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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법인 三法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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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idsee8512    
애국 (mcidsee8512)
제행무상 諸行無常 / 모든 것은 변한다.
제법무아 諸法無我 / 변하는 모든 것에는 실체가 없다.
일체개고 一切皆苦 / 변하는 모든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
여기에 열반적정 涅槃寂靜을 넣기도 한다.
때로는 이 네가지를 넣어 사법인 四法印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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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봉선사 일대기 27회







입문 4년만에
** 도 깨치러 토굴정진 시작 **




석두스님이 화두를 내리며 일러준 설법 내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더욱 짓눌렀다.

스님은 무자 화두를 깨치기 위해서
금강산의 이곳 저곳에 있는 암자에서 용맹정진도 해보고,
선지식을 두루 찾아서 운수행각도 해 보았으나
그것이 그렇게 쉽게 보이지를 않아서
초조하기만 했다.

자신의 두터운 속세의 업장(業障)과 무능함을 한탄했다.
효봉스님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석두스님을 찾아뵈었다.

\\"스님께 한 가지 청이 있어서 왔습니다.\\"
\\"청이라니 그게 무언가 일러보게.\\"
\\"예, 제가 반야에 인연이 엷은 데다가 업장이 두터운지라
도무지 화두가 열리지 아니하옵니다. 하여서 스님,
다름이 아니옵고 토굴을 짓고 그 속에 들어가
사생결단을 하고자 하옵니다.\\"
\\"사생결단?\\"

석두스님은 문득 눈을 크게 뜨고 효봉스님을 쳐다보았다.

\\"스님! 토굴에 들어가 일대사(一大事) 인연을
해결할 때까지는 바깥 세상에 나오지 않을 생각입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요. 스님!\\"
\\"토굴에 들어가 깨닫지 못하면 나오지 않겠다?\\"
\\"예, 결단코 바깥 세상에 나오지 않겠습니다.\\"

실로 놀라운 각오였다.
석두스님은 효봉스님의 얼굴빛에서 이미 그 각오를 읽었다.

\\"알았네, 자네의 각오가 정히 그러하다면
허락할 터인즉 바깥 걱정은 말고 들어가게.
부처님도 설산에서 6년 고행을 하셨고,
달마조사도 소림굴에서 9년 면벽을 하셨지 않았던가?
그대도 꼭 한소식을 얻어오게.\\"

그런데 효봉스님이 토굴에 들어가 있는 동안
시봉을 들어줄 스님이 필요했다.
스님은 대중을 모아놓고
누가 효봉스님의 시봉을 들어주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대중은 침묵을 지킬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의 수행정진을 위해서
금강산까지 왔는데 남의 시봉이나 들면서
기약도 없이 몇날 며칠을 허송세월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석두스님은 보문암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비구니 도량인 법기암으로 갔다.
이때 마침 다행스럽게도
효봉스님의 시봉을 들어주겠다는 스님 한 분이
자원을 했다.
법기암 원주인 대원(大願)스님이었다.

효봉스님이 머리를 깍고 불문에 들어온 지 4년.
그의 세속 나이 마흔세 살 되던
단기 4263년(서기 1930) 초봄.
깨닫기 전에는 절대로 바깥세상에 나오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토굴로 들어갔다.

토굴은 겨우 방 한칸에
뒤쪽으로 용변을 볼 수있게 구멍하나를 뚫고,
앞쪽으로는 겨우 밥그릇 하나 들락거릴만한
창구멍 하나를 남겨두고는 드나들 수 없도록
사방 벽을 밖에서 봉해 버렸다.

토굴 안에는 겨우 입은 옷 한 벌과 방석 석 장뿐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다.

\\"운봉수좌님! 금강산의 추위는 이른 겨울부터
늦겨울까지 살을 파고드는 추위입니다.
옷가지랑 이불을 더 가지고 들어가셔야지요.\\"
\\"나는 잠자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할것이므로 이불은 필요없고,
안에만 있을 것이므로 갈아입을 옷도
필요없을 터이요, 다만 하루 한번
군불이나 지펴주면 고맙겠네.\\"

\\"그래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요, 스님.\\"
\\"되었네, 밥은 하루에 한끼만 먹을 터이니
창구멍 앞에 가져다 두고 가시게.\\"
\\"정말 필요한 것이 없겠습니까?
제가 매일 들를 테니 언제라도 말씀만 주시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말 대답은 일체 하지 않을 테니
여기 와서 아무말도 하지 마시게.\\"
\\"묵언(默言)정진까지 하신다구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소승 이만 물러갑니다.\\"

효봉스님의 토굴정진은 결사적인 각오였다.
일체 인간세상과는 절연된 무념무상의 상태였다.

봄이 오고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의 그림자도 풍속도,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편안함도 모두 토굴 안으로는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토굴안의 스님이 누웠는지 앉아있는지
춤을 추는지 눈을 감고 있는지 뜨고 있는지
숨을 쉬는지 숨이 끊어졌는지
토굴밖에서는 종시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매일 하루 한끼씩 들여보내는 공양그릇이
그 이튿날 빈 그릇으로 나오면 살아 있다는 것을
짐작할 따름이었다.

매일 스님께 공양을나르고
군불을 지피는 일을 맡은 시봉스님만 토굴에 가볼 뿐
날이 갈수록 다른 스님들의 기억에서 조차


효봉스님의 존재는 잊혀져 갔다.





 



  




 

 

2020.09.10 13:35:50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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