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비밀번호 로그인 | 회원가입
삼법인 三法印
http://www.templevill.com/

mcidsee8512    
애국 (mcidsee8512)
제행무상 諸行無常 모든 것은 변한다.
제법무아 諸法無我 변하는 모든 것에는 실체가 없다.
일체개고 一切皆苦 변하는 모든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
여기에 열반적정 涅槃寂靜을 넣기도 한다.
때로는 이 네가지를 넣어 사법인 四法印이라 부르기도 한다.
감동글 방
좋은글
불교 자료실
육조단경
불교명상음악
불교說話
찬불가
사찰 탐방
큰스님 語錄
영상법문
曉峰 선사
法頂 스님
법륜스님
법상스님
무비스님
혜자스님
광덕스님
붓다를 만난 사람들
달라이라마의 "특별한 선물 "
영상 / 달라이라마 입보리행론
천수경 박사
블로그 법당
부처님 말씀
명상의 말씀 듣기
극락정토로 가는길
禪家龜鑑
달라이라마
달라이라마 영상강의
불교영상
어린이 부처님들 방
마음에 佛씨 뿌리기
수행자의 노래
입보리행론 원문
부처님이 계신곳
법상스님 / 보왕삼매론 강해
한글 화엄경
마응의 등대
영험담
어른스님들 法語集
스님들의 강의실
개조명운심사사성
인과 이야기
묘원의 대념처경 강해
묘원법사의 명상 글
진리의 세계
부처님 생애
山寺서 부치는 옛선사들의 편지
극락세계
불교계 소식
인과 이야기
앙굿따라니까야
BTN 영상강의
선사의 삶과 사상
尋牛圖
음식, 그리고 사찰음식
추억. 그때 그 시절
詩 .文學
음악과 詩
음악실
지구촌 영상 소개
건강 100세
하하! 호호!
명화감상
다큐 *자연. 동물*
아름다운 꽃
뉴스 엮인 글
세계 미스터리
세상사는 이야기
생활속의 법률
게임 즐기기
야담 야설
세상에 이런 일이
출가자는 오로지 수행과...
헐 !! 좀... 거시...
다녀가심에 고마움을 전...
글 잘읽었습니다. 묘...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
인간의 존엄을 되찾은 ...
워메! 알파고가 어디에...
國害의원 150명 감축...
모셔갑니다~ 감사합니다...
해동마을
바람
연승. 성원스님
흰여울 rapids
활구참선 수행
도라지꽃
korea
문수행
지혜림 나연실
길있는 길
 애국

부처란 ㅇㅇ 이다

- 제1회 붓다 빅퀘스천 컨퍼런스…“부처란 ○○이다” -



- 조성택 교수(고려대) -


“한국불교처럼 또 하나의 가족인 문중을 만들라고 부처님이 출가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니다. 출가는 가족 등 생물학적 범위를 넘은 보편적 사랑 실천을 위함이다.”


월간 <불광>은 11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하루 낮에 다섯 스승을 만나다-붓다빅퀘스천’을 개최했다. 행사에서는 ▷금강 스님이 ‘평화롭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 ▷조성택 교수가 ‘신이 진리가 아니라 진리가 신이다’ ▷원영 스님이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전현수 원장이 ‘정신 수행은 어떻게 정신을 치료하는가’ ▷미산 스님이 ‘동요하지 않는 담담한 마음을 갖는 법’을 주제로 강연했다.

조성택 교수(고려대)는 ‘신이 진리가 아니라 진리가 신이다’ 주제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조 교수는 “오늘 행사가 붓다 빅췌스천이다. 붓다가 문제”며 붓다를 이해하는 5개의 키워드로 ‘H(humanist)’ ‘Y(young)’ ‘I(innovator)’ ‘H(homeless)’ ‘T(teacher)’를 꼽았다.


* 부처 대신 자신에게 빌자

조 교수는 “붓다는 인문주의자(humanist)였다”고 했다.

그는 “부처님 당시는 철기시대가 시작되던 경제적으로 풍요롭던 시기, 지식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신들의 세계에서 붓다는 인간 중심을 설했다”고 했다.

이어 “서구 인문주의자도 있었지만 붓다는 그보다 2000년 앞서 인간의 질서에는 신이 아닌 자신이 있다는 것을 부처가 설했다”고 했다.

조 교수는 “붓다의 탄생게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내 길흉화복, 내 미래는 신이 아닌 나 자신의 행위에 달렸다는 선언이다”며 “법당의 부처님에게 빌지 마라. 자신에게 빌어라. 그것이 부처님의 첫 번째 가르침이다”고 했다.


* 경전 번역체부터 젊은 투로

조 교수는 “붓다는 젊다(young)”고 했다.

“우리는 부처님을 노인으로 상상한다. 부처님은 29세 출가했다. 33살에 성도했다. 대부분 부처님 제자는 20~30대 청년이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부처님 상호가 동아시아로 오면서 나이 든 모습으로 변했다. 이는 문화적 변용이었다. 50~60년 전만해도 한국 사회에서 젊은이의 지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동남아 불상의 상호는 동북아 불상보다 상호가 젊은 것도 한 본보기이다”고 했다.

조 교수는 “경전 번역을 보면 ‘~니라’ 체이다. 30대 붓다의 말투는 ‘~습니다’ 였을 가능성이 높다. 경전 변역도 젊은 어투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붓다가 20~30대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마음의 부처님은 너무 늙어있다. 부처님을 젊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조 교수는 “부처님은 늘 움직이고 돌아다녔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았다. 우리는 늘 부처님을 앉혀두고만 있다. 부처님은 젊은 행동가였다”고 했다.





* 중도는 제3의 길

조 교수는 “붓다는 개혁주의자(innovator)이다”고 했다.

부처님을 전후로 세상이 크게 바뀌었다. 붓다는 신 중심의 질서를 생명 중심 질서로 바꿨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조 교수는 “공자도 신보다 인간 중심을 강조했지만 감히 내 안에 기준이 있다고 하지 못했다. 공자는 자연의 이치라 해서 밖에 기준을 뒀다. 유교는 상제라는 인격신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했다. 조상신도 존재한다. 붓다는 기존의 신관을 모두 거부했다”고 했다.

조 교수는 “붓다는 출가해 수정주의와 고행주의를 모두 경험했다. 명상에 깨어나면 여전히 고통스럽다는 것에서 수정주의의 한계를 알았다. 그 다음 고행을 했다”며 “붓다가 가장 위대한 순간은 보리수 아래 깨달았던 것이 아니라 고행을 그만둔 순간”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그 이유를 당시 요가 수행과 고행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붓다는 베다의 신관을 거부하고, 왕족이기를 거부했다. 명상 그만두고, 고행을 그쳤다. 그 용기는 대단한 것이다. 우리가 미련하게 한 길을 가는 것은 인내심이 아니라 끝까지 갔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중도의 중은 가운데가 아니라 없던 길, 제3의 길이라는 의미이다”고 했다.


* 집으로 돌아오는 삶 거부한 붓다

조 교수는 “붓다는 홈리스(homeless) 즉, 출가자다”고 했다. “부처님은 거지다. 탁발승이다. 자발적으로 집이 없고 재산이 없는 사람이다”고 했다.

조 교수는 “인류가 수렵 채취생활을 하다가 농업을 하면서 정착하게 됐다. 1만년전 일이다”며 “<오딧세이아>가 정착생활을 하는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오딧세우스의 모험을 통해 ‘인생은 모험이고 여정이다’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귀환을 말하고 있다”고 했다.

조 교수는 “우리는 1만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살고 있다. 밖에서 무엇을 하고 오랜 기간 밖에 있다가도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구조 속에서 산다. 1만 년을 그렇게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딧세우스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그것이 자아를 찾는 방법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붓다는 자아를 찾기 위해서 집을 떠나라고 했다. 인류 문명의 두 축은 집을 떠나는 구조와 집으로 돌아오는 구조이다”고 했다.


* 나와 남이 함께 이로워야 옳은 것

조 교수는 “불교와 기독교가 다르다고 하지만 비슷하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나보다 자기 자식, 부모 사랑하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보편 사랑을 실천하려면 가족 등 생물학적 범위를 넘어서야 한다는 뜻이다. 부처님이 말한 출가와 다르지 않다. 부처님은 출가를 제도화 했다는 점이 다르다”고 했다.

조 교수는 “우리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해야 한다고 배웠다. 수신과 제가, 치국과 평천하는 단계적 설정이 아니다. 이를 단계적으로 삼는다면 평생 아무도 이룰 수 없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함께 고려하라는 가르침이다.

조 교수는 “우리 애를 위하는 방법이 옆집 아이를 위하는 방법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내 새끼만 챙기려 하고 이를 정당화한다”고 했다.

이어 “붓다는 가정이 얼마나 개인 욕망을 확대 재생산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이는 정착 문화가 빚은 부작용을 붓다가 철저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붓다는 이 정착 생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자 출가를 제도화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불교는 가족을 버리고 출가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또 다른 가족인 문중을 만든다. 이는 출가가 아니다. 출가는 생물학적 범위를 뛰어 넘어 보편적 사랑 실천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 출가가 정착 문명 해법

조 교수는 “요즘은 신유목주의 시대이다. 젊은이들은 가족을 안락한 출발점 보다 자기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본다. 이를 이기적이다고 비판만 하는 것은 50~60대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일 수 있다”고 했다.

조 교수는 “나는 7~8년 유학생활 후 미국에서 교수가 됐다. 내 목적을 달성했지만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미귀대한 군인 같은 심정이었다. 뭔가 마무리를 못 짓는다는 느낌이었다. 귀환하지 않았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20대는 홍콩에 일자리를 잡으면 홍콩에서 재미있게 산다. 일본에 일자리가 있으면 일본에서 그렇게 산다. 이는 붓다의 출가와 같다. 문명적으로 출가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고 했다.

조 교수는 “신유목주의가 붓다의 출가에서 시작됐다. 우리 모두가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닐 수 없다. 정착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출가가 우리 문명 해악 해독하는 방법이다. 그 출발이 붓다였다”고 했다.


* 내 것 고집 않아 모두 품은 사찰

조 교수는 “거지는 소유하지 않는 자이다. 거지와 교수의 공통점이 있다. 한번 되기가 어렵지 되고 나면 편하다는 것”이라며 “소유하지 않는 것은 정말 편하다. 무소유는 내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다”고 했다.

조 교수는 “유럽여행을 하며 성당 등 중세 건축물을 봤다. 17~18세기 우리 선조들은 무엇을 했나 싶었다. 그런데 몇 번 봤더니 성당이 지겨웠다. 구역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어 “절은 울타리가 없다. 일주문이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가 절인지 구분 짓지 않았다. 구역을 정하지 않아 산과 계곡을 모두 자기 것이 아닌 것조차도 모두 품고 자기 것이 됐다. 그게 우리나라 전통사찰의 모습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유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 붓다가 그 모델이다”고 했다.


* 몰래 가르침이 선종 본모습 아냐

조 교수는 “붓다는 교사(teacher)이다”고 했다.

이어 “붓다는 스승 이전에 교사이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붓다는 종교인으로서 교사로 나선 최초의 인물”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우파니샤드>는 ‘무릎을 맞대고’라는 뜻을 갖고 있다. 무릎을 맞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제자에게만 가르쳐 준다는 뜻이다. 무협지를 보면 스승이 제자에게 비밀리에 무공을 전수한다. 이것이 잘못 전래됐다. 선불교가 그렇다”고 했다.

조 교수는 “<육조단경>에서처럼 몰래 가르침을 주고 야반도주시키는 것이 선종의 본모습은 아닐 것”이라며 “불교는 대중에게 아무 차별 없이 가르쳐준 최초의 종교이다. 자기 밑에서 수년 물 긷고 밥해야 가르침을 주는 종교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교 기독교 이슬람 등 세계 4대종교의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종교체험을 비밀리에 전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대중에게 알린 공통점이 있다. 붓다가 그 최초의 문을 열었다. 그런 점에서 붓다는 교사이다. 교사로서 제자를 거느리면서도 제자들과 똑같이 살며 모범을 보였다”고 했다.

조 교수는 “부처님은 도인이 아니다. 사람들은 불교를 도 닦는 종교로 착각한다. 도인이 불교 목표라고 여긴다”고 했다. 이어 “도인은 산중에서 살면서 시장에서 고통 받는 사람 쳐다보면서도 개입 않고 세상을 관조하는 게 도인이다. 부처님은 출가정신 유지한 채 사회 속에서 살았다.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떠났다. 우리는 도인불교를 하고 있다. 도인되는 것이 불교수행 목표인 것처럼 살아왔다”고 했다.


* 붓다는 매력적인 인간

조 교수는 “깨달은 자라는 뜻의 붓다는 한마디로 매력적인 인간이다”고 했다.

“부처님은 젊은이들 말로 완전체이다. 부처님에게 정답이 있다. 깨달음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다. 깨달음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부처님이 알려줬다”고 했다.

조 교수는 “붓다가 보여준 깨달음은 세상의 하나의 진리가 아닌 모든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고 했다. 이어 “인격신, 유일신은 무엇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방황하는 것은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신론>에서는 ‘방향에 의지하니 길을 잃는다’고 했다. 하나님 등 누군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다보니 방황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붓다는 정답이 없다고 했다. 때로는 모든 것이 정답이다고 했다. 붓다의 가르침에 단 하나 기준이 있다면 나의 행복과 안녕, 모든 생명의 행복과 안녕이었다”고 했다.


* 불교, 서양에서 인기 한국에선 왜?

청중 가운데 대학원생이 “서구에서는 불교가 인기인데 한국에서는 젊은 사람에게 왜 인기가 없느냐”고 물었다.

조 교수는 “조계종단이 어떻게 했다 말하기도 하지만, 근원은 전통이 가진 한계 때문이다”고 했다. 이어 “미국에서 불교가 성행하는 것은 기독교 전통이 보여 온 무기력함과 폭력성, 억압 때문이었다. 서양에서 기독교는 미신의 상징. 과학과 배치된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 불교는 과학적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 반대가 아니냐”고 했다.

조 교수는 “우리 사회 기독교 들어왔을 때, 문명과 함께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기독교는 과학적 문명적 서구적이라고 인식한다. 서구에서는 불교가 그렇게 수용되고 있다. 특정 종단이 잘하고 못해서가 아니라 문명적으로 바뀌는 시점이다”고 했다.
- 불교중심 불교닷컴 - 조현성 기자 cetana@gmail.com -


2020.03.11 12:22:44 | 내 블로그 담기
스팸댓글 또는 악의적인 댓글의 제한을 위해 사찰에서 블로그를 개설하신 후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12345678910
Today 1199 Total 1659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