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에는 추석 공휴일이 하루였다. 운이 좋아 토요일이나 월요일이 추석이면 그나마 여유있게 추석을 즐겼다. 그 때만해도 교통편이 시외버스나 기차가 주였는데 예매가 원활치 않아 나는 늘 청량리 부근에서 출발하는 관광버스를 이용하였다. 요금은 5천원 정도로 좀 비쌌다. 고속도로가 없으니 국도로 해서 밤 늦게 영주에 도착하면 집에 잠깐 들렀다가 친구들 모임에 갔다. 객지에서 생활하던 친구들은 명절 전날 여관방을 예약해서 밤새 놀곤하였다. 새벽이나 되어서 집에 들어가 잠깐 눈을 붙였다가 큰집부터 시작해서 여러 친척집을 거쳐 차례를 지내고 마지막은 우리 집이었다. 거의 점심 때가 되어서 차례가 끝이 났다. 그 사이에 친척 어른들께 인사도 드리고 사촌.육촌.팔촌들과도 반갑게 안부를 나누었다. 각 집마다 음식을 조금씩 먹긴해도 점심때 쯤이면 포만감에 잡혀 있었다. 배도 부르고 하늘도 높고 정겨운 한가위였다. 오후에는 외갓집, 이모네, 고모네 집을 방문하여 인사를 드렸다. 그 때만해도 친척들이 모두 근동에 살아서 왕래가 잦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윗어른들은 다 돌아가시고 우리 모친만 생존해 계셔서 내가 모시고 살고있다. 또 친척 아이들도 모두 떠나 고향에는 사촌동생 하나만 살고 있고 고종사촌 여동생이 풍기에 살고 있다. 수 많은 시간들 속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지금은 여행차 가끔 고향을 갈 뿐 거의 가본지가 몇 년이 지났다.
짧은 명절이지만 밤늦게 23시 정도에 출발하는 보통급행 열차를 타고 청량리에 내리면 아직은 버스나 전철이 다니지 않아 인근 해장국집에서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맛있게 먹었었다. 지금도 아삭거리며 입에 감기던 깍두기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 날이 좀 밝으면 버스.전철을 타고 내가 사는 곳으로 갔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