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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뫼 ...


# 배바위와 기우제, 그리고 호랑이 뼈

화왕산은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산이다. 화왕산성으로 둘러싸인 산정의 억새군락지는 분화구의 흔적인 셈이다. 산정의 남쪽 능선에는 누가 일부러 얹어놓은 듯한 거대한 바위가 있다. 천지개벽으로 홍수가 났을 때 배를 묶어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배(船)바위’다. 화왕산 곳곳에 얽힌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배바위는 거대한 두 개의 바위가 겹쳐진 형상인데, 그 사이에 사람 하나 드나들 만한 틈이 있다. 여기에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왜병에 쫓기던 곽재우가 배바위 앞에 오니 바위틈이 저절로 벌어졌다가, 곽재우가 몸을 숨기자 이내 닫히면서 왜병을 따돌렸다는 얘기다.

화왕산 정상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억새군락지 한가운데 분화구였다고 짐작되는 자리쯤에 정방형의 연못이 있다. 용이 살았던 못이라 해서 ‘용지(龍池)’라고 부른다. 산 정상에 물이 솟아 연못을 이룬 게 신기하다. 옛사람들도 그게 신기했던지 여기서 기우제를 지냈다. 20년 전쯤 발굴 과정에서 그 흔적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솥과 칼, 놋그릇, 항아리, 수막새 기와…. 더 분명한 제례의 흔적은 용지 근처에서 나온 호랑이와 멧돼지, 사슴의 머리뼈와 턱뼈였다.

용지 맞은편 언덕에는 ‘창녕 조씨 득성비’가 서 있다. 득성(得姓)이란 ‘성(姓)씨를 얻었다’는 뜻이다. 비석에 새겨진 창녕 조씨가 성을 얻기까지의 이야기는 이렇다. 신라 때 높은 벼슬아치에게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그 딸이 병에 걸려 치료를 위해 용지에서 목욕을 하는데 용이 따라 들어왔다. 얼마 뒤 딸은 용의 아들을 낳았고, 아이의 갈빗대에 ‘조(曺)’ 자가 적혀 있었다. 이에 진평왕이 아이의 성을 조씨, 이름은 ‘용을 이었다’고 해서 ‘계룡(繼龍)’이라 부르고 사위로 삼으니 그가 창녕 조씨의 시조다.

화왕산에는 형상에서 본뜬 이름을 가진 기이한 바위도 많다. 고래바위, 소원바위, 곰바위…. 이름을 달아준 소나무도 여러 그루다. 부부소나무, 세자매소나무…. 곰과 고래는 물론이고, 소원 같은 추상적 형상에도 공감이 됐다.

photo절집 관룡사 위쪽의 용선대 석불. 까마득한 직벽을 이룬 바위 벼랑 위에 석불을 모셨다. 고통에 빠진 중생을 극락세계로 건네준다는 ‘반야용선’을 상징한다.



# 번뇌를 건너는 배, 반야용선

화왕산은 동쪽으로 관룡산의 산줄기와 이어져 있다. 관룡산의 산세도 화왕산에 못잖아서 두 산을 이어 붙여 종주 산행하는 이들이 적잖다. ‘관룡(觀龍)’이란 산 이름은 그 산에 깃들여 있는 절집 관룡사에서 왔다. 볼 관(觀) 자에 용 용(龍) 자를 쓰니 ‘용을 보다’라는 뜻이다. 원효대사가 관룡사 절집 자리에서 100일 기도를 하다가 승천하는 아홉 마리 용을 보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원효가 봤다는 용은 화왕산 정상의 용지에 깃들어 있던, 창녕 조씨 시조를 잉태하게 했던 바로 그 용이었다.

관룡사에는 지금도 용이 있다. 대웅전을 마주 보고 서 있던 등산객이 왼편 바닥에 노출된 굵은 바위를 등산 스틱으로 쿡쿡 찍었다. 그러고는 그게 ‘화왕산의 불기운 속으로 들어간 용의 등 껍데기’라고 했다. 관룡사는 용의 기운으로 불의 기운을 가진 화왕산에 맞선다. 관룡사 범종각에서 북을 받치고 있는, 나무로 깎은 짐승도 ‘불을 먹는다’는 전설 속의 동물 ‘해태’다.

관룡사를 권하는 건 전적으로 ‘용선대(龍船臺)’ 때문이다. 관룡사에서 숲길을 따라 20분쯤 산을 오르면 사방이 수십 길의 벼랑으로 이뤄진 바위 위에 가부좌를 튼 1.8m 높이의 석불좌상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용선대다. 뒤로 물러나서 보면 부처가 바위로 지은 배의 뱃머리에 앉아 항해하는 듯한 형상이다.

불가의 법화신앙에는 고통에 빠진 중생들을 극락정토로 건너가게 해주는 ‘반야용선(般若龍船)’ 이야기가 있다. 반야용선은 번뇌를 싣고서 고행의 바다를 건네준다는 배다. 용선대는 뱃머리에다 불상을 앉히는 것으로 반야용선의 상징을 구현했다. 용선대 앞에는 두 손을 모은 이들이 줄을 잇는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이들이 뱃머리의 부처가 이끄는 대로 깊은 세속의 바다를 금방이라도 건너갈 듯하다.

용선대에 석불이 조성된 건 9세기 초반. 가장 궁금했던 건 1000년 전 저 무거운 석불을 어떻게 산 중턱 바위 위에 올릴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석불의 돌은 화강암이지만 관룡산 바위의 재질과는 다르다. 여기서 새긴 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새겨서 가져온 것이란 얘기다. 누가 이 높은 벼랑 위까지 돌을 끌어올리는 고행을 감내했던 것일까. 그리고 고행 속에서 간절하게 빌었던 소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photo원효가 용지에서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관룡산 아래 절집 관룡사.



# 소읍의 공원에서 만나는 유적들

이제 산에서 내려와 창녕읍을 구경해 보자. 창녕읍은 스스로를 ‘작은 경주’로 부른다. 규모나 위세는 경주에 어림없지만, 창녕에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적과 유물이 곳곳에 있어서다. 창녕이 건너온 시간의 자취를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창녕읍 행정복지센터 근처의 만옥정공원이다. 만옥정은 250여 년 전에 있었다는 정자다. 봄이면 정자 앞에서 명창대회와 그네 뛰기 대회가 벌어졌다는데, 정자는 오래전에 사라졌고 이름만 남아 일대의 문화재를 한데 모아둔 소박한 공원이다.

만옥정공원의 가장 높은 자리에는 창녕의 대표 유물인 신라 진흥왕 척경비가 있다. 진흥왕이 이곳을 방문한 뒤에 영토 개척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국보라고는 하지만 둥글넓적한 비석의 형태도 보잘것없고, 비석에 새겨진 글씨도 태반이 지워져 판독조차 불가능하다. 척경비의 유물적 가치는 희미하게 남아 있는 신라 시대의 관직과 이름에 있다지만, 그거야 역사학자나 관심을 가질 법한 것. 여행자가 주목해야 할 것은 1500여 년 전 비석 앞에 서 있었을 진흥왕의 실존감이다. 척경비가 세워진 건 561년. 이듬해 신라는 마지막 남아 있던 가야 세력인 대가야를 정복했으니, 척경비의 건립은 진흥왕의 진군나팔이나 다름없었다.

만옥정공원에서 흥미로운 또 하나의 공간은 역대 고을 수령들의 선정비를 모아놓은 곳이다. 지방 소읍의 선정비는 엄격한 격식도, 세련된 맛도 없어서 더 흥미롭다. 서툴기 짝이 없는 솜씨로 돌을 쪼아 새긴 연꽃이며 용에서 느껴지는 건 투박한 아름다움과 파격, 그리고 해학이다. 선정비를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이유다. 공원에는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도 있고, 고종 때 세운 척화비도 있다.

photo창녕읍 한가운데 남아 있는 석빙고. 가야 고분을 빼닮았다.



# 석빙고와 석탑을 지나 온천까지

만옥정공원 밖에도 유적이 곳곳에 있다. 소박한 장터와 오래된 주택가 골목 사이에 있는 유적들은, 소읍의 한복판으로 방문객들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개발 지체로 두터운 시간의 지층이 남아 있는 소읍 구경도 흥미롭지만, 군데군데 남아 있는 유적들이 악센트 역할을 한다.

창녕읍 한복판에는 300여 년 전에 만든 얼음을 보관하던 석빙고가 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석빙고는 모두 영남 지역에 있다. 경주와 안동, 청도, 대구에 하나씩 있는데, 창녕에는 유일하게 두 개가 있다. 두 개의 석빙고 중 창녕읍에 있는 게 더 크다. 거대한 석빙고 앞에 서면 심경이 복잡하다. 당시 양반 계급의 권력의 크기와 한겨울에 얼음을 떠내기 위해 동원됐을 백성들의 고통까지 생각이 가닿는 탓이다.

석빙고에서 창녕 오일장을 지나 창녕천 쪽으로 걷다 보면 술정리 동 삼층석탑을 만나게 된다. 석탑의 크기는 ‘거대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몸돌과 지붕돌, 지대석과 기단석을 큰 돌을 써서 만들었다. 단정하면서 단단해 보이는 이유다. 그래서 일찌감치 국보로 지정해 석탑의 가치를 인정했다.

창녕에는 국내 온천 중에서 용출 온도가 가장 높은 부곡온천이 있다. 1973년에 발견한 부곡온천의 용출 온도는 78도에 달한다. 한때 최고의 온천 리조트로 꼽혔던 부곡하와이의 폐업에도 불구하고 온천은 아직 건재하다. 억새 만발한 화왕산이나 관룡산 등산과 함께 다녀오기에 좋다.
 *자료제공 : 문화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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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3 08:01:18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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