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話頭)를 들고 수행하는 ‘간화선(看話禪)’ 중흥에 앞장서온 대표적 선승(禪僧) 고우(古愚·84) 스님이 29일 오후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입적했다.
1937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젊은 시절 폐결핵으로 고통받다 ‘삶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25세 때 김천 수도암에 들어갔다. 절에서 지내며 병이 나은 그는 정식 출가 후 당시의 명강사 고봉·관응·혼해 스님에게 경전을 배우고 향곡 스님 등을 모시고 안거(安居) 수행을 했다. 특히 1968년에는 선승(禪僧) 도반(道伴·동료)들과 함께 6·25 이후 맥이 끊긴 문경 봉암사의 선원(禪院)을 재건했으며 서옹·서암 스님 등을 모시고 ‘제2차 봉암사 결사(結社)’를 주도했다. 봉암사는 1940년대 말 성철·청담·향곡 스님 등이 ‘봉암사 결사’를 통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흐트러진 한국 불교 전통을 되살린 사찰이다. 현재는 조계종립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돼 한국 불교의 정신적 요람으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 적명 스님 등과 함께 전국선원수좌회를 창립하는 등 간화선 중흥에 앞장섰다. 2000년대 들어 남방불교 수행법이 국내에서도 확산하자, 전통 수행법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2005년 무여·혜국·의정·설우 스님 등과 함께 ‘조계종 수행의 길, 간화선’을 편찬하기도 했다. 평생 수행에 전념해 봉암사 주지, 각화사 태백선원장 외에는 이렇다 할 소임을 맡지 않았던 그는 2006년 봉화에 금봉암이란 작은 암자를 지었다. 금봉암은 제사와 기도를 받지 않고 법문과 수행만 하는 곳으로, 부처님오신날 연등도 걸지 않았다. 대신 간화선과 불교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전국 어디든 직접 달려가 법문했다. 법문 여행을 위해 70대 고령에 운전면허를 따고 직접 운전해 전국을 다녔다.
항상 온화한 얼굴과 나즈막한 음성으로 불교 가르침을 쉽게 전했다. “다른 사람과 무한 경쟁하지 말고, 스스로 무한향상(無限向上)하라”고 했고, 식당을 운영하는 신도에겐 “손님을 돈이 아니라 은인(恩人)으로 보라”고 권했다.
장례는 전국선원수좌회 장(葬)으로 치러지며 영결식과 다비식은 9월 2일 오전 10시 30분 봉암사에서 엄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