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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법인 三法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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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idsee8512    
애국 (mcidsee8512)
제행무상 諸行無常 모든 것은 변한다.
제법무아 諸法無我 변하는 모든 것에는 실체가 없다.
일체개고 一切皆苦 변하는 모든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
여기에 열반적정 涅槃寂靜을 넣기도 한다.
때로는 이 네가지를 넣어 사법인 四法印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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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에서... 성철스님이 손규태에게..

 

 

 

 성철이 손규태에게

 

 

모든 인간이 착각하여 자기가 본래 부처임을 모르고 중생 중생이라고 합니다. 중생을 바꾸어 부처가 되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자기가 중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인간의 진상을 바로 보면 자기가 원래로 부처라는 것을 알 뿐입니다. 설사 자기의 본면목인 마음속의 부처를 착각하여 중생이다 범부다 오해하고 있더라도 이것은 다만 오해에 그칠 뿐 자기 본면목에는 하등의 변화도 없습니다. 이것을 바로 알면 현실이 원래로 절대이며 중생이 본시불타인 것을 알게 되어 자기가 본래부터 극락세계의 대자유인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죄악은 본불(本佛)의 착각에서 발생된 망동에서 옵니다. 그리하여 죄는 실재한 것이 아니요 착각에서 온 일시적 환영에 불과합니다. ‘죄를 무서워하며 버리려고도 말라. 다만 착각에서 깨어나라.’ 이렇게 불교에서는 본래무죄론을 주장합니다. 모든 선악 등의 차별을 떠난 절대인격 즉 본심불(本心佛)을 정시할 때에 모든 인간이 원래로 죄악의 영역을 떠난 완전한 인격자였던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스님, 독일에서 공부 마치고 오면 꼭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허허, 공수표 날리지 말고 당신 건강이나 조심하그래이.”

1974년 여름, 성철(性撤, 1912~1993)과 손규태(1946~)의 만남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태산 같은 늠름함과 자비로움으로 종교인의 갈 길을 일러주었던 분. 14년간의 긴 유학생활에서는 물론 한국 땅을 다시 밟았을 때에도 손규태는 문득문득 떠오르는 성철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강사 신분에다 지독한 신부전증으로 일주일에 세 번 씩 투석치료를 받아야 했던 그에게 해인사 백련암은 까마득히 멀기만 했다.

그렇게 눈코뜰새 없이 지내던 1993년 11월 4일 조계종 종정 성철이 입적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그에게 들려왔다.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치는 슬픔과 아쉬움…. 성철의 마지막 말처럼 다시 찾아뵙겠다는 자신의 약속이 그저 ‘공수표’에 그쳤던 것이다.

손규태가 성철을 처음 만난 것은 1972년 여름방학. 한신대에서 신학을 전공하던 그는 때마침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선교학을 전공하다 초빙교수로 와있던 비더(Werner Bieder)의 한국어 통역을 맡고 있었다. 비더는 한국문화에 큰 관심이 있었고 한국의 종교인들을 방문하기를 원했다.

손규태가 가장 먼저 떠올린 인물은 성철이었다. 29세에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도다.…’라는 오도송을 부르고, 10여년 간 눕지 않고 정진했을 뿐 아니라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기치로 불교계 정화의 초석을 다졌다는 전설적인 선수행자. 또 암자 주변에 철조망을 치고 10년간 동구불출(洞口不出)했으며 대통령이 초청해도 산을 내려가지 않았던 꼬장꼬장한 인물이라 하지 않던가.

손규태는 성철과의 만남이 쉽지 않을 거라 여겨졌지만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백련암에 보냈다. 그런데 얼마 뒤 언제든 와도 좋다는 연락이 백련암으로부터 왔다. 물론 삼천배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과 함께….

며칠 뒤 손규태는 비더와 함께 가야산을 올랐다. 그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백련암을 찾은 이들을 상좌들은 성철에게 안내했다. 어두컴컴한 방안, 너덜너덜 기운 옷을 입은 성철은 마치 천년 전부터 그렇게 앉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다만 큰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철의 푸른 안광이 마치 호랑이를 연상케 할 뿐이었다. 손규태와 비더는 성철에게 절을 한번 한 뒤 앉았다.

“밖에서 삼배하라고 안합디꺼?”
“들었습니다. 하지만 불교 세계에도 계급이 있습니까?”
“하하하, 그냥 매칠 푹 쉬다 가소.”

성철은 호탕한 웃음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상좌를 비롯해 불교신자들에게는 비록 ‘가야산 호랑이’로 소문날 만큼 엄격했다지만 이들에게만은 한 마디 한 마디에 따뜻함과 자비로운 미소가 배어있었다.

“스님께서는 책을 보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왜 그러한지요?”
“사도 바울도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린다’ 하지 안틍교. 진리는 언어문자에 있지 않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기라. 자기 마음속의 진리를 개발하는데 제일 큰 장애물이 언어문자고. 그러니 천만년 동안 경전공부 허는 것보다 일일간 마음 닦느니만 못허다고 부처님도 말씀하신깁니더.”

“왜 꼭 세상을 떠나 출가를 해야 합니까?”
“누구나 다 평등하게 구비하고 있는 절대자가 자기 본심을 완전개발할라믄 모든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성취 못한다 아입니꺼. 또 집착 중에 성욕에 대한 집착이 가장 강하므로 성욕을 끊지 않고는 성도할 수 없는기라.”

“불교는 자력종교로 알고 있는데 그럼 기도는 왜 하는 겁니까?”
“자기 마음속에 부처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임시방편일 뿐인기라.”

“불교에서도 부처님을 절대시 하지 않습니까?”
“불교는 석가를 배우는 기 아이고 석가가 지적한 인간본래의 자아로 돌아가는 것인기라. 이 절대아로 돌아가믄 상대적인 자타 견해는 완전 소멸되어 전 우주에 내 몸 아닌 물건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습니더.”

“그러면 왜 믿음을 강조합니까?”
“불교는 지식으로 아는 게 아이고 자기 마음을 깨치는데 있심더. 그러므로 불교에 입문하는 사람은 그 신심의 여하에 중점을 두고 지식수준 등은 크게 문제시 하지 않는기라.”

성철과 비더, 그리고 손규태의 질문과 대답은 계속 반복됐다.
“여러 보살들이 있는 것 같은데 불교를 다신교라고 해도 됩니까?”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三位一體)를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삼신일체(三身一體)를 말합니더. 지혜를 표시하는 문수, 행동을 상징하는 보현, 지(智)와 행(行)을 겸비한 석가, 이렇게 삼신으로 분류하지만 그 내용인즉 자기마음이란 일체 속에 구비돼 있다 아임니꺼. 그러니까 문수가 즉 보현, 보현이 즉 석가와 동체인 기라 이 말입니더.”

“불교는 사회를 떠나는 비현실적인 종교는 아닙니까?”
“불교는 현실이 절대라는 데 서 있닌기라. 현실과 절대를 분리하여 보면 불교가 아임니더. 모를 때에는 절대를 현실로 착각하고 알고 보면 현실이 절대임을 정시(正視)하게 되는 것이라예. 강도가 들어 가장 궁박할 때에도 환경이 지배됨이 없이 초연한 태도를 잃지 않는 것, 이게 바로 종교가인기라.”

세 사람의 대화는 깊은 밤에 이르러서야 마무리됐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성철과 더불어 산책을 한 손규태는 산을 내려가기 전 또다시 성철에게 다시 물었다.

“스님, 박정희 대통령이 여러 번 초청했다고 들었는데 왜 가지 않았습니까?”
“요즘 보면 종교인들이 정치하는 사람들을 쥐 꿀단지 찾듯 쫓아다닙니더. 종교가 권력을 가까이 하니껜 종교가 타락하제. 종교가 타락하믄 정치 또한 타락하는 거 아임니까.”

“스님, 머무른 값 좀 내려고 하는데요.”
“값은 무슨 값! 알고 보면 모두 형제인데…”

성철은 이내 손사레를 쳤고 손규태와 비더는 경내를 빠져나오다가 끝내 보시함에 시주를 했다.

서울로 올라온 손규태에게 성철의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전문적인 용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불교를 쉽게 얘기했고, 스피노자를 좋아한다는 그는 성경에도 대단히 박식했다. 72년 9월 4일 손규태는 스위스로 돌아가 한국에 관한 글을 쓰겠다는 비더 교수를 핑계로 백련암에서 나눴던 얘기들을 중심으로 다시 답변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 자신이 석사학위 논문과 관련해 불교의 정안(正眼)과 기독교의 변혁(Transformation)의 차이를 비롯해 불교에서의 죄의 실재에 대해 물었다.

‘지난번 저와 비더교수의 방문을 계기로 보여준 친절과 대화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전에 없던 불교에 대한 산 인격을 대했던 것은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사뢰며 시간이 있으시면 다시 찾아뵙기를 원하며 그때도 거절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성철은 곧 비더 교수에 대한 상세한 답변과 함께 손규태의 질문에 대한 답장을 보냈다. ‘시간 있으시면 놀러와도 좋습니다. 잘 대접하여 드리지는 못하여도 반갑게 맞이하겠습니다.’란 말도 덧붙였다.

손규태는 곧 같은 신학자이자 여성운동가인 아내 김윤옥과 함께 산사를 다시 찾았다. 성철은 여전히 그들을 반가이 맞았고 그들 부부 또한 소탈하고 해맑은 산승과의 대화가 한없이 즐거웠다. 자신을 만나려는 사람들에게 삼천배를 시키게 된 계기, 소금기 없는 음식을 먹는 이유, 한국전쟁 때 공산당에 의해 죽을 뻔했던 이야기 등 신상에 대한 것은 물론 연꽃이나 불상이 갖는 의미나 오늘날 불교계의 병폐 등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들려주었다.

‘종교는 민중을 향해 있어야 하고 종교인은 고통 받는 민중들 속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손규태 부부였지만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아가는 성철이 좋았다. 독일 유학길에 오르기 전 자신을 찾아온 그에게 성철은 “이 세상의 모든 죄와 타락의 책임은 종교인에게 있다”는 말을 들려주었고 손규태는 성철에게 “꼭 다시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했던 것이다.

‘부처님 법대로 살자’며 한평생 지계(持戒)와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성철. 훗날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자이자 성공회대 교수로 교회의 자본주의화와 배타성에 신랄한 비판을 하며 종교개혁의 복음원리로 돌아갈 것을 강조했던 손규태. 비록 가는 길과 지향점은 달라도 성직자마저 기술자로 전락하는 시대에 종교의 순수성을 회복하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죽기 전 꼭 한 번 백련암을 찾고 싶다”는 손규태. 그에게 성철은 세상의 욕망에 물들지 않았던 빛과 소금 같은 종교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글은 6월 14일 성공회대 새천년관 7층에서 오는 8월 정년퇴임하는 손규태 교수님을 인터뷰한 후 쓴 기사입니다. 성철 스님과 손규태·비더 교수 간에 오고간 편지는 명정 스님이 엮은 『삼소굴소식』에 수록돼 있습니다.





2019.01.07 1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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