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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법인 三法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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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idsee8512    
애국 (mcidsee8512)
제행무상 諸行無常 모든 것은 변한다.
제법무아 諸法無我 변하는 모든 것에는 실체가 없다.
일체개고 一切皆苦 변하는 모든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
여기에 열반적정 涅槃寂靜을 넣기도 한다.
때로는 이 네가지를 넣어 사법인 四法印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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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묻고, 성철 답한 설전 雪戰

 

    ~ 법정 묻고 성철 답한 설전(雪戰)

    “깨우치면 모두가 부처님” ~





    - 설전(雪戰) - 성철, 법정 지음|책읽는 섬 펴냄|1만 3천원 -


    1967년, ‘백일법문’ 속의 성철·법정 스님
    20년 속세의 나이 초월한 두 거장의 우정
    법정 스님 ‘필화’에 휘말려 거쳐 옮기기도
    사회에 대한 책임감 확인…본질은 자비

    “흔히 밖에서 말하길 큰 스님 뵙기가 몹시 어렵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문턱이 너무 높다는 거지요.
    스님 뵈려면 누구를 막론하고 불전에 3천배를 해야 된다고 하는데요.
    어째서 3천배를 하라고 하시는지요?”〈법정스님〉


    “나를 보기 위해서 3천배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남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기올 때 나를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오시오.
    나를 찾아와서는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의미로 사람이 찾아오면
    부처님께 절을 하도록 시킵니다.”〈성철 스님〉


    법정 스님과 성철 스님은 속세 나이와 승려로서의 나이 모두 정확히 20년 차이가 난다. 법정 스님이 출가하기 한 해 전인 1955년에 성철 스님은 이미 초대 해인사 주지에 임명될 정도로 명성과 인망이 자자했다. 물론 이때 성철 스님은 주지 임명을 거절하고 대구 파계사 성전암으로 옮겨 10년 수행에 들어갔지만 말이다. 각기 해인사와 송광사서 출가해 법통이 달랐으나, 법정 스님에게 성철 스님은 아득한 선배이자 조계종의 큰 어른이었다. 법정 스님은 경전 공부에 진척이 빠르고 경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실력이 뛰어나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했다. 또한 〈무소유〉 등 타고난 문재를 바탕으로 수상집을 통해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경전 번역 작업을 하면서 통도사와 해인사에 머물렀다.

    법정 스님이 해인사 강원에 머물던 1967년, 성철 스님은 해인사 해인총림 초대 방장에 추대된다. 그리고 성철 스님은 같은 해 12월 4일부터 100일 설법에 들어간다. 이것을 ‘백일법문(百日法門)’이라 한다. 이때의 설법은 하나도 빠짐없이 녹취됐다. 그런데 이튿날인 12월 5일에 이르면 한 젊은 승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성철 스님 법문에 끼어든다. 바로 법정 스님이다.

    성철 스님 현답 이끌어낸 법정 스님의 현문

    성철 스님 백일법문이 열린 장소는 해인사 대적광전이었다. 수많은 승려와 불자가 스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였다. 법정 스님은 여기서 아주 원론적인 질문들을 던져 성철 스님의 형이상학적인 설법이 대중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가령 이렇다. “불교란 무엇입니까?” “타 종교와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중도 이론을 좀 쉽게 설명해 주세요.” “중국 선종에 대해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등등. 그 질문들은 불교의 초심자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법정 스님은 스스로 초심학인 입장서 질문을 던져 성철 스님 법문을 대중 눈높이에 맞추려고 했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나누기 위해서 물었다. 성철 스님의 뛰어난 점 역시 이 대목서 빛을 발한다. 법정 스님의 의도를 파악한 것인지, 성철 스님 또한 법정 스님 그 질문에 일일이 성심을 다해 답했다.

    법문이 무르익으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중국의 육조 혜능이 일자무식이었다는 이야기에 대해 법정 스님이 성철 스님을 따지고 든 것이다. ‘가야산 호랑이’라는 별명서 드러나듯, 뭇 제자와 후학들은 성철 스님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은 스스로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해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 역시 성철 스님의 넓은 품이 드러난다. 스님은 마치 영민한 제자의 도전을 즐거워하는 스승처럼 법정 스님의 은근한 도전을 즐기는 듯 일일이 답한다. 그리고 법정 스님이 조심스러운 어투로 성철 스님에게 이렇게 묻는다.

    “사람이…… 정말 성불할 수 있습니까?”

    개신교 입장서 보면 성직자가 ‘정말 천국이 있을까?’라고 의문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 법정스님의 이 질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법정 스님이 성철 스님에게 던진 질문들은 성철 스님의 설법을 대중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포석이자, 서른 후반에 접어든 ‘청년’ 법정의 불교에 대한 간절한 생각 그리고 그의 마음 한 구석을 엿보게 만든다.

    .




    ▲ 사진 왼쪽부터 현호 스님, 성철 스님, 법정 스님 순. 1973년 백련암 뜰에서 촬영했다.


    법정 스님, 불일암으로 향하다

    공교롭게도 1968년 법정 스님은 일종의 ‘필화’에 휘말린다. 성철 스님은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불전에 3천 배를 해야 한다는 규칙을 정했다. 그래서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법당서 절하는 대학생 무리를 목격한 법정 스님이 그것은 절이 아니라 몸을 굽혔다 폈다 하는 굴신운동이라는, 성철 스님의 ‘3천 배’ 규칙을 폄하하는 글을 대한불교(현 불교신문)에 기고했다. 성철 스님의 상좌인 원택 스님은 이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한다.

    “당사자인 성철 스님께선 별말씀이 없으셨고 해인사 주지 스님께선 방장 스님(성철)은 법정 수좌를 좋아해라며 다독였으나, 혈기 넘치는 젊은 스님들이 발끈해 법정 스님이 바깥나들이 가신 틈에 스님 방의 물건을 치워 버린 일이 있었다. 법정 스님은 논란이 일자 아무 말 없이 서울로 수행처를 옮기셨다. 이것이 1968년의 일이었다.”

    서울 봉은사로 수행처를 옮긴 법정 스님은 이후 월남파병을 반대하는 뜻을 밝혔다가 승적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다. 또한 유신정권 시절에는 재야인사와 관계하다가 감시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던 중 법정 스님은 1975년 송광사 불일암으로 향한다. 종교를 초월한 스테디셀러인 〈무소유〉가 출간된 것은 이듬해인 1976년이었다.

    세상 향해 열려있는 두 스님의 촌철살인

    1980년 초반, 두 권 분량 원고를 탈고한 성철 스님이 상좌인 원택 스님에게 일렀다. “송광사 불일암 법정 스님을 찾아가라. 가서, 당대에서는 법정 스님이 한글 글쓴이로는 최고니 내가 〈본지풍광〉과 〈선문정로〉의 윤문을 부탁한다고 말씀드려라.”

    그 전언을 전해 들은 법정 스님은 “스님 글에 크게 손댈 생각은 없다”면서도 정성을 기울여 두 권의 책이 발간되도록 보탰다. 원택 스님은 이때 법정 스님과 함께 작업한 인연으로 이후 성철 스님 사상을 전하는 책을 편찬하는 일에 매진한다.

    1981년, 성철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제 6대 종정에 추대된다. 같은 해 12월에는 〈선문정로〉가 발간됐다. 이 책이 만들어지는 동안 두 스님 사이에 왕래가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1982년 벽두 한 언론사가 마련한 대담을 위해 두 스님은 다시 마주 앉았다. 못다 푼 응어리가 있던 것일까? 법정 스님은 대뜸 다시 3천 배에 관해 물었다. 이날의 대화는 성철 스님이 3천 배 규칙에 담긴 오해를 푸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 대담서 두 스님은 자아를 닦는 일상 수행법과 불교의 근본 정신, 지도자의 덕목, 물질만능 시대의 인간성 회복 문제, 권력과 이념에 편승치 않는 언론, 미래가 꺾인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눈다. ‘백일법문’ 속의 대화가 불교를 주제로 삼았다면, 이 대담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의 고뇌와 문제들이 지금도 되풀이되는 것일까? 이때 두 스님이 나눈 대화 내용들은 공교롭게도 정확히 현재 지금을 향한다. 그리고 두 스님의 대화는, 이들이 치열하게 타인과 세상을 위해서 살아갔음을, 또한 항상 사회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 본질은 ‘사랑’이었다.


        2019.06.12 1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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