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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법인 三法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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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idsee8512    
애국 (mcidsee8512)
제행무상 諸行無常 / 모든 것은 변한다.
제법무아 諸法無我 / 변하는 모든 것에는 실체가 없다.
일체개고 一切皆苦 / 변하는 모든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
여기에 열반적정 涅槃寂靜을 넣기도 한다.
때로는 이 네가지를 넣어 사법인 四法印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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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없음과 숭고

 

 

 

 


수평선이 보이는 하늘에 짙은 구름이 깔려 있다. 회색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수평선 가까이 간간히 보이는 흰구름은 가이없는 모습이다. 이를 언어적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선재도에 왔다. 목섬이 바라 보이는 제방에 앉아 있다. 밀물시간이 되어서 바다는 꽉찬 느낌이다. 제방에 앉아서 가이없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다.

 


선재도에 온 것은 일몰을 바라보기 위해서이다. 도시에서 일몰만 보다 보니 바다에서의 일몰이 보고 싶었다. 서울에서 대부도 방아머리까지는 두시간 걸렸다. 그곳에서는 바다 노을을 보기가 마땅치 않았다. 차를 영흥도 방향으로 몰았다. 도중에 관찰하기 딱 좋은 장소를 발견했다. 선재대교 가까이 목섬이 보이는 해안이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 수평선이다. 수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런 의문은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과 같다. 눈으로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인식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수평선과 지평선은 분명히 눈에 보이는 것이다.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한계를 말할 때 인식의 지평이라고 말한다.

 


수평선은 바다와 하늘을 가른다. 해안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한계가 있다. 인식 범위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수평선 밖은 인식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럼 하늘은?

하늘에 한계가 있을까? 청명한 날에 보는 푸른 하늘은 한계가 없다. 이를 가이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의 바다는 어떠할까? 육안으로 관측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시시각각 형태를 달리하기 때문에 그 끝을 알 수 없다. 그래서 가이없는 구름이라고 해 보았다.

도시에서도 하늘과 구름을 본다. 바다에서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도시의 마천루가 제아무리 경이롭다고 하더라도 하늘의 구름만 못하다. 하늘 전체를 뒤덮고 있는 구름에 비하면 크기가 비교되지 않는다. 인간이 이룩한 문명이 대단하다고 할지 몰라도 하늘과 견줄 수 없다.

여기 아름다운 꽃이 있다. 흔히 예쁘다고 말한다. 갖가지 종류의 꽃이 필 때 에스엔에스에서는 촬영된 꽃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번 보고 그친다. 두 번 보고 세 번 보지 않는다.

중국여행 가면 풍광에 놀라게 된다. 마치 동양화에서나 본 듯한 경치를 접하게 됐을 때 감탄사가 나온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마치 정지화상처럼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꽃 본 듯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스케일이 커서 장쾌한 것이다. 그래서 비싼 돈 주고 해외여행 가나보다.

 


장쾌한 것 보다 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가이없는 수평선이나 지평선을 보았을 때이다. 밤하늘에 별이나 은하를 보았을 때도 해당된다. 하늘에 짙게 드리워진 구름을 보았을 때도 가이없음을 알게 된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하지 못했을 때 한계를 느낀다. 아름다운 꽃이나 장쾌한 풍광과 비할바가 아니다. 이를 무어라 해야 할까? 숭고라 해야 할 것이다.

 


숭고는 자연의 조화에서 볼 수 있다. 일출 때의 여명과 일몰 때의 노을에서 극대화된다.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것은 숭고의 대상이 된다. 가이없는 수평선이나 지평선, 하늘의 구름도 숭고의 대상이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인식의 지평 너머에 있는 것은 모두 숭고의 대상이 된다.

숭고는 자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서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인가? 가이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다.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하느님으로서 지내는 수행승이 되는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이 자애의 마음으로 동쪽방향을 가득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남쪽방향을 가득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서쪽방향을 가득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북쪽방향을 가득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한량 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일체 세계를 가득 채우고,..”

사무량심 중에서 자애에 대한 것이다. 나머지 연민, 기쁨, 평정도 위의 정형구에 단어만 바꾸어 넣으면 된다. 여기서 하느님은 브라흐마(brahma)를 번역한 말이다. 한역아함경에서는 범천(梵天)으로 번역했다. 색계와 무색계 천상에 사는 수승한 존재를 하느님(브라흐마)라고 한다. 자애의 하느님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누구나 자애를 닦으면 하느님이 될 수 있다. 숭고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자애를 닦아야 하는가? 한량없이 닦으라고 했다. 우주 끝까지 구석구석까지 자애의 마음이 미칠 수 있도록 닦는 것이다. 그것도 십방으로 가득 채우라고 했다. 그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을 때 가이없게 된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하늘과 같은 상태가 되었을 때 숭고가 된다.

아름다운 꽃이나 장쾌한 절경을 숭고라고 말하지 않는다. 인식의 범위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식의 지평 너머에 있는 것은 숭고의 대상이 된다. 밤하늘에 바라보는 별과 달, 우주가 그렇다. 수평선과 지평선이 그렇다. 하늘을 뒤덮고 있는 구름이 그렇다. 그 끝을 알 수 없을 때, 숫자로 헤아릴 수 없을 때 이를 '수학적 숭고'라 해야 할 것이다.

 


경이와 경외의 대상이 되는 것도 숭고에 해당된다. 화산이 분출했을 때, 지진이 났을 때, 태풍이 불 때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자연의 힘에 압도되었을 때 공포를 느낀다. 이를 안전지대에서 바라보는 자는 경외를 넘어 숭고를 볼 것이다. 자연의 측량할 수 없는 힘에 압도 되었을 때 이를 '역학적 숭고'라고 해야 할 것이다.

숭고에는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가 있다. 그러나 이는 자연에 대한 것이다. 물질현상에 있어서 숭고를 말한다. 사람에게도 숭고가 있다.

예쁜 사람은 꽃과 같아서 누구나 좋아 한다. 나이 들어서는 우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이 들어서 '예쁘다'는 말 보다는 '아름답다'거나 '우아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더 좋다. 이는 외모보다는 정신적 성장과 관련이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숭고함이다. 지혜와 자비를 갖춘 사람을 말한다. 성자가 이에 해당된다.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면 숭고의 대상이 아닐까?

아름다움과 존경을 넘어선 사람이 있다. 그 마음의 넓이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때 숭고가 된다. 한량없는 자애의 마음을 닦은 자를 접했을 때 범접할 수 없는 숭고를 느낀다. 부처님과 예수님 같은 성인이 해당될 것이다. 성자의 흐름에 든 사람은 모두 숭고의 대상이 된다. 가이없는 사람이다.




 



 


 

 

2021.10.13 17: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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