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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법인 三法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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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idsee8512    
애국 (mcidsee8512)
제행무상 諸行無常 모든 것은 변한다.
제법무아 諸法無我 변하는 모든 것에는 실체가 없다.
일체개고 一切皆苦 변하는 모든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
여기에 열반적정 涅槃寂靜을 넣기도 한다.
때로는 이 네가지를 넣어 사법인 四法印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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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얻기위해 고행하며 방황하는가




    그래도 인간 사는 세상이라서 어쩌다가
    규율을 어기는 자가 나오면 어김없이 사발통문을 띄워서
    \\"치도곤\\"이라는 벌을 가하기도 했다.
    마치 서부활극에서 은행 강도를 잡아 목매달아 죽이듯
    용두가 그려진 장대를 두 개 세우고 그 아래에
    멍석을 편 다음 곤장을 쳤다.

    불효한 자 50대, 웃어른에 불손한 자 40대,
    폭리를 취하고 남이 못 팔게 방해한 자나
    병구사장(病救死葬) 않은 자 30대, 주색잡기 한 자 20대,
    회의에 불참한 자 10대 등 엄히 다스렸고 도둑질이나
    강간한 자와 같이 엄한 죄를 지은 자는
    멍석말이라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보부상은 국가의 전란을 당하면 앞장서서 싸우기도 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포위되어 양식이 떨어져
    임금 이하 아군이 들쥐와 참새를 잡아먹으면
    연명할 때 보부상 수천명이 양식을 져 나르고,
    또한 선봉에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기록이 있다.
    경복궁을 지을 때에도 동원되었고,
    세금을 걷어 나르는 일이나 나라에 중대사가
    발생했을때 파발마를 띄어서 비상연락의
    수단으로도 톡톡히 역할을 했다.

    특히 독립운동의 자금과 비밀연락을
    이들이 하고 있었으므로 일경은 보부상의 수색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엿장수는 보부상처럼 조직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이찬형은 일경의 의심을 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떠돌아다니며
    마을 사람들의 반가운 손님이 되었다.
    그렇지만 경찰서 앞을 지날때는 신분이 탈로날까
    두려워서 얼굴에 숯검댕이 칠도 하고 밀짚모자를
    꾹 눌러쓰고 지나가거나
    아예 먼길을 돌아서 갔다.

    요즈음처럼 마을에 구멍가게가 없고
    아이들이 군것질 할 것이 변변히 없던 시절이라서
    어느 마을에나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반기는 친구는
    코흘리게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졸졸 따라 다니면 엿판을 내려놓고
    한 토막씩 나누어 주기도 했으나 어쩌다 아이들이
    가져온 놋숟가락을 받고 엿을 주었다가 나중에 어른이
    나타나서 어린아이를 꾀어서 숟가락을
    가져오게 했다고 혼쭐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역시 천진난만한 데가 있었다.
    엿을 나누어 주면 기뻐서 뛰고, 그걸 보면서
    아이들과 한나절 지내다 보면 엿판이 거덜나서 또
    밑천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면 부잣집 가을 타작 마당에서
    하루 종일 품을 팔아 밑천을 만들어 엿판을 지고
    또 방랑의 길에 올랐다.

    길을 걸으면서 배가 고프면 콩을 넣고 다니며
    물에 불려 솔잎과 함께 씹으면 시장기가 가셨다.
    산길을 잘못 들어 길을 가다가 비를 꼬박 맞으면서
    걷기도 하고, 가다가 상여집이 있으면 그곳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도 했다.

    어느 해 겨울에는 술에 취해 얼음판에 미끄러 진 채
    잠이 들었다가 지나는 사람을 만나 동사(凍死)를
    면한 적도 있었다.

    울산을 지날 때의 일이었다.
    방어진 바닷가를 걷고 있을때 둥글둥글하고 깔끔한
    조약돌이 바닷가 모래사장에 펼쳐져 있었다.
    이 무렵은 바둑돌이 오늘날처럼 일정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주로 바닷가에서 주운 조약돌로 썼었다.
    찬형은 바둑을 좋아했으므로 조약돌을 보자 바닷가로
    내려가 그것을 줍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런데 뒤늦게야 자기가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기가 서 있는 곳은 모래 언덕이어서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주위는 이미 바닷물로
    잠겨버린 것이었다.
    찬형은 엿판이고 뭐고 다 버리고 허둥지둥
    헤엄쳐 나와 겨우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무엇을 얻기 위해 고행하며 방황하는가

    찬형은 방랑생활을 하다가 문득문득 자신이
    무엇때문데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되묻기도 했다.
    인생의 포기인가,
    도피인가, 참회인가.....,스스로 선택한 고행이건만
    때로는 자신을 가누기가 힘겨웠다.


    이 고행의 목적은 무엇인가?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가?
    무작정 떠돌며 고행한다고 참 인생의 의미를
    깨달을 것인가?
    사형수에 대한 참회는 되는 것인가?
    인생을 잘못 살아왔다면
    언제부터 올바른 인생길을 가게 돤다는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어떤 집 사랑방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하고,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어버릴까도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사형언도를 내렸을 때의 광경이 머릿 속에
    너무 생생하게 남아서 괴롭혔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온 중년의 남자는
    두 눈을 부릅뜨고 당당하게 소리를 질렀다.


    \\"너 이놈!

    너도 같은 조선놈으로 일본의 녹을 먹고서
    조선사람이라 말하겠느냐?
    내가 이승에서는 네 손에 죽는다만 저승에 가서는
    네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서 삼킬것이다.\\"


    결국 자기가 집을 나와서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게 된
    결정적인 단서는 이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사건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다. 나는 조선의 아들이다.
    이제 내가 조금이라도 소죄하는 길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한 목숨을 바치는 일뿐이다.

    이찬형은 그길로 만주로 향했다.
    상해와 만주에는 독립군이 왜병과 대치하여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었으므로 그곳에 가면 무엇인가
    실마리가 풀릴듯 하였다.

    일인의 삼엄한 경계를 피하여 압록강을 건너서
    만주에 당도하여 독립군의 아지트를 찾으러 다녔으나
    독립군의 경계가 엄하여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남만주 일대를 돌며 떠돌던 단기 4261년(서기 1928년)
    봉천 열차 폭파사건이 터졌다.
    일인들이 만주 군벌인 사령관 장작림이 탄 열차를
    폭파하여 그를 암살한 것이다.

    찬형은 다시 충격을 받았다.

    \\"세상의 일이란 힘으로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 민족은 힘조차도 부족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힘을 길러야 하리라.
    민족의 정기를, 국민정신을 키우는 길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다시 귀국길에 올랐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자신의 힘부터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인(眞人)을 찾아서
                나부터 완성하고 백성을 이끌어 가리라.







                    2020.07.11 12:03:55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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