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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 죄의 과보도 피해 갈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업(業)이라고 하면 '죄'를 떠올리곤 한다.
업이 많다는 말은 곧장 죄가 많다는 말과 동의어처럼 쓰인다.
그러나 업이 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 업이라는 말은 아주 단순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업은 한마디로 '행위'다.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한 것이 그대로 업력(業力)이다.

 

업력은 잠재적으로 우리 안에 머물러 있다가 인연의 때를 만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즉, 한 번 행한 모든 행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법칙이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인과응보의 법칙,

혹은 업인과보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쉽게 생각한다면 업 사상은

우주의 대 평등성을 밝히는 에너지 균형의 법칙이다.

이 세상은 언제나 꽉 차 있는 '진리의 세계'이다.

완전한 평등, 조화, 균형 감각을 이루고 있으며

일체 모든 존재에게 차별 없이

동일한 원칙과 진리로서 우주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하거나 치우친 법칙이 아닌

일체 모든 존재의 배후에 완전한 평등으로 깔려 있는 법칙인 것이다.

진리의 세계를 불교에서는 법계(法界)라고 표현한다.

단순한 세계가 아니라 진리가 운행되는 세계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이상하게도 어떤 사람과는 첫 만남에서부터

악연이구나 싶은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이유도 없이 좋아서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우주 법계가 업의 균형을 위해 행하는

치밀하고도 전 우주적인 현실 창조의 방법이다.


엉성하게 별 이유도 없이 우연히 그 일이 벌어졌거나

그 사람과 만난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일들과 만남은

우주 법계의 치밀하고도 전체적인 계획의 일환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업보론, 인과응보의 개략적 설명이다.







 

불교를 조금 접해본 사람이라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길 것이다.

불교에서는 분명 수행을 통해 업장이 소멸된다고 했는데,

업장은 그것을 받기 전에는 소멸되지 않는다면

이 두 가지 가르침 사이에는 큰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즉, 업장은 소멸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받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또한 아무리 선한 업을 많이 짓더라도 과거에 지은 악한 업이

선업에 의해 상쇄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착하게 살아도

어차피 죄의 과보를 받을 것인데

선업을 애써 지을 필요가 있겠느냐며 자포자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소금물의 비유'로써 답을 주고 계신다.

한 움큼의 소금을 한 잔의 물에 넣으면 그 물은 짜서 마시기 힘들지만

그것을 큰 그릇의 물에 넣으면 마실 수 있는 물이 된다.


잔에 넣은 소금의 양과 큰 그릇 속에 넣은 소금의 양은 동일하지만

물의 양에 따라 마실 수 있는 물이 되기도 하고,

마시기 힘들 만큼 짠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갈증이 심할 때 소금 한 움큼이 들어간 많은 양의 물은

갈증을 해소해주는 소중한 감로가 되기도 하고

거기에 온갖 양념과 나물을 넣어 국이나 찌개를 끓인다면

도리어 맛깔스런 음식이 될 수도 있다.


예상했겠지만 바로 잔에 담긴 소금이 바로 악업을 의미한다.

악업을 받긴 받아야 하지만 다르게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에 악업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그 업을 기계론적이나 결정론적으로

반드시 나쁘게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나쁜 업을 지었어도 그 뒤에 좋은 업을 많이 지으면

이미 지은 나쁜 업에 대한 과보가

나쁘게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과거에 어떤 업을 지었느냐가 내 삶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오직 지금 이 순간 내 의지에 따라

자신의 삶과 운명을 스스로 변화시키고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를 운명론이나 숙명론이라고 하지 않고

업보론, 업인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업보론은 운명론이나 숙명론과는 분명 다르다.

 

업이라는 것은 기계적인 인과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과거에 악업을 많이 짓고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두려워할 것은 없다.

죄의식에 사로잡혀 앞으로의 삶까지 망쳐버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천수경>에서는

"죄라는 것은 자성이 없어 마음 따라 일어나니,

죄의식에 얽매인 마음이 소멸하면 죄 또한 소멸된다.

그리하여 죄와 죄의식 모두가 공함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이 진정한 참회다"

라고 말하고 있다.

 

과거의 죄에 얽매여 현재를 망가뜨리지 말라.

매 순간의 현재에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과거의 죄는 마땅히 소멸되거나 다른 방식으로 받을 수도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재를 최선의 선행과

지혜로움으로 살아나가는 데 있다.

현재가 아름다움으로 깨어날 때

과거의 죄업 또한 텅 빈 공으로써 사라져갈 것이다.


--- 법정스님 ---





~ ♪ Autumn Slumber ♪ ~

2018.09.04 15:01:10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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