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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봉선사 일대기 / 정화불사

 





*** 효봉노스님 일대기 정화불사(淨化佛事) ***



* 대한불교 조계종 종단 정화불사(淨化佛事)가 일어나다.

<* 1954년 음력 8월 17일.
 "불법엔 대처승(帶妻僧)은 없다 " 란 기치아래 종단 정화운동이 일어났다.

스님은 제자인 구산 스님과 함께 상경하여 이듬해 9월까지
서울 종로구 안국동 소재 선학원(禪學院)에 주석하였다.

대한불교 조계종 종단정화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큰집이 무너지려 하니
여럿의 힘으로 붙들어라(大廈將崩 衆力扶持) "라는 유시를 내리고,
화합적인 승가정신에 입각하여 종단정화불사를 주도하였다.

이때 시자로 법정(法頂) 스님이 통영 미래사에서 수계득도하고,
서울 선학원에는 조명(照明) 스님 등이 시봉하였다.>

** 1955년(乙未年: 68세)
* 종단 정화불사가 일단락 되어가자,
다시 미래사 토굴에서 안거하다.

<* 비구 대처간의 종단분규와 정화불사가 일단 마무리되어지자,
종단 정화불사는 모든 종도들이 여법히 수행 정진하는 것만이
진정한 화합승가를 이루는 올바른 길이라고 역설하면서
서울을 떠나 다시 미륵산 미래사 토굴로 내려 오셨다.

스님은 금강산에서부터 15여 년 동안 줄곧 오후불식과 장좌불와 등
수행자다운 모습을 잃지 않고 초지일관 변함이 없었다.

또한 여름철과 겨울철 안거의 결제와 해제를 철저히 준수하면서
후학들에게 수행의 규범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

** 1956년(丙申年: 69세)
* 여름 안거는 지리산 쌍계사(雙溪寺)
육조정상탑전(六祖頂上塔殿)에서 안거하다.

<* 스님은 육조 혜능대사의 사상과 조계선풍을 선양하고,
보조국사의 목우가풍을 고취하기 위해
 "정진제일 효봉선사(精進第一曉峰禪師) "란 별칭을 들을 만큼
철저한 수행정신으로 일관한 삶이었다.

가는 곳마다 육조 혜능대사의 영정(影幀)과
불일 보조국사의 진영(眞影)을 모시고 다니면서 조석으로 예배드리고
그분들의 사상을 실천하며 몸소 생활 속에 구현하였다.

또 한편으론 대한불교 조계종단의 원만한 정화불사를 염원하면서,
육조 혜능대사의 정골사리가 안치된
지리산 쌍계사 탑전선원에서 조용히 안거하였다.
이때 시자로 법정 스님이 시봉하였다.>

* 11월. 네팔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불교도대회 " 에 참석하다.

<* 한국불교의 정화불사와 유구한 전통을 세계의 불교도들에게 알리고
또한 그 당위성을 널리 천명하기 위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불교도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동행한 동산(東山) 스님, 청담(靑潭) 스님과 네팔, 인도(印度) 등
부처님 성지를 순례하던 도중,
귀국 길에 안내자가 그만 행방불명이 된 탓으로
불적지(佛跡地)를 어렵게 순방하고 무사히 귀국하였다.

그러나 이때 언어의 장벽을 절감했던 스님들은 귀국 후,
젊은 승려들에게 현대교육과 영어공부를 하도록 주장하고
종비생(宗費生)을 양성하였다.>

* 대한불교 조계종  "종회의장(宗會議長) "에 추대되다.

** 1957년(丁酉年: 70세)
* 1월.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總務院長) "에 추대되다.

<* 서울 조계사 경내에 총무원 청사로  "정화기념회관(淨化紀念會館) "을
건립하고 한국불교의 전통성을 천명하였다.

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잔치에 청와대로 초대된 자리에
 "생불생 (生不生) 사불사(死不死)라!
본래 생사(生死)가 없는데
어디에 생일(生日)이 있습니까? 라고 하여
이대통령을 크게 감동케 하였다.>

** 1958년(戊戌年: 71세)
* 대한불교 조계종 제3대 종정(宗正)에 추대되다.

<* 대한불교 조계종 종단 정화불사 이후
제1대 종정에는 설석우(薛石牛) 스님,
제2대 종정엔 하동산(河東山) 스님이 추대되었으며
제3대 종정엔 이효봉(李曉峰) 스님이 추대되었다.>

* 여름 안거는 경기도 양주(楊州) 흥국사(興國寺)에
종정실(宗正室)을 마련하고 주석하다.

* 겨울 안거는 대구 팔공산(八公山) 동화사(桐華寺)
금당선원(金堂禪院)에서 주석하다.

<* 이때 동화사에서 시자로 법흥(法興) 스님이 수계 득도하였다.>

** 1960년(更子年: 73세)
* 여름 안거 결제부터 3년 간 미륵산 미래사 토굴에서 주석하다.

** 1962년(壬寅年: 75세)
* 4월 11일. 통합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 초대 종정 "에 추대되다.

<* 드디어 비구. 대처간의 오랜 분규가 종결되고
새로운 통합종단이 탄생되었다.

사찰관리 법에 의해 새로운 종단등록을 마치고
대한불교 조계종의 초대 종정에 추대되었다.
그리고 조계종 전국신도회 총재(總裁)에 추대되었다.

이때 통합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의 총무원장에는
송광사 출신이었던 임기산(林綺山) 스님이 취임하였다.>

** 1963년(癸卯年: 76세)
* 10월. 대구 팔공산 동화사가 종정 주석사찰로 선정되어
금당선원으로 이석하다.

<*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本寺)인 동화사가
종정스님의 주석사찰로 선정되고
스님의 제자인 구산 스님이 동화사 주지에 취임하였다.

그리하여 통영 미래사 효봉대에 계신 종정스님을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으로 모셔와 조실스님으로 추대하고
금당선원의 미소실(微笑室)에 모셨다.

그 후 1966년 5월 13일,
밀양 표충사로 이주할 때까지 구산 스님은
극진한 효순심으로 은사스님을 시봉하였다.

스님은 노환(老患)으로 인해 건강이 더욱 악화되자
곁에 계봉(溪峰) 노스님을 비롯하여
시자로 현호(玄虎), 달진(達眞), 지진(智眞) 등 손상좌(孫上佐)와
청신녀 정보경화(鄭寶鏡華) 등이 시중을 들였다.>

* 말년엔  "무(無)라 노장(老長) "이란 별명이 생기다.

<* 스님에게  "무라 노장 "이란 별명이 생겼다.
항상 화두일념인 일행삼매(一行三昧)중에 자나 깨나
늘  "무 "라!  "무 "라! 하면서 선정 속에 살고 계셨기 때문.

누가 무슨 이야기를 묻더라도 항상  "무라, 무라! " 하였다.
스님은 간혹  "무라, 무라! " 하면서 손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하고
 "무라, 무라! " 하면서 노래를 부르듯 흥겨워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시봉하던 시자가 노스님께 조용히 여쭈었다.

 "노스님! 노스님께서  "무라, 무라! " 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
 "조주(趙州) 스님한테 가서 물어보아라. "
 "노스님!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조주 스님도 몰랐는데 내가 알 턱이 있나? "
 "노스님! 무슨 말씀인지 더욱 모르겠습니다. "
 "너,  "이뭣고 노장 " 아니? "
 "잘 모르겠는데요. "

 "옛날에  "이뭣고 노장 "이란 스님이 있었다.
그 노장이 바로 조선시대 유명한 서산대사(西山 大師)의 제자로
편양언기(鞭羊彦機) 선사인데,
한평생을  "이뭣고, 이뭣고! " 했었지.
그 누가 무어라 하고 묻던 간에 항상  "이뭣고, 이뭣고! " 했거든.
그래서 이뭣고 노장이란 별명이 생기게 된 거야.
그 노장이  "이뭣고, 이뭣고! " 한 뜻을 네가 분명히 알 때
내가  "무라, 무라! " 한 뜻을 알 수 있어.
알겠느냐? "
 " ……  "

이렇게 스님은 노년에 이르러  "무라, 무라! " 하면서
일상삼매(一相三昧) 중에 마치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소요자재 했다.

누구든 이  "무라, 무라! " 한 뜻을 분명히 알 때에,
나를 알 수 있고,
나를 알 때에
조주 스님을 알 수 있으며,
조주 스님을 알 때에
부처님 법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말씀하였다.>

 

 




 

2020.03.28 1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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