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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경 강의(셋째시간)

 

 

원각경(셋째시간-제1분 문수보살장)

 

 

              법사스님 - 정화주지스님






제1분 문수보살장

 

6. 인지법행(因地法行)은 문수보살이 부처님께 어떻게 해서(무슨 수행을 해서) 부처가 되었습니까?하고 물으며 부처되는 방법을 여쭈운 것이다.

 가) 청정한 진여

 나) 보리

 다) 열반

 라) 바라밀

7. 인지법행은 신해(信解=믿고 의지하는것)로서 수행을 일으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가) 인지는 본래 있는것, 생긴자리, 바탕으로 중생이 도달해야할 자리이며 부처의 자리이다.

 나) 원각은 중생들의 현상(각각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나왔으며 인지법행은 원각의 또 다른 형태이다.

8. 성인들에게는 법을 청할 때 세 번을 청하여야 법을 설하심.

9. 모든 대중이 삼매에 들어 법을 들었고 문수보살이 ‘중생(미래,말세의 중생)들을 위하여 설해 주십시오’ 하고 부처님께 청을 하였음.

 가) 보살과 중생의 차이는 보살은 미래, 말세 중생들을 위하여 살고, 중생은 자기자신만을 위하여 산다.

 나) 대승과 소승의 차이다.

10. 바르게 주지함을 : 득정법주(得正法住)

 가) 법주사(法住寺)는 법이 머무는 자리이고

 나) 주지(住持)는 법을 잘 알아서 깨달음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11.법왕(法王)은 대승기신론에서는 원각, 화엄경에서는 묘각(妙覺)이라하며 원각경에서는 원각이라 한다. 무상법왕(無上)은 더 이상 높은 곳이 없는 최고의 자리이다.

12. 원각의 자리에서 인지법행이 나왔으며 대다라니문(大多羅尼門)에서 흘러 나온 것이 청정힌 진리, 보리, 열반, 바라밀이다. 대(大)는 체상용(體,相,用)으로 ‘무한하다’는 뜻이다.

 가) 청정한 진여는 眞은 반대말이 위(僞=거짓)이며 如는 변하지 않는 것, 항상하는 것이다.

  0.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이치가 변하지 않는 것이고

  0. 항상하는 것은 고정된 것이 없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0. 진여는 거짓스럽지 않고  인연멸(因緣滅)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나) 보리(菩提)는 반대가 ‘번뇌’이며

  0. 번뇌를 전환(轉換)하면 보리이다.

  0. 번뇌가 끊어지는 것은 다른 생각을 끊는 것이 아니라 전환의 자리임

 다) 열반(涅槃)은 생사(生死)를 전환하는 것이다.

  0. 생사를 끊었다는 것은 생사에 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0. 몸이 멸하면 영원히 멸하는 것이 아니고 인연이 있으면 반복 생사가 된다.

  0. 생사를 전환 시키는 것이 열반이다.

 라) 바라밀(波羅蜜)은 방편으로 전환시켜 나가는 것이 방편이다.

  0. 지혜수행을 통해 원각의 자리로 갈 수 있다.

  0. 육바라밀은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로

  0. 응무소주 이생기심(머물지 않고 마음을 내는것)으로 도와주는 것은 바라밀이고 상을 드러내어 도와주는 것은 그냥 도와주는 것이다.

  0. 지계도 스스로 잘 지켜나가는 것은 지계행이고 이타행을 행할 때 바라밀이 된다.

  

옛날 이야기

   법화경에 장자궁자 이야기가 나오는데,

옛날에 난리가 나서 외아들을 잃어버린 장자가 있었는데 무역을 하면서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수십년이 흘러 아들이 거지가 되어 아버지 집에 이르게 되었음. 문틈으로 보니 고귀한 사람이 시종들의 시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니 ‘이런 분은 지체 높은 사람 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아버지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문틈으로 보는 거지가 아들임을 알아보고 시종을 시켜 데려오려고 하였으나 아들인 거지는 자기를 잡으러 오는 줄 알고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시종들은 쫓아가서 잡았으나 아들은 놀라서 기절을 하였다. 아버지는 기절을 한 아들을 놓아주라고 하면서 시종들을 거지로 행색을 꾸며 ‘저 집(아버지집)가서 일을 하면 품삯도 받고 좋으니 들어가서 일도 하면서 같이 살자고 하였다.’ 아들은 아버지 집에 들어가 처음에는 똥거름을 치우는 일을 하다가 차츰 재산관리 하는 일도 시키고 후에는 장자 방에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면서 모든 것을 관리하는 집사 일을 하도록 하였다. 장자는 늘 따듯한 마음으로 아들을 대했으며 장자가 죽을 때 비로소 아들에게 장자의 아들임을 밝혀 재산을 모두 물려주어 아들도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0, 아버지는 밖의 부처님으로 원각의 자리이고, 아들은 내면의 부처님으로 오염되어 가는 우리들이다.

  0. 밖의 부처님이나 내면의 부처님은 하나라는 것이다.

  0. 아들이 집으로 이끌려 오는 것은 내적관찰이고(=내가 누구와 어느 방편으로 사느냐)

  0. 똥거름을 치우는 것은 번뇌, 망상을 조금씩 제거해 가는 과정이다.

  0. 집사가 되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자리를 찾은 것이고

  0. 유산을 물려주고 죽는 것은 완전한 자성 청정심을 찾은 것이다.(=부처의 자리, 부처와 내가 하나라는 것이다.)

  0. 거지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인지법행이다.

13. 물로 비유하면 상수원(上水原)은 원각의 자리이며

  0. 진여, 보리, 열반, 바라밀이 흘러 나오는 곳이다.

  0. 상수원이 물이 흘러내려 더럽혀진 것을 정수하는 것이 원각의 작용이며 인지법행이다.

14. 인지(因地)는 원각의 작용으로 청정각상(淸淨覺相)은 중생의 자리, 원각의 자리로 하나라는 것이다.

15. 무명(無明)은 원각경에서는 ‘착각’이라 하며 부처는 진여, 보리, 열반, 바라밀을 아는 것이고 중생은 모르는 것이다.

 가) 깨달음은 전환이고

  0. 나쁜 소리를 들어도 ‘두고보자’ 하면서 복수의 마음을 먹으며 계속 살아간다면 중생이고, 스스로를 돌이켜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마음을 전환하면 깨달아 부처이다.

  0. 너무 행복해서 모든 것을 주고 싶을때는 원각의 작용이고, 내가 괴로울때는 중생의 놀음이다.

 나) 내가 부처라는 것을 믿는 것이 ‘신.信’이고 이해하여 마음을 바꿔 가는 것이 ‘해,解’이다.

 다) 무명은 대승기신론에서는 홀연염기(忽然念起)라 하여 ‘염’은 번뇌, 망상을 말한다.

  0. 밝지 못한 것은 무명이고 밝은 것은 원각이다.

  0. 바로 보이는 대상은 마음을 고착화 시키고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본질을 볼 줄 알게된다.

  0. 말과 언어는 대상을 고착화 시켜 본질을 잊게 한다.

   *** ‘법운’이라는 거사는 이름을 부르는 순간 본질을 잊고 이름에 매이게 된다. 본질은 인연화합인데 이름에 매이는 순간 본질을 잊어버린다.

 라) 육체의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심안(마음의 눈)으로 볼(관,觀) 줄 알아야 한다.

  0. 마음의 눈을 뜰때 몸이 자각하여 알게된다.(=‘무상,無常’을 자각한다)

  0. 운동을 하여 건강한 몸으로 법을 전하는 빛으로 살고자 함은 상근기이고, 안락함을 위해 살고자 하는 것은 하근기이다.

  0. 밥을 먹는 것은 육신을 튼튼하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은 상근기이고 육체력만 추구하면 하근기이다.

  0. 생각의 차이가 원각의 삶이냐 중생의(무명) 삶이냐다.

  0. 하루하루를 마음의 눈으로 자꾸 보는 것은 부처의 삶이고, 육체의 눈으로 보면 중생의 삶이다.

  0. 육체의 눈으로 보면 대상에 이끌린다.

  0.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우려야 원각의 자리이다.

 마) 마음의 눈으로 보면

  0. 몸이 무상함을 자각한다. 몸은 아무리 찾을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다.

  0. 고(苦)를 자각하며 고통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게 됨

  0. 공(空)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연기다. 인연에 의해 생기며 본래 고정된 실체가 없다.

  0. 무아(無我)는 내가 없는 도리로 고정되고 변화하지 않는 ‘나’는 없다라는 것이다. 즉 인연관계 속에서 내가 존재한다.

 바) 무명은 홀연염기로 진리가 하나임을 모르고(인연생, 인연멸을 모르는것) 존재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다.

   *** 불교는 변화할 줄 아는 종교이다.

   *** 유,무(有,無)는 생각의 문제이지 본질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을 고착화 시키기 때문에 본질을 보지 못한다.

      0. ‘유’가 있을려면 고정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정된 것은 없다. 또 변화하지 않아야 하는데 변화하지 않는 것도 없다.

      0. ‘무’도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0. ‘유무’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0. 몸은 지금은 있는 것 같지만 변화 속에서 내가 있다. 멸하고 난후 인연에 의해 다시 태어난다.

백유경이야기

어떤사람이 길을 가다가 주막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잠을 잘려고 하니 마침 주막집에 방이 없어서 주막집 주인이 위에 올라가면 빈집이 있는데 귀신이 나온다고 하여 아무도 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어서 빈집에 올라가 잠을 잘려고 하는데 누가 문을 열려고 하는 것 같아 문고리를 꽉 잡고 열어주지 않았다. 바깥에서도 문을 열려고 당기고 있어 밤새 잠도 못자고 문고리를 잡고 있었는데 날이 새어 밖에 나가보니 다른사람이 역시 주막집 주인의 말을 듣고 잠을 자려고 온 사람이었다. 서로 귀신인 줄 알고 문고리를 당기고, 잡고 있었다고 함. - 이것이 무명이다.

  

   *** 연인들은 설레임이 있는데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를 주고 받는다. 그 내면에는 불안감(잠재적인 요인)으로 혹시 전화를 안 하면 헤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혼자만의 착각 속에 빠져있는 것이 무명이다.

 사) 깨어있지 않으면 무명에 휩싸이기 쉽다.

 아) 무명을 타파하기 위해 심안(心眼)을 통해 보면(관,觀)

  0. 전체를 볼 수 있고

  0. 존재의 본질을 보게 한다.

  0. 감정, 생각, 견해를 본다.

  0. 법신을 보게 된다.

     ................................ 심안이 열려야 볼 수 있다.

16. 무명이란?

 가) 사방을 장소로 바꾼 것과 같아서, 즉 동서남북 방향을 몰라 동쪽으로 가면서 서쪽으로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 몸을 자기라고 생각하며, 몸이란 사대(四大=지수화풍,地水火風)로 구성되어있다.

  0. 몸은 자생이냐, 타생이냐,자타생(自他生)이냐?, 무인생(無因生=인연없이)이냐,? 몸은 인연생(因緣生)으로 인은 업이 원인이고, 연은 부모나 환경의 요인이다.

  0. 몸이 ‘나’라고 하면 지수화풍으로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면 감기가 들어 아프면 ‘나으라고 하면’ 나아야 한다. 그런데 낫지를 않는다.

 다) 육진(六塵=육경, 인식기관으로 알 수 있는 대상)이 그린 ‘나’를 자기의 마음이라 한다.

  0. 안(眼)=색(色)으로 내가 본 것이 정확하다면 변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대상이 달라진다.(한사람을 열 사람이 평가할 때 다 똑같게 나와야 한다. 그러나 보는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0. 이(耳)=성(聲)은 그날 컨디션에 따라 대상의 소리가 달라진다. ‘멋쟁이’라는 말은 기분 좋을때 들으면 좋고, 기분이 나쁠때 들으면 놀림말로 들린다.

  0. 비(鼻)=향(香)은 기분에 따라 향기로움이 달라진다.

  0. 설(舌)=미(味)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맛이 다르다.

  0. 신(身)=촉(觸)은 만지는 대상에 따라 다르다.

  0. 의(意)=법(法)은 대상을 왜곡되게 볼 수 있다.

 라) 육진을 통하여 나타나는 염상의 그림자를 자기의 마음이라고 착각을 한다. 이것이 무명이다.

 마) 몸을 ‘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명이다.

 바) 우리가 살고 있는 것는 것을 배우로 치면 임시로 맡고 있는 배역으로 팔자소관 이라고 생각하면 전생의 배역을 습관처럼 생활을 할테이고, 다음 생에는 더 나은 배역을 맡기 위해 주체적인 삶을 살 수도 있다.

 사) 깨우치지 못하면 윤회는 계속된다.

17. 병든 눈이 허공꽃 이나 제이의 달을 보는 것과 같다.

 가) 허공꽃은 자기만 보는 꽃이고, 제이의 달은 두개로 보이는 달이다.

 나) 미친 사람은 스스로를 도인(道人)이라고 하며 허공의 꽃이 있다고 혼자만 주장한다. (2인 이상 주장하면 宗敎다)

 다) 무당은 귀신은 본래 없는데 미쳐서 그런 작용이 있다고 한다.(=방언과 비슷)

 라) 병든 눈으로 볼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 불교는 삶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치가는 불교를 배워야만 공평하게 다스릴 수 있다.

18. 허공(虛空)의 자성(自性)은 청정한 자리이다.

   *** 장미꽃은 실제 하느냐? 생처가(生處) 있느냐? 홀로 존재하여 변화하지 않아야 한다. 해체하면 없어지고 인연에 의해 모양을 띨 뿐이다. 생멸처는 있으나 늘 그 자리에 있는 생처는 없다.

19. 생사에 헤매이면 윤회를 해야 하고, 무명을 없애면 원각의 자리에 있어 윤회를 하지 않는다.

             다음시간에 계속....

                       2010년 9월 16일 01시35분 현담이 필기

 

 
 

 

 

2019.12.03 06:36:37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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