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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 ( 印鏡 ) 스님의 수심결 修心決

 

    인경(印鏡) 스님의 수심결(修心訣)

    부처란 무엇인가?


    부처란 ‘마음’이니 어찌 먼데서 구하겠는가


    ‘수심결’은 ‘마음을 어떻게 닦을 것인지’를 설파한 보조국사(1158~1210)의 저술로 고려시대 이후 오랫동안 수행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오늘날도 ‘수심결’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 헝가리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유통되고 있다. 아마도 많은 선어록 가운데 ‘수심결’이 오랫동안 가장 널리 읽혀진 어록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그만큼 ‘수심결’이 마음 닦는 비결을 간절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문답형식으로 핵심 주제들을 잘 정리하여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심결’의 첫 번째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은 불타는 집과 같다. 그러니 어찌 이런 고통에 오래 머무르겠는가?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마땅히 부처를 구해야 한다. 부처란 곧 마음이니, 어찌 부처를 먼데서 구하겠는가?”

    마음을 어떻게 닦을 것인지
    설파한 보조국사의 수심결
    무엇이 부처인가란 물음에
    현재서 부처될 가능성 열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불타는 집에 대한 비유이다. 불타는 집이란 이 세상의 고통을 비유한 은유이다. 불타는 집을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무섭게 타오르는 불꽃을 보면 두렵고 집을 잃은 가족들은 정신이 나갔다. 그 고통은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이런 불타는 집과 같다면 어떠할까? 그렇게 고통이 심하다면 어떨까? 초기경전에 의하면,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고통을 불꽃에 비유하여 설하곤 했다.

    “우리의 눈은 대상을 향하여 불타고 있으며, 우리의 귀는 대상을 향하여 역시 불타고 있으며, 우리의 혀는 역시 그 대상을 향하여 불타고 있다.”

    우리는 눈을 가지고 대상을 본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렇게 말하지 않고 우리의 눈이 대상을 향하여 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눈은 대상을 향하여 갈망하고, 평가하고, 비교하고, 그래서 서로 다른 관점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공격하고 갈등을 심화시킨다. 대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편안하지 않고 반대로 힘들고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점에서 눈은 대상을 향하여 불타고 있다. 대상을 존재하는 그대로 그냥 보지를 못한다.

    이런 경험을 ‘법화경’에서는 불타는 집에 비유한다. 외국에 가서 사업을 하는 장자가 집에 돌아와서 보니, 집이 불타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은 집이 불타고 있는 줄도 모르고 게임에 빠져서 밖으로 나올 줄을 모른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게임이란 사업일 수도 있고, 지식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고, 오락일 수도 있겠다. 많은 다양하고 즐거운 게임에 빠져서 우리는 삶의 고통을 잊고 그곳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불타는 집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을까? ‘수심결’에 의하면, 그것은 바로 부처를 구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고통을 소멸하기 위해서 부처를 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곧 부처를 구하면, 고통이 소멸된다는 말이 아닌가? 무엇을 부처라고 해야 하는가(如何是佛)?

    부처님 당시에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부처님을 바로 만날 수 있어 그 현존을 직접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입멸하고 부처님의 존재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하였다. 부처님의 존재는 어떤 분이셨는가? 그래서 대승불교도는 부처님의 사리탑을 돌면서 그분의 삶을 이야기하였고, 부처님의 생애를 곳곳에 조각하였고, 그분의 말씀을 체계화하여 결집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무엇인가 부족함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이 부처인가?’라는 질문으로 드러난다. 그분의 일대기에서도, 그분의 말씀 속에서도, 그분의 사리탑에서도, 여전히 부족한 무엇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부처란 무엇인가?’하는 질문과 관련된다. 이 질문은 바로 부처의 정체성이고, 과거나 미래가 아닌 부처의 현존과 관련된 질문이다. 이것은 누구나 현재의 시점에서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질문이다. 무엇이 부처인가? 이런 질문은 마침내 동북아시아 선종의 핵심된 종교적 과제가 되었다.

    이것의 대답은 ‘마음이 곧 부처라[卽心是佛]’는 사실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이 마음에서 경전의 말씀도 나왔고, 이 마음에서 그 삶이 흘러왔으니까, 이 마음을 깨닫게 되면 우리도 부처가 되지 않겠는가? 이런 말이 아닌가? 여기서 말하는 부처는 역사에 생존했던 부처가 아니다. 그분은 이미 가셨다. 물론 미래의 부처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다. 그러면 현재의 부처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각자의 가슴에 존재하는 부처가 아니겠는가?

 

 




 

2020.09.17 22:24:07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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