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무산 스님, 그 흔적과 기억(법문)
아지랑이
원래 내 것은 없는 거야. 아무것도 붙들어 둘 수는 없어. 돈도 사람도 집도. 돈은 아지랑이 같은 거야. 잡으려고 하면 안 잡혀. 돈을 버릴 줄 알아야 돈이 들어온다. 돈의 성품이 아지랑이다. 아지랑이. 아지랑이만 아지랑이가 아니라 모든 게 아지랑이다. 사물 자체가 다 그렇다. 설악산을 다 갖고 있은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 아지랑인 줄 알면서 열심히 쫓아다니는 게 인생이지. 아지랑이를 쫓는 게 삶 자체야. 아무것도 필요 없는 거야. 아지랑이 붙들고 사는 동안 으스대다 가는 거야. 결국은 다 헤어지는 거야. 사람하고도 헤어지고 돈하고도 헤어지고 집도 물건도 다 두고 가는 거야. 내 것은 오로지 내 마음 하나밖에는 없다. 꿀벌이 꿀 모아 놨다가 자기는 먹지 못하고 개미하고 곰하고 사람한테 다 빼앗기지. 사람도 마찬가지야.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집 사고 저금하고 모아놨다가 자식들한테 산사람한테 다 주고 가. 알렉산더는 죽을 때 손을 관 밖에 내놓았다.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거야. 다 버리고 간다는 거야. 살아 있을 때는 아등바등 모아서 죽을 때는 다 버리고 가.
하심
가는 데마다 내 집이다 생각해라. 고맙다 고맙다고 기도해라. 저 창밖에 감나무도 나를 위해 심어둔 거고 자동차도 음식도 모두가 나를 위해 있는 거야. 크게 생각하면 다 나를 위해 있는 거야. 다 나와의 인연이라고 생각하면 복이 들어온다. 마음먹기 달렸다. 마음은 허공이야.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본다. 한 이불 아래 자도 다른 사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마음을 붙들려고 하지 마라. 마음 안 맞는 일은 잊어버려라. 다 잊어버려라. 좋은 것만 기억해라. 마음고생 하느냐. 고생이 무슨 말이냐. 괴로울 고(苦)에 날 생(生)이라. 태어나서 괴로운 게 고생이야. 세상에 나온 게 고생이라는 거야. 참을 인(忍), 흙 토(土). 세상은 인토야. 세상에 나왔으니 참아야 한다는 거야. 다 나름대로 고통이 있는 거야. 참고 살아야지. 그러니 죽으면 편안하게 됐다고 하지. 그래, 어차피 죽을 거. 다 죽는다. 언제나 하심으로 즐겁게 살아라. 하심(下心)이란 화내지 말고 남의 허물 보지 말고 남의 허물 말하지 말고 마음을 낮추는 거야. 묵언정진 면벽수행. 앉아 있으면 법문이야. 법당에 부처가 법문이야. 앉아 있는 자체가 법문이다. 입을 열면 다 그르친다. 말 없는 부처를 바라보며 마음을 오롯이 하는 맑은 마음 자체가 도(道)이고 선(禪)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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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
세상에 도덕군자가 없다. 자기 먹고살려고 성자인 척하지 성자는 없어요. 서로서로 이용하고 뜯어먹으며 사는 게 인생이야. 먹을 것 때문에 싸우지. 먹을 것 앞에 도덕군자가 없다. 누구든지 개인한테 허물이 있는 거야. 자기 허물을 알면 남의 허물이 안 보여. 어정어정 세상 칭찬하고 사는 거야. 상 받았다는 이야기 들으면 칭찬해주고. 예쁘다 착하다 칭찬해주고. 경비아저씨 청소아줌마 보면 먼저 수고한다고 인사하고. 아첨하는 거랑 비위 맞추는 건 다르다. 아첨은 이익을 얻으려고 상대방에게 간사하게 구는 거지만, 비위 맞추는 건 상대방 기분을 좋게 해주는 거야. 비위도 맞춰주고 부처님 기쁘게 하듯이 옆 사람 기쁘게 해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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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불교평론 75호, 2018년 가을호, 일부>
***설산 무산 스님
조오현 승려시인
생몰 1932년 경남 밀양시, 2018년5울26일
데뷔 1968년 시조 동인지 "시조문학" 등단
경력 1977 대한불교조계종 신흥사 주지/1991년 낙산사 회주/1992년 신흥사 회주/1998년 백담사 회주
수상 2007 제19회 정지용 문학상/2009년 DMZ평화상 대상/2011 제23회 포교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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