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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생애 2회 ' 부처님 당시의 인도 '



* 2강 : 부처님 당시의 인도



부처님이 태어날 당시의 인도는 큰 변혁기에 있었다. 인도는 원래 피부색이 검고 코가 낮은 원주민인 드라비다족들이 지금으로부터 5천여 년 전에 이미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던 나라였다. 세계 4대문명 중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이 바로 그것이다.

1924년 발견된 모헨조다로 유적 등을 종합해 보면, 인더스 문명은 하수도나 목욕탕 시설이 완비돼 있었고, 계획적인 도시건설도 있었다. 또한 그들의 고유한 문자를 비롯하여 가부좌를 튼 요기의 형상이나 조각 등을 통해 그들의 실생활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3,500여 년 전인 기원전 15세기경에 피부색이 희고 코가 높은 인종인 아리아인들이 침입해 왔다. 이들은 원주민을 지배했고, 차츰 인도 문화의 주류로 성장하게 된다. 처음 인더스강 유역에 정착했던 아리아인들은 차츰 동쪽으로 생활 근거지를 옮겨 갠지스강 상류지역에까지 촌락을 형성하게 됐다. 그들은 목축과 농경에 종사하면서 나름대로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기 시작했다.

아리아인들은 태양·폭풍·새벽·물·산 등 모든 자연현상을 신격화해서 그 신들을 찬미하고 제사를 드리는 종교생활을 했다. 그들이 모셨던 모든 신들은 원리적으로 브라흐만 신에 통합되지만, 실제로 오늘날에도 다양한 신들이 그대로 경배되고 있다. 이러한 종교생활과 정착을 통해 아리아인들은 자기 종족 중심의 종교와 사회제도를 확립하게 된다. 그들은 ‘베다’라는 성전을 받들었는데, 이 베다를 중심으로 발전된 종교가 바로 바라문교이다.

이러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신과 인간을 중개해 주고 제사와 같은 종교의례를 전문적으로 맡게 된 ‘바라문’이라는 사제계급(司祭階級)이 부상하게 된다. 그들은 점차 소위 사성계급(四姓階級)이라는 독특한 계급제도를 형성해 갔다. 사제계급인 바라문을 정점으로, 왕족·평민·노예 등 네 계급을 수직으로 나눈 것이 그 유명한 사성계급이다. 각 계급은 세습되었고 직업도 계급에 따라 결정됐으며 결혼 역시 같은 계급끼리만 하도록 규정되었다.

불교가 태동할 무렵 이러한 바라문 중심의 전통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변화는 아리아인들이 비옥한 갠지스강 유역으로 이동하면서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농업생산력이 증대하고 곳곳에 도시가 탄생·발달했으며, 군소 부족이 통합돼 강대한 국가체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처님 당시 인도에는 16개의 큰 나라가 있었는데, 이들 나라에서는 자연스레 왕권이 신장되어 왕족계급이 새로운 실력자로 부상했다. 또한 도시가 발달함으로써 상공업자들이 조합을 형성해서 경제권을 장악하게 되자 그들 역시 실력자로 떠올랐다. 경전에 많이 나오는 ‘장자(長者)’는 이들 조합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치·경제적인 이러한 변화는 바라문을 정점으로 하는 ‘사성제도’를 크게 흔들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기존 사회체제가 많이 흔들리면서 바라문교에 반기를 드는 새로운 사상가들이 여기저기서 출현하게 된 것이다.

당시 새로운 사상가들이나 종교인들은 유행(遊行)하면서 살았는데, 그들을 통틀어 사문(沙門)이라고 불렀다. 이들 사문들의 집단은 자이나교의 자료에 따르면 363종, 불교의 자료에 의하면 62종이나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백가(百家)가 쟁명(爭鳴)하는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경전에서는 육사외도(六師外道), 즉 불교와 다른 여섯 사문을 들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베다의 권위를 부정하고, 만물이 브라흐만 신으로부터 나왔다는 바라문교의 입장에 반대하여 만물과 인간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 등 실재하는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보았다는 데 있다.

이들 사문들은 선악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각기 견해를 피력하였다. 이들 가운데는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물건을 훔쳐도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며, 선악의 행위는 도덕적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도덕 부정론자도 있었다. 또 인간의 삶은 단지 과거의 업에 따라 정해진 대로 운명이 풀려갈 뿐이라는 숙명론자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감각적 쾌락만을 즐기는 쾌락주의자도 있었고, 일체의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도 있었다.

자이나교는 영혼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업의 속박을 끊어야 한다고 하여 엄격한 계율을 지키며 극단적인 고행을 하였다. 수행자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나체로 고행을 해야 하며, 단식수행으로 굶어 죽는 것이 종교적인 미덕으로까지 찬양되기도 하였다.

재가인들도 철저한 불살생계를 지킬 것이 요청되어 농사를 짓는 일이나, 나무를 자르는 일 등은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을 할 때, 새나 벌레 등을 해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이나교도들은 소매업이나 대금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인도 민족자본의 반 이상이 전체 인구의 0.5퍼센트에 불과한 자이나교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불교의 탄생은 바라문교의 타락과도 무관하지 않다. 특히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사제 역할을 담당했던 바라문들은 제사를 지내고 공물을 바쳐야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하여 종교적인 의식을 점차 복잡하게 만들어 갔다. 그것은 스스로의 지위와 권위를 지켜 가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럴수록 종교는 주술적 속신(俗信)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은 불교가 태동될 당시의 바라문교가 안고 있던 문제였지만, 바라문교의 전통을 이어 온 오늘날의 힌두교에서도 그와 유사한 모습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몇 해 전 인도에 갔을 때 바라문교의 문제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라나시에서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탄생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라나시에 있는 갠지스강은 일찍부터 힌두교인들에게 있어 최대의 성지다. 그들은 갠지스강 자체를 신성시해서 그 강물에 목욕을 하면 모든 죄가 씻어지고, 죽고 나면 천상의 세계에 태어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곳에서 생을 마치면 다시 하늘에 태어난다고 하여, 사람들은 인도 각지에서 몰려들어 그들의 생을 마치기도 한다. 그렇게 생을 마친 사람들을 장작을 쌓고 그 위에 얹어 그냥 노천에서 태운다. 그래서 그곳은 삶과 죽음의 생생한 현장으로 기억된다.

인도에 갔을 때 일단의 사람들이 강둑에 파라솔 같은 것을 세워놓고 목욕을 하고 나온 사람들에게 축복을 해 주고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바라문들이었다. 그들은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마에 물을 뿌리며 축복을 해 주었다. 젊은 사람에서부터 나이든 사람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모습들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그들에게 축복을 해 주기를 원했다. 그들은 내게 물을 뿌려주고 축복의 주문을 외워 주었다. 축복해 준 대가로 얼마를 내야하는지 알 수가 없기에 그들에게 물었다. 주고 싶은 대로 내면 된다기에 우리 돈으로 40원 정도 되는 1루피짜리 지폐 한 장을 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안색이 달라지면서 돈을 더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고 싶은 대로 내라고 했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것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하여 얼마를 더 주었다.

나는 그때 그렇게 당당히 손을 벌리는 바라문의 모습과 갠지스 강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통해서 2천6백 년 전에 새로운 종교가 요청되었던 현실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신 다음, 첫 가르침을 펴시면서,
“이제 감로의 문을 열겠노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낡은 믿음을 버려라.”
하고 외치셨던 부처님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었다. 부처님의 초전법륜(初轉法輪), 즉 첫 가르침이 바로 바라나시의 외곽인 녹야원에서 있었던 일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당시 인도는 의례 중심의 형식적인 종교와 사제 중심의 낡은 종교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풀어 가는 실천적이고 모든 생명에게 열려있는 종교를 요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러한 요청에 부응하여 모든 종교적 미신을 털어 버리고 모든 생명들에게 지혜의 길을 제시하는 새로운 종교, 새로운 사상으로 그 역사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던 것이다.
2023.09.27 11:52:27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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