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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법인 三法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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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idsee8512    
애국 (mcidsee8512)
제행무상 諸行無常 모든 것은 변한다.
제법무아 諸法無我 변하는 모든 것에는 실체가 없다.
일체개고 一切皆苦 변하는 모든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
여기에 열반적정 涅槃寂靜을 넣기도 한다.
때로는 이 네가지를 넣어 사법인 四法印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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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생애 제9강






* 9강 : 최초의 절, 죽림정사



부처님은 새로 귀의한 천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처음 수행을 시작했던 왕사성으로 가게 된다. 왕사성은 마가다국의 수도로서 많은 수행자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이곳은 부처님이 구도자 시절 알라라와 웃다카 두 스승을 섬기며 선정을 닦던 곳이기도 하다.

부처님은 이곳에서 활발한 교화활동을 펼친다. 왕사성에서의 교화활동은 불교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된다. 그러면 죽림정사가 설립된 배경을 살펴보기로 하자. 당시 부처님의 생활 모습을 보면 다른 수행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일정한 거처 없이 제자들과 함께 유행하며, 나무 그늘 밑이나 돌 위에 앉아서 가르침을 주고받았다. 잠은 나무 아래나 굴에서 자고 식사는 탁발에 의지하였다. 그야말로 철저한 무소유의 삶인 것이다.
 
부처님의 일행이 마다가국에 도착했을 때 빔비사라왕을 비롯하여 왕사성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 왜냐하면 왕사성에서 가장 이름 있는 종교가이자 부처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카샤파 삼형제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은 부처님을 친견하고 나서 왜 그들이 부처님께 귀의했는지 알게 되었다.

빔비사라왕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고 스스로 재가신자가 되었다. 왕은 부처님과 제자들이 함께 있을 곳을 마련하기 위해서 왕사성에 있는 대나무 숲[竹林]을 기증하였고, 마침 왕사성의 가란타 장자가 여기에 부처님과 제자들이 비와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절을 지어 드리겠다고 제의했다. 부처님은 호화롭게 짓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를 승낙하여 죽림정사(竹林精舍)라는 불교 최초의 절이 지어졌다. 현재 왕사성 교외에는 죽림정사지와 장자의 이름을 딴 ‘가란타’라는 이름의 연못이 있다.

이 죽림정사에 계실 때 부처님은 많은 제자들의 귀의를 받았다. 지혜제일의 사리불, 신통제일의 목련존자, 부처님의 법을 계승하여 교단을 이끌었던 마하가섭 등도 이곳에서 만난 제자들이다.

죽림정사가 지어진 후에도 부처님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우기에는 거동할 수가 없었으므로 정사에서 안거(安居)라고 하여 3개월을 정진하며 머무는 것 외에는 변한 것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안거(冬安居)와 하안거(夏安居)라 하여 1년에 두 번씩 안거가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참으로 좋은 학습 방법이며 수행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3개월간 스님들은 선방이나 강원에서 집중적으로 공부에 열중한다. 그리고 안거가 끝나면 3개월간은 자신이 공부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훌륭한 선지식을 찾아다니는 이른바 현장학습을 수행한다.
 
우리의 현 교육이 강단에서만 그치는 현상을 볼 때, 이러한 스님들의 교육방법은 교실에서의 공부와 현장학습이 조화된 바람직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스님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깨침의 길을 향한 발걸음을 내 딛는 것이다.
 
부처님은 죽림정사가 지어진 후에도 탁발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탁발의 전통은 지금도 타일랜드, 미얀마 등의 남방불교에 그대로 전승되어 오고 있다. 오늘날에도 남방의 스님들은 새벽 6시쯤 먼동이 틀 무렵이면 목욕을 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발우를 들고 마을에 가서 칠가식(七家食)이라고 해서 일곱 집을 돌며 음식을 얻는다. 오후불식(午後不食)이기 때문에 공양은 오전에만 하고 정오가 지나면 다음날 아침까지는 금식을 한다.

일반 가정에서는 이른 아침 집 앞에 단을 차려놓고 식사 전에 정성들여 마련한 음식과 과일, 꽃 등을 스님께 공양한다. 그런데 ‘어떻게 매일같이 그렇게 공양을 올릴 수 있을까?’하고 생각할 수 있으나, 타일랜드에서는 20세가 되면 남자들은 대부분 출가하여 일정기간 스님이 된다. 그 기간은 대략 1년 내외인데 보통 한 집에 한 사람 정도는 출가한 승려가 있으므로, 탁발하러 온 승려에게 자신의 아들에게 공양하는 것이나 다름없이 정성스럽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탁발을 통해 걸식한다고 해서 비구(比丘)란 낱말이 생겼다. 비구란 본래 ‘얻어먹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한문으로 걸사(乞士)라고 번역한다. 그런데 이 말에는 밥만 비는 것이 아니라 법이나 진리를 비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더 강조된다. 탁발은 단순히 밥을 비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진리를 비는 훌륭한 수행이다. 따라서 진리를 비는 탁발은 처음부터 끝까지 청정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어떤 분별심도 내지 않고 저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걸음을 걸을 때도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마음속으로 관(觀)해야 한다. 음식을 받을 때도 청정한 마음으로 음식을 주는 사람을 구별하지 않으며, 탁발로 얻은 음식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 하는 분별심도 내지 않아야 한다. 그럴 때 탁발은 참다운 수행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탁발은 청정한 마음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나다’ 하는 마음을 내려놓는[下心] 훌륭한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얻어먹는 사람이 어떻게 ‘나다’ 하는 아만심을 가질 수 있으며 자기를 내세울 수 있겠는가! ‘나다’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청정한 마음으로 돌이키는 일은 수행자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은 사이비 탁발승의 난무로 인한 폐해가 많기 때문에 교단에서 스스로 탁발을 금지해버렸다.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서글픈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경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부처께서 어느 날 마을로 탁발을 나갔다. 마침 온 마을 사람들이 축제 분위기에 들뜨고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부처님은 깨끗이 씻어 들고 간 발우를 그대로 들고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부처님은 악마 마라를 만났다.

“사문이여, 먹을 것을 얻었습니까?”
“마라여, 얻을 수가 없었다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마을로 돌아가시오. 이번에는 공양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그 말에 부처님은 의연히 말하였다.
“설사 얻은 바 없다 해도 보라!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산다. 마치 저 광음천(光音天)과 같이 나는 기쁨을 음식 삼아 살아가노라.”
 
여기서 마라와의 대화는 실제로 악마와 만났던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생각을 악마와의 대화형식을 통해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빈 발우로 돌아오면서 ‘다시 가면 지금쯤 축제에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탁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때 부처님은 스스로에게, “설사 얻은 바 없다 해도 기쁨을 음식 삼아 살아가노라.” 하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법대로 의연한 자세를 지키며 살아가는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아마 정토란 기쁨을 음식 삼아 살아가는 청정한 세상이리라.

 
* 나를 보려거든 진리를 보아라

만약 우리가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의 어려움도 하소연하고 신행상의 문제도 말씀을 드리면 금방 풀릴 것만 같다. 그러나 정작 부처님은 이런 중생심에 단호하시기만 하다. 부처님은 “나를 보려거든 진리를 보아야 한다.”고 하신다. 이 말씀은 어찌 보면 야속하기까지 한 말씀이다. 그러나 양약은 입에 쓴 법. 우리는 ‘나를 보려거든 진리를 보라’는 말씀을 마음 깊이 되새기고 부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밖에 없다.

부처님이 죽림정사에 머물 때, 제자들 가운데 바칼리라는 비구가 병이 나서 회복이 어렵게 되었다. 왕사성의 한 도공의 집에 누워 있던 바칼리는 간병해 주는 스님에게 자기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듯하니, 마지막으로 부처님을 뵙고 예배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해 듣고 부처님께서 문병을 오게 되었다. 바칼리가 일어나려 하자 부처님은 머리를 짚어 보시며 말하였다.

“바칼리여, 그대로 있거라. 병은 좀 차도가 있느냐?”
참으로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부처님, 고통은 점점 심하고 이제는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혹 마음에 걸리거나 후회되는 일은 없느냐?”
“부처님, 저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여한은 없습니다.”
바칼리의 이 말에 그렇게 따뜻하게 대하던 부처님은 정색을 하며,
“바칼리여, 이 썩어질 몸뚱이를 보고 예배를 해서 어쩌자는 것이냐?”
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진리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볼 것이요,
나를 보는 사람은 진리를 볼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보려거든 진리를 보아라.
 
이 말씀은 대승경전에도 그 뜻이 그대로 전승되어 『금강경』에서 ‘몸이나 음성을 통하여 나를 구하려는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사람으로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확언되고 있다. 이 부처님의 말씀은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단호하고 준엄하기만 하다. 왜 그렇게 단호하며 거기에 담긴 뜻은 어떤 것일까?

첫째로, 거기에는 주인으로 살라는 소중한 뜻이 담겨 있다. 우리는 무명 속에 살고 있지만 실은 모든 것을 풀어 갈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다. 여래의 씨알이요, 불성(佛性)을 머금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너 자신을 등불 삼으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병은 무엇이든 밖에서 찾는 데에 있다. 온통 눈·코·귀·입이 밖을 향해 치달으며 온갖 먼지를 피우는 것이다. 또 문제는 그런 대상에 집착하고 얽매여 본래의 마음을 관찰할 여유를 잃는 것이다. 대상에 얽매이고 집착하는 한, 본래의 마음은 볼 수가 없고 그런 삶은 자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심지어 ‘부처님’이라는 대상에도 얽매이지 말라는 교훈을 강하게 전하고 계신다. ‘부처님’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삶, 그런 삶을 부처님께서는 고구정녕 설하고 계신다.
 
둘째로, ‘길은 앞앞이 가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다. 부처님께서 깨친 진리는 존재의 실상으로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하다. 부처님은 그 항상 한 진리를 깨치고 우리에게, ‘길은 이렇게 가야 한다’고 가리키신다.

실로 부처님은 평생 ‘길잡이[導師]’를 자처하셨다. 부처님에 대한 호칭 가운데 삼계도사(三界導師)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깨침의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를 의미한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길, 진리의 길을 먼저 걸었기 때문에 그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깨침의 길은 ‘이렇게 가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충실한 안내자일 뿐이다. 그리고 제자들은 단지 부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진리의 길을 가는 길동무이다.

여기에서 ‘길잡이’란 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그 길은 길잡이가 대신 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고 매력적이라 하더라도 안내하는 사람에 집착하게 되면 길을 갈 수 없다. 왜 부처님께서 그렇게 준엄하셨던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끝으로, 그러나 동시에 부처님께서는 그 가르침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한한 신앙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진리의 부처님[法身]과의 만남의 가능성이다.
“나를 보려거든 진리를 보라.”고 할 때, ‘나’와 ‘진리’는 둘이 아니다. 따라서 부처님은 진리 자체이신 것이다. 즉, 우리는 역사적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진리의 부처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공을 초월한 진리 자체이신 부처님과는 항상 만남이 가능한 것이다. 육신의 몸을 가진 부처님은 2,600여 년 전 인도에 나셨기 때문에 그 당시 그 곳에 태어났던, 그리고 다행히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과의 만남이 가능했을 뿐이다.
 
그러나 진리 자체이신 부처님은 시간·공간의 제약이 없는 부처님이요, 따라서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부처님이시다. “나를 보려거든 진리를 보라.”는 가르침 속에는 이런 부처님의 넓은 자비, 속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여시어경(如是語經)에서,
“내 장삼자락을 붙들고, 내 발자국을 밟고 따라 다닌다 해도 법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라 하셨고 반대로,
“설사 수천 리 떨어져 있다 해도 법을 보는 자는 나와 가까이 있는 것이다.”
라고 하셨다. 얼마나 준엄한 말씀인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2,500여 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희망적이며 다행한 일인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눈과 귀를 청정히 하고, 마음을 청정히 함으로써 가능하다.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이 비어 우리들 마음이 저 허공처럼 될 때, 그때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은 우리 앞에 여여하게 나타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참으로 불자다운 삶을 가꾸어 갈 때, 그때 부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2019.08.22 09: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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