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를 점검해도 구속될 것 없나니 한 솥의 새 차와 한 줌의 향이로다.
한 주먹 맑은 향에 한 권의 불경이요 한 바퀴 외로운 달 한 개울의 물소릴세 솥 속의 단차(甘茶)가 황금도 천하게 여기고 솔 아래 띠집은 붉은 관복을 가벼이 보네.
한가하면 경전 두어 권 읽고 목 마르면 일곱 사발 차를 마시네. 등불 아래 차 끓는 소리 나는데 꼿꼿이 앉았으니 나무 그루와 같구나.
하루 종일 누워서 잠을 탐하노라 게을러서 문 밖에도 안 나갔네. 책은 책상 위에 던져 버려서 권으로 질로 흩어져 있네 질화로엔 향 연기만 일어나고 돌솥에는 차와 젖이 부글거리는데 알지 못했구나 해당화가 천산에 내린 비로 다 떨어진 줄을.
성긴 발에 바람 고요하고 달은 당(堂) 가득한데 차 달이며 오순도순 대 평상에 앉았으니 빈 뜰 남은 눈(雪)에 인적이 머물렀는데 한 그루 찬 매화에 밤 서리가 내렸구나.
만 권의 책 가지고 이 산에서 늙으려 하니 원컨대 그대 돌아오라. 내 그대를 기다리니 들 시냇가에서 언젠가 차 끓일 적에 옷소매로 우리 함께 청산의 연기를 떨쳐 보세나.
《김시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