 실제로 주재소에서 급사로 근무하며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제는 돌아갔고 마을은 다시 그 옛날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일이 없어지자 곧바로 하날 둘 사라졌다. 원래 삼삼오오 모여 살던,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 한적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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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옹이 급사로 일했던 일제수탈현장을 생생한 증언으로 고발하고 있다.

그곳이 바로 산길 사이로 꼬불꼬불한 31번 도로에서 계곡 따라 무려 15㎞나 올라가서 만나는 봉화군 구마동 큰터마을이다. 봉화군에서 제일 긴 계곡이다. 아니 전국 어느 계곡과 비교해도 결코 짧지 않은 계곡이다. 한국에서 가장 긴 계곡을 가진 지리산과 설악산의 계곡과도 견줄 만 하다.


이 마을에서만 70년 이상 살고 있는 안세기 옹을 만났다.

“아버지가 십승지 명당이라 하여 들어온 게 13세 때였으니까 지금부터 74년 전이지. 그 때는 일제가 한창 금강송을 남벌해 가고 있었지. 어린 나는 아무 것도 모른 채 급사로 들어가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했어. 여기 금강송들은 어른이 두 손으로 감싸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아름드리나무들이었지. 그걸 왜놈들이 다 베어버렸어. 참 아까운 나무들이지. 지금 저것들은 다 1960년대 이후 심은 나무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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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터마을엔 지금 3가구만 살고 있다. 낡은 집은개량해서 사용하고 있다.

주변을 한 번 죽 둘러봤다. 사방이 산으로 에워싸여 십승지 중의 한 곳이 될 수밖에 없는 지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물은 철철 넘쳐흐른다. 몸을 숨기고 살면서 곡식을 부쳐 먹고 살만한 땅이 바로 십승지일 것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십승지 중에서도 가장 오지에 해당하는 곳이 봉화이기도 하다. 다른 곳 대부분은 이미 개발됐거나 상당히 노출돼 십승지로서의 입지를 잃어버린 지 오래됐다.


소천면에서 큰터마을 도착 전 약 4㎞쯤 떨어진 곳에 노루목이란 곳이 있다. 노루의 목같이 급격히 좁아진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물론 노루목도 계곡 옆으로 나 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탈출할 말한 길이 없는 외길이다. 대개 십승지는 군사․경제․사회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어 발전이 없으며, 전쟁이 일어나도 적들의 접근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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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용하던 지게를 아직 그대로 쓰고 있다.

바로 인근 각화산에 있는 태백산 사고지(史庫地)만 해도 그렇다. 조선은 여러 난리를 겪으며 역사기록서가 불에 타 없어지자, 도저히 외적이 침입할 수 없는 험준한 산지를 선택해서 기록을 보존했다. 서울의 춘추관 사고 외 전국의 오지 중의 오지 4곳에 고루 안배했다. 평안도 영변의 묘향산 사고,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사고, 강화도 마니산 사고, 그리고 나머지 한 곳이 바로 봉화 각화산에 있는 태백산 사고지였다. 사람도 없고 적도 없고, 아군도 없는 오로지 산과 물, 자연만 있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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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나무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고 안 옹이 전한다.

폭이 10m는 족히 될 법한 계곡 양쪽 산 사면으로 과거의 영화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적송들이 우거져 있다. 한창 자라고 있는 애송이 적송들이다. 산 사면은 도저히 길을 낼 수 없는 경사진 비탈이다. 첩첩산중 심산유곡 그 자체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평지는 없다. 이 노부부가 깊은 오지에서 그동안 무얼 먹고 살았을까. 그래도 자식을 9명이나 반듯이 키워 결혼까지 시켰는데.


“농사랄 것도 없지. 당귀와 천궁 같은 약초와 옥수수, 고추, 감자 등을 심어 먹고 살았지. 요즘은 농사지을 사람도 없고, 쌀 두 가마면 우리 부부가 1년을 먹을 수 있어. 자식 9명을 키우기 위해 전국으로 장사하러 다녔지. 지금은 다 도시로 나가 살아.”

흐르는 시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살다 지금은 세월에 시간을 맡기고 사는 노부부다. 시간이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자연과 함께 지낸다. 노부부가 함께 있어 외롭지도 않고,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부럽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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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옆으로 흐르는 계곡

“옆집에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웃도 모르고 사는 그런 동네에 우리가 왜 살어. 우린 그렇게 못 살지. 사람 만나면 반가워 할 줄 알아야지, 겁내고 사는 세상이 뭐가 좋아.”

큰터마을엔 안 옹 부부를 포함해서 총 3가구가 살고 있다. 각화산 방향으로 한 100m쯤 떨어진 곳에 다른 집이 있다. 하루 종일 있어도 사람 만나는 일이 가뭄에 콩 나듯 한다. 다행히 큰터마을 1㎞쯤 위, 계곡 발원지가 가까워지는 곳에 새터마을이 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에 안 옹의 9남매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여동생이 있다. 그 여동생이 유일한 말벗인 것이다. 큰터마을과 새터마을에는 조그만 절까지 포함해서 총 8가구가 듬성듬성 흩어져 살고 있다.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집이 한 채씩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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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 옆의 장독대. 시골의 정겨운 풍경이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큰터마을, 안 옹의 집엔 커다란 장독대와 나무지게, 그리고 옛날 아궁이에 무쇠솥이 덩그러니 걸려 있다. 그 옛날 우리 농촌의 정갈 있는 모습이다. 그곳에 노부부가 오손도손 자연과 함께 살고 있다. 그 옆으로 길이로 치자면 한국에서 가장 길 법한 소천계곡이 시간과 함께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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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4 16: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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