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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松의 하루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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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gong12    
법송(法松) (jingong12)
불교 사찰 및 새로운 세계의 아침을 기다리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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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잘못 자신에 있지 남에게는 허물이 없어 천은큰스님

 

모든 잘못 자신에 있지 남에게는 허물이 없어

 

<약력>
·1932년 전북 고창 生
·47년 월정사에서 지암스님 은사로 득도
·71년부터 전남 광주일원에서 포교앞장
·<봐서 행하는 길>등 저서와 수상록 법어집 다수

화엄경은 부처님 당신이 깨친후 마음 눈으로 보신것을 경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깨치지 않으면 절대로 못보는 세계가 화엄경 세계 입니다.

 

그러므로 깨침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화엄경 세계를 알아야 합니다. 불교의 요지를 말해봐라 할 때 몇분이나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불교의 요지는 한마디로 말해서 ‘깨침의 지혜와 자비’입니다. 깨침의 지혜로 보면 이세상의 모든 자리에는 인간의 마음이 일체를 요리함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상대한 것을 보면 나보고는 ‘인’ 너보고는 ‘연’이라 합니다. 인연이란 상대했기에 인연설인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 우주를 봤을 때 실다운 모습은 나와 인연 안된 것이 없다는 것 입니다. 남을 위한다고 하는 일들도 따지고 보면 모두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내 주위가 괴로운데 나만 행복할 수 없고 연을 따져보면 모두 친척아님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불어사는 마음은 현실극락의 길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신 것은 깨침의 길을 알려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깨쳤다는 분은 빛이 있습니다. 이것이 화엄경의 ‘여래광명각품(如來光明覺品)’내용입니다. 깨친분은 광명이 모든 세포에서 나온 답니다. 우리 불자들에게 그 빛을 보고 깨침을 얻으라는 제시입니다.


부처님은 발바닥으로 광명을 비추는데 삼천 대천 백억세계를 비췄답니다.

부처님께서 빛을 비추면서 구제할 대상이 필요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라는 사람과 화엄경이라는 법과 사람들이라는 비유법을 통해 설명하시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문수보살부터 각수보살 제수보살 보련보살 공덕주보살등 여러보살,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이지요. 이는 형상화로 설명하여 중생에게 정확히 이해하라는 뜻 입니다.

부처님이 세계를 연출하셨으니까 중생들은 문수보살의 신통력으로 쉽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자상한 마음의 표출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여래광명각품’의 뜻 입니다. 보고 깨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은 깨쳐야 되지만 자기만 깨치면 절대 안됩니다. 깨쳤으면 반드시 모르는 사람을 인도해야 합니다. 이를 일러 보살도의 실천이라 하지요.

자기만 깨치고 가만히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우주에 도움이 안됩니다.

다시말해서 착한 일을 한다는 것은 자기도 착하게 행동하면서 남도 착하도록 하는 것이지 나만 착한일을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악한 일을 많이하면 그 세상은 악의 세계일 뿐입니다. 현실지옥 이지요. 착한 사람이 많아야 악한사람이 적어서 세상 살기가 좋은 이치입니다.

깨닫기 위해서는 착해야하고 착하지 않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것이 불교의 이치 입니다.

그러면 착함은 얼마만큼 올라가야 하는것이냐 하면 그것은 부처님 경지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착함의 경지에 올라가면 저절로 부처님의 힘을 빌려가지고 중생들이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지요.

부처님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이가 정각을 보되 해탈하여 누가 없고 온세상에 안착하면 도안이 아니다’ 이말은 어떤사람이 부처를 이루어 해탈하고 성신이 됐을때 그 사람이 세간에 착심이 없고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그는 도인의 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불도를 믿으면 다른 사람도 믿게 하는것이 불자와 불심있는 자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같이 행을 했던 훌륭한 분이 계십니다. 수많은 고승 대덕들이 훌륭하였지만 신라승 교각스님이 그 분이지요.

신라 경순왕의 조카였던 교각스님은 출가하여 도를 깨달은뒤 지장신앙을 펴고자 24세에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서쪽 안위성 구화산을 수행처로 정하고 자리를 잡아야겠는데 그 땅이 민씨일가의 소유였습니다.

그래서 민씨를 찾아가 “가사를 덮을 정도만 땅을 주면 수행할 공간이 충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민씨가 “그정도 못주겠느냐며 좋은 곳 어디에나 가사를 펴보시라”고 말했습니다.

교각스님은 제일높은 산봉우리 위로 올라가서 “이만큼만 주십시요”하며 가사를 펴는데 민씨가 “예”하자 가사가 구화산 전체를 덮어버렸습니다. 그러자 민씨의 큰 아들이 놀라 그자리에서 출가했는데 도명이라는 상좌이며 아버지인 민씨도 뒤에 출가하여 무독기왕이되었습니다. 두 부자가 스님이 됐지만 아들이 사형이고 아버지가 사제인 사형사제지간 이였습니다.

그때당시 교각스님의 명성은 중국전체를 휩쓸고 신라에까지 자자했습니다. 수행자들과 신도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절간이 9백9십채나 됐다고 합니다.

수행자들이 너무많아 식량난에 시달리자 교각스님은 산자락 어귀로가서 땅을 파보라고 하니 하얀 흙이 나왔습니다. ‘금강토’라 하는데 쌀가루와 섞어서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교각스님은 불법을 펴고자 중국에까지 건너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불법을 펴신것이지요.

이처럼 나는 성불하지 못해도 모든 중생을 제도하지 않으면 성불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원을 받들어 중생 제도의 삶을 살았던 스님이 교각스님 이지요.

화엄경은 부처님 자신이 깨쳐서 부처님의 마음으로 보았던 것을 형상화한 것 입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을 화엄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화엄경을 보면 부처님은 우리의 존재성을 일깨워주는데 의미가 있고 문수보살은 지혜를 갖추는 수행법을 인식시켜주는데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중생들의 지혜를 위해 문수보살이 항상 거기에 등장하는 것이지요.

화엄경을 보면 문수보살로부터 시작해서 보현보살에서 끝난다고 하는 말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혜없으면 착한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입니다.

대개 착심이 없어서 맹해버리면 그 사람은 절대로 성불할 수 없습니다.

또 물질에만 치우치면 인간이 아닙니다. 사람이란 똑같은 것인데 다르게 보고 그런 아집에 집착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80%이상입니다. 자기는 안미쳤다고 하는데 모두 미친것이지요. 우리나라도 요즘 사람들이 인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전부다 ‘편안하게 살자’ ‘돈만 벌면 된다’ 하는 생각만하니 옆사람이 죽는지 굶은 사람이 있는지 병자가 있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자식이나 손자가 제대로 배우겠습니까. 3대도 못가서 집안이 폭삭해버리죠.

우리 인간은 모든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남에게는 절대 허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간에 많은 분쟁이 있는데 성불을 하여 가만히 안주해 버리면 정각자가 아닙니다. 부처님 말씀이 이겁니다.

부처님께선 체와 모양이 없는 줄을 자세히 알고 세상은 모든 것이 시간적으로 변화한다는 진리를 말씀 하셨습니다.

한살에서 1백살까지 사진을 찍어놨다 해보세요. 그러면 시간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해마다 사진을 보면 제대로 변화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어떠한 물건도 언젠가는 깨져서 모양이 달라져 버립니다. 그러면 공간적으로 어떻습니까.


조그마한 물질 하나도 작년에 본것과 올해에 본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그자리에 있지 않으니 허무합니다. 있어야할 사람도 보여야 되는데 안보이거든요.


이 세상은 시간적으로 전부가 무상하고 공간적으로는 전부가 허무하지요. 그런가 하면 물건 하나를 놓고 봐도 내것이라고 해봐야 저녁에 도둑이 와서 가져가 버리면 내것이 아닙니다. 내것이라고 만들어 놨는데 자식이 와서 달라면 안줄 수가 없어요. 이세상에 내것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공동체로 쓰는 공유물인 것 입니다.


그래서 옛날 어떤 스님은 그 마음이 욕심으로 되찾아 갈려고 하면 혼자 앉아서 이렇게 말했답니다.“주인공아 정신차리렸다” “예”하고 정신을 차려서 수행을 했답니다.’


이세상에서 그렇게 좋다는 것이나 다정한 것이나 좋은 물건이나 궁극적으로 영원히 함께하는 친구는 없는 것입니다. 친구도 몇번 안만나면 변해버려요. 또 물질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다른사람에게 넘어가기도 합니다. 죽어서 몸이 흩어지면 세간의 인연은 끝나버리지요.


부처님 말씀에 어떤 사람이 무슨말을 하든간에 듣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듣는 지혜가 없으면 바람부는대로 실버들 움직이듯이 변해버립니다.


그러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이 신용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생각하는 지혜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수행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나만의 명이 있기때문에 내 생각과 내 입으로서 하는 것입니다. 내 수행은 신 구 의 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몸도 입도 생각도 주의해야 됩니다.


사람은 나쁜쪽으로 가기는 쉬워도 좋은쪽으로 가기는 어렵습니다. 수행이란 인욕입니다. 참는 겁니다. 참는 힘이 없는 사람은 아귀나 지옥에 떨어질 사람들입니다. 거울에 때가 끼면 닦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닦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답답하지요.


우리 자성도 마찬가지 입니다. 거울과 같이 항상 마음을 닦아내야 합니다. 수행으로 더러운 때를 닦아내면 언젠가는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만 부처님이 아니고 여러분도 부처님 입니다. 다만 깨치고 깨치지 못하고의 백지장 한장의 차이밖에 없는 것입니다.


수행하는 자세로 살며 한칸 한칸 사다리 올라가듯이 깨침의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부처에도 법보에도 그 마음이 평등하여 두 생각이 안 생기는 경지가 되면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다 법보다 하는 그 마음이 항상 평등해서 차별심이 안 생기는 경지가 되면 부처님 경지의 마음을 저절로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이렇듯 부처님과 자기자신의 몸을 보고 평등안에 머무르면 머물것도 들을 것도 없이 번뇌는 영원히 만나지 않는 나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부처님 지혜로 회향하는 마음을 내면 나는 그럴 생각이 없어도 언젠가는 세상 사람들이 나를 큰 인물로 보게되는 것입니다. 중생이라는 것은 있고 살고 생각하고 하지만은 사실은 알고보면 주인공이 있지 않습니다.


육체를 움직이는 이치 즉 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주인공의 입장에서 어떠한 무너짐도 없는 것입니다.


위없는 도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무량한 주인공이 모든 도를 알고 무량해서 모든 상대하는 것을 알게되면 두려움이 없게 됩니다.


모든것이 내것이요 내책임이니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정지한 | 2007.09.02 11:33:15 | 조회수(2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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