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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 장곡사 , 서산시 간월암 포토기행

오늘은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장승공원~장곡사~사찰로~칠갑산 정상~삼형제봉~장곡로~장승공원 코스를 돌아오기로 한다. 거리가 약 8㎞ 정도 되니까 3,4시간이면 충분히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 있겠다.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칠갑산 도립공원 입구에 있는 장승공원

 

장승공원에는 1백여 개의 장승들이 저마다 독특한 표정을 한 채 서 있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전국 최대의 칠갑산 대장군과 칠갑산 여장군(높이 11.5m)을 중심으로 전국각지의 장승이 거의 모두 재현되어 있다. 청양군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장승문화가 변형되고 왜곡되어 가고 있는 현상을 안타까와 하던 중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고 전국 최고의 장승문화 보존지역으로 개발하여 관광명소로 부각시키기 위해 1999년 5월 '칠갑산장승축제'를 개최하면서 장승공원이라는 테마공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 장승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려는 청양군은 매년 4월 하순 하루동안 이곳에서 '칠갑산장승문화축제'를 개최한다는데..... 1999년부터 개최된 이 축제에서는 '칠갑산 장승대제, 장승 명문식, 가족 장승깍기 체험, 칠갑산 손두부만들기 체험, 구기자주 제조 체험, 춘포짜기 체험, 소달구지 타기 체험, 산나물 채취 체험 대회, 소원 성취 기원문 달기, 중요무형문화재 김대균 줄타기 공연' 등이 펼쳐진다고 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장승축제 구경을 꼭 한 번 해봐야겠다.

 

이 지역 장승제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화리 마을의 '치마바위' 전설만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을 뿐..... 이화리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치마바위라는 이름의 바위가 있다. 아주 먼 옛날 밤이 되면 칠갑산에서 호랑이가 내려와 부녀자들을 잡아다 그 바위에서 잡아먹은 뒤 치마만 남겨놓고 사라졌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장승을 세워 호환을 막아달라고 빌었더니 그 뒤로 호랑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후 매년 정초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일진을 봐서 생기복덕이 닿는 사람을 화주나 축관으로 정하고, 이들의 집에는 제사날까지 금줄을 달아 부정을 막는다. 장승제 당일날은 아침부터 마을사람들이 모여 장승을 깎는가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음식을 마련해서 저녁식사후 동쪽과 서쪽의 장승지에서 차례로 제사를 지낸다. 제사시에는 집집마다 소제를 올려 안녕을 빌고, 이동시에는 광솔불을 붙인 불깡통을 여러 명이 들고서 길을 밝혀 안내를 한다. 제사가 끝난 후에는 집집마다 나무 한 짐씩을 가져다가 모아서 묶어 놓은 봉화에 불을 붙여 액운을 쫓아내며, 마을사람들은 풍물놀이와 함께 춤을 추거나 불깡통을 돌리면서 한데 어울려 대동놀이를 한다. 장승제는 이처럼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행사로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는 민속이다.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주민 전체가 참여하여 제사와 놀이를 통해서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대동제가 바로 장승제인 것이다.


*장승공원에서 가장 큰 '으뜸청양대장군' 장승

 

장승공원을 지나 상가지역으로 조금 올라가면 우람한 크기의 '으뜸청양대장군' 장승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쩍 벌린 채 서 있다. 악귀들이 아마 저 모습을 보면 혼비백산해서 줄행랑을 칠 것 같다. 장승은 대부분 남녀 1쌍을 세우고, 5방위 또는 경계 표시마다 11곳이나 12곳에 세운다. 그런데 이 으뜸청양대장군 장승은 홀로 외로이 서 있다.

 

장승(長丞)은 선사시대부터 한국인과 애환을 함께 해온 대표적인 민속문화로 마을 입구나 절 입구의 길가에 세운 사람 모양의 목상이나 석상을 말한다. 대개 기다란 통나무나 돌에 사람의 얼굴 모양을 익살스럽게 새겨 세운 것이 많다. 장승의 기원은 고대의 남근숭배설(男根崇拜說)과 사찰의 토지경계 표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솟대·선돌·서낭당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으나 확실한 기원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한국인들은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나무나 돌로 장승을 만들어 마을 입구에 세우고 장승제를 지내는 것으로 마을의 평화와 소원성취를 기원하였다. 장승에는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 그리고 복합장승이 있으며 전국각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목장승은 주로 소나무나 밤나무를 사용하는데, 그 형태는 솟대형·목주형(木柱形)·신장조상형(神將彫像形)이 있다. 석장승의 형태로는 선돌형·석적형(石蹟形)·석비형(石碑形)·돌무더기형이 있고, 복합장승은 돌무더기나 흙무더기에 솟대와 석인(石人)의 복합형태를 이룬다. 장승은 장성, 벅수, 벅시, 법수, 당산할아버지, 수살목, 수살이, 돌하루방이라고도 불리며 지역과 문화에 따라서 서로 다르게 전승되고 있다. 

 

옛날 장승은 여러 가지 기능이 있었다. 우선 장승은 지역간의 경계표 구실을 하였다. 길가나 마을 경계에 세워진 장승을 기점으로 한 사방의 주요 고을 및 거리를 표시하였던 것이다. 둘째 큰길가에 세워진 장승은 먼길을 오가는 나그네들에게 훌륭한 이정표 구실을 했다. 셋째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이다. 또, 절의 입구에 세워져 그 절을 지키는 호법상(護法像)의 구실을 하는 것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장승은 동제(洞祭)의 주신(主神)이 되기도 하고, 솟대나 돌무더기·서낭당·신목(神木)·선돌[立石] 등과 함께 동제 복합문화를 이룬다.

 

장승의 장군명은 거의 민속적 신명(神名)을 쓴다. 동쪽에 있는 장승은 동방청제축귀장군(東方靑帝逐鬼將軍)이고, 서쪽은 서방백제축귀장군(西方白帝逐鬼將軍), 남쪽은 남방적제축귀장군(南方赤帝逐鬼將軍), 그리고 북쪽은 북방흑제축귀장군(北方黑帝逐鬼將軍)이다. 이 장승들이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들을 쫓아낸다. 오방색으로 신명을 정한 것이 재미있다. 장승은 서낭당·산신당·솟대와 동등하다고 볼 수 있다. 옛날 마을에 액운이 들었을 때나 질병이 전염될 때 주민들이 장승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을 보면, 장승은 단순한 경계표나 이정표의 구실 뿐만 아니라 잡귀나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또 개인의 소원을 비는 대상으로서 민속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장곡사 일주문

 

장승공원을 지나자 장곡사 일주문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어느 사찰에 가던지 절 입구의 첫 문을 일주문이라고 한다. 속세와 불계를 구분짓는 경계가 되는 이 문을 지나는 순간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일주문으로 들어간다. 새 기와를 얹은 맞배지붕과 새 단청, 새 기둥으로 보아 장곡사 일주문은 지은 지 아직 얼마 안 되는 듯이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면서 길 오른쪽으로는 벚나무, 왼쪽으로는 감나무와 은행나무가 늘어서 있다. 벚꽃이 활짝 피는 봄이나 감이 익어가는 가을에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문은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 번째 문으로 문의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서 있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지은 것은 한 곳으로 마음을 모으는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일심의 의미는 신성한 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세속의 번뇌를 깨끗이 씻어내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뜻이다. 즉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는 것이다.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해서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면서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부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불도를 닦는 사람은 오로지 일심으로 일주문을 지나야 한다고 하는데..... 나의 삶 자체가 되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인지라 부처님의 길이 멀고도 멀기만 하다.

 

일주문은 기둥 넷을 일렬로 세운 위에 정교한 건축을 한 것이다. 이것은 역학적으로 중심의 힘을 이용하여 절대적 건축미를 살린 특유의 양식이다. 즉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건축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이 문의 참뜻은 오로지 하나(일, 一)에 있다. 불교에서는 우주 만유를 일심(一心)으로 표현한다. 법계(法界) 전체를 일심의 그림자로 본다. 원효대사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지 않았던가! 회삼귀일(會三歸一)! 만법귀일(萬法歸一)! 우주 삼라만상이 일체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일심에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결론짓는다. 이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일주문을 경계로 문의 바깥쪽은 속계(俗界)가 되고, 문의 안쪽은 진계(眞界)가 되는 것이다. 진계로 들어갈수록 골짜기는 점점 깊어진다. 이 골짜기의 이름은 송골..... 아마도 이 골짜기에 소나무가 많이 자라서 붙은 이름이리라. 장곡(長谷)이란 이름도 긴 또는 깊은 골짜기란 뜻일진대, 깊은 계곡 소나무가 무성한 골짜기란 말이렷다. 


*칠갑산 장곡사

 

일주문을 지나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장곡산장이다. 정곡산장은 숙박시설이 아니고 특산품이나 잡화를 파는 가게 겸 식당이다. 장곡산장에서 장곡사까지는 엎어지면 배꼽 닿을 거리다. 여기서부터 칠갑산으로 오르는 사찰로라는 이름의 등산로가 시작된다.

 

장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서기 850년(통일신라 문성왕 12)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현존 건물들은 근세에 이르러 거의 개축되거나 재건된 것이라고 하는데..... 다른 절과는 달리 대웅전이 상대웅전과 하대웅전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장곡사 경내에는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鐵造藥師如來坐像附石造臺座: 국보 58), 상대웅전(上大雄殿:보물 162), 보물 제181호인 하대웅전(下大雄殿) 등의 문화재가 있다. 또한 크기가 1m에 이르는 목어(木魚)와 수령이 850년이나 되는 느티나무가 유명하다. 이 절은 두 개의 대웅전이 있는 특이한 가람배치로 되어 있는데, 아래쪽에는 운학루(雲鶴樓)·하대웅전·요사(療舍)·주지실이 있고, 여기서 위쪽으로 50m 정도 돌계단을 올라가면 상대웅전과 응진전(應眞殿)이 있다. 상대웅전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철조약사불좌상부석조대좌와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보물 제174호)가 나란히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하대웅전에는 고려시대 때 만들었다고 추정되는 금동약사불좌상(보물 제337호)이 있다.


*소나무숲이 우거진 사찰로

 

사찰로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다. 산비탈에는 참나무와 굴참나무,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울창한 송림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노라니 마음마저 느긋해져 온다. 솔향기를 실은 산들바람은 코끝을 간지럽히고.....  소나무는 한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나무다. 그만큼 품종도 다양하다. 소나무의 다른 이름으로는 육송(陸松)·적송(赤松)·여송(女松)·솔나무·소오리나무·솔·암솔 등이 있다. 적송은 곰솔에 비해 수피의 색이 붉은빛을 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육송은 내륙지방에서 흔히 자라기 때문에, 여송은 잎이 다른 종류의 나무에 비해 연하기 때문에 붙여졌다. 나무줄기가 곧추 자라는 금강소나무, 가지가 밑으로 처지는 처진소나무, 줄기 밑에서 많은 가지가 갈라지는 반송 등은 유명한 소나무의 품종들이다. 칠갑산의 소나무들은 거의가 적송이다.

 

예전에는 매년 5월경 소나무의 꽃가루를 모아 날것으로 먹거나 꿀과 찹쌀가루에 섞어 과자로 만들거나 술에 넣어 송화주를 빚어 마셨다. 어릴 때 송화로 만든 다식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에는 송화다식을 구경하기도 힘들다. 또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소나무의 속껍질로 송피떡을 만들어 먹거나, 새순의 껍질을 벗겨 날것으로 먹기도 했다. 지금도 이것을 먹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솔씨도 껍질을 벗긴 뒤 밥에 넣어 먹거나 볶아서 차로 마시기도 했다는데..... 그러나 솔씨를 먹는다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솔잎은 요즘도 생으로 먹거나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서 마시기도 하는데 웰빙식품이니 뭐니 해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소나무의 잎 말린 것을 송엽(松葉), 꽃가루 말린 것을 송화(松花), 송진을 긁어 모아 말린 것을 송지(松脂)라고 한다. 민간에서 송엽은 각기병과 소화불량의 치료제나 강장제로, 송화는 이질의 치료제로, 송지는 지혈제로 썼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한약재들이다. 소나무 목재는 건축재나 기구재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고..... 한편 소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로 믿어 마을 어귀에 세우는 장승의 재료로도 쓰였다. 요즈음에는 분재용으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소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자라기 힘든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란다. 또한 늘 푸르른 잎과 곧게 쭉쭉 뻗은 줄기 때문에 대나무와 함께 송죽지절(松竹之節 : 변하지 않는 절개)을 상징하거나 송교지수(松喬之壽 : 인품이 뛰어나고 오래 사는 사람)를 가리키기도 한다. 아름드리 낙락장송을 보면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된다.   

 

소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벗어나자 이번에는 참나무와 굴참나무숲이 나타난다. 참나무는 그 종류도 다양해서 참나무를 비롯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등이 있다. 이 나무도 한국에서 가장 흔한 수종으로 종간의 잡종이 많다. 가시나무와 같은 상록성 수종들은 남해안과 제주도에만 분포하고 있다. 참나무는 나무의 질이 단단하여 건축이나 가구재, 차량재로 쓰이고, 숯을 만드는 재료,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골목감으로 사용하며, 수피(樹皮)는 코르크의 재료로 쓴다. 도토리로는 묵을 만들어 먹는다. 예전에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 도토리는 주린 배를 채워주는 훌륭한 구황식품이었다. 어린 시절 가을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동생들과 함께 도끼자루를 둘러메고 도토리를 털러가곤 하던 기억이 난다. 도토리 열매와 껍질은 한방에서 상실(橡實), 토골피(土骨皮)라 하는데 수렴제·지혈제·지사제로 쓰고 후장위(厚腸胃)의 치료제로도 사용한다.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굴참나무는 수피(樹皮)에 코르크가 두껍게 만들어지면서 깊게 갈라지는 특징이 있다. 상수리나무와 비슷하다. 그러나 상수리나무는 잎 뒤에 별 모양의 털 대신에 단모(單毛)만 나와 있으며, 굴참나무는 잎 뒤가 회백색이나 상수리나무는 황록색이어서 쉽게 구분된다. 수피의 코르크를 벗겨내어 병마개나 압착 코르크판을 만든다. 나무 나이가 15년 가량 되면 코르크 껍질이 약 1㎝ 정도로 두꺼워진다. 이때부터 코르크 껍질을 벗겨낼 수 있다. 껍질을 벗겨내고 나서 약 8~9년이 지나면 다시 두꺼운 코르크 껍질이 생겨난다. 나무의 나이가 약 40년 가량 될 때까지 코르크를 벗겨낼 수 있다. 코르크 껍질은 첫번째 벗겨낸 것보다 2번째나 3번째 벗겨낸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는 굴참나무도 있다. 천연기념물 제96호인 경북 울진군 근남면의 굴참나무, 271호인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굴참나무, 288호인 경북 안동시 임동면의 굴참나무가 바로 그들이다.

 

소나무와 참나무는 이렇듯 사람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이로움을 준다. 살아서는 생물의 생존에 필수적인 산소를 공급해 줄 뿐만 아니라 산과 들에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 준다. 또 짐승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주는가 하면 무더운 여름철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주기도 한다. 나무가 없는 산과 들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한편 나무는 죽어서도 인간들에게 많은 이로움을 준다. 목재나 가구, 건축재 등 나무의 쓰임새는 무척이나 많다. 나무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간직한 채 산길을 걷는다.

 


*장곡사에서 칠갑산 정상에 이르는 사찰로

 

칠갑산 정상 가까이 이르러 지나온 산길을 되돌아 본다. 산등성이가 밋밋하면서도 정겹다. 사찰로는 장곡사에서 등산로가 시작되기에 붙은 이름이리라. 칠갑산을 찾는 등산객들 대부분이 이 사찰로를 즐겨 오른다.  


*칠갑산 정상

 

장곡사를 떠난지 약 1시간 반만에 칠갑산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이미 많은 등산객들로 붐빈다. 단체산행을 온 어느 산악회는 시산제를 지내고 있다. 정상은 전망이 매우 좋다. 사방으로 뻗어가는 산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갈증이 나던 차에 배를 하나 깎아서 먹으니 그렇게 달고 시원할 수가 없다. 
 
*칠갑산 정상 표지석
 
칠갑산 정상에는 검은색의 바위에 '七甲山 561m'라고 새긴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칠갑산은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과 장평면 그리고 정산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크고 작은 봉우리와 깊은 계곡, 울창한 숲이 아름답다. 1973년 3월 6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바 있다. 칠갑산 정상과 삼형제봉, 아흔아홉골, 칠갑산장(최익현동상, 칠갑산 노래조각품등), 천장호, 장곡사, 정혜사, 자연휴양림, 도림사지, 두륭성, 새양바위 등이 볼 만한 곳이다. 또 봄에는 철쭉과 벚꽃, 여름에는 울창한 소나무와 참나무숲,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아름다와 사시사철 찾아도 좋은 산이 칠갑산이다. 칠갑산은 7개의 등산로가 개발되어 있다. 등산객들은 자신의 능력과 취향에 따라 등산로를 선택하면 된다. 경사가 급하거나 힘든 코스는 거의 없다. 
 
산세가 좋고 골짜기가 깊어서 '충남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칠갑산은 차령산맥에 속하며 북쪽의 한티고개(大峙:대치)를 지나 동쪽에서 서쪽으로 대덕봉(大德峰:472m)과 명덕봉(明德峰:320m), 정혜산(定惠山:355m) 등과 이어진다. 그리고 대치천(大峙川)과 장곡천(長谷川), 지천(芝川), 잉화달천(仍火達川), 중추천(中湫川) 등이 산의 계곡을 따라 내려서 금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특히 지천천과 잉화달천의 지류들에 의해 형성된 맑은 계곡은 주위의 기암들과 어울려 지천9곡(之川九曲)의 명승지를 이루고 있다. 산정에서 내려다보이는 천장호 일대의 경치도 빼놓을 수 없다.

. 칠갑산이란 산이름이 생겨난 배경이 사뭇 궁금하다. 계곡이 깊고 급하며 지천과 잉화달천이 계곡을 싸고 돌아 7곳에 명당이 생겼다고 해서 칠갑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이와는 다른 유래가 있다. 한민족은 예로부터 하늘과 산악을 숭앙하여 왔다. 백제는 수도를 부여에 정한 뒤 칠갑산을 사비성 정북방의 진산(鎭山)으로 여겨 제천의식을 행하였다. 삼국시대만 해도 산천숭배사상에 의해 명산대천에 지내는 제사는 국가의 큰 행사였다. 그래서 산 이름을 만물생성의 7대근원이라는 七자와 새싹이 돋아난다는 뜻을 가진 甲자로 생명이 시원(始源)하는 산 즉 七甲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 칠(七)은 천지만물이 생성한다는 '七元星君', '七星', 또는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의 7대 구성원소 '地, 水,  火, 風, 空, 見, 識'의 이름이다. 갑(甲)은 천체운행의 원리가 되는 육십갑자(六十甲子) 중에서도 제일 처음 자리이고..... 칠갑에는 이처럼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한편으로는 금강 상류의 지천을 굽어보는 자리에 일곱 명의 장수가 나올 甲자형의 명당이 있어서 칠갑산으로 불렀다고도 전한다. 백제의 진산이었기에 칠갑산에는 백제인들의 얼이 담긴 사적지가 많이 남아 있다. 칠갑산 동쪽의 두솔성지(자비성)와 도림사지, 남쪽의 금강사지와 천장대, 남서쪽의 정혜사, 서쪽의 장곡사가 그것이다.

 

한편 칠갑산은 원래 칠악산(七岳山)이었다. 도솔가는 신라 유리왕 5년에 지어진 삼국시대 최초의 향가다. 그 도솔가에 나오는 '칠악'이 바로 오늘날의 칠갑산으로 추정된다. 동국여지승람 18권, 정산현 산천 편에 '七甲山 左縣西十六里有古城其號 慈悲城: 又見 靑陽縣 - 七甲山은 현의 서쪽 16里에 있으며 옛성터가 있는데 자비성(慈悲城)이라 부른다.'는 기록이 보인다. 자비성은 일명 도솔성으로 사찰 주변을 성으로 둘러싼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그렇다면 이 사찰은 백제의 왕자나 왕족의 교육을 하던 곳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국가의 중대사를 논하던 곳이거나 외국의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었을 것이다. 도솔은 범어(梵語)의 음역으로 지족, 묘족 등으로 의역되는데 미륵보살이 사는 하늘이란 뜻이다.

 


*한치고개로 이어지는 광장로

 

정상에서 북쪽 방향으로 S자 모양으로 뻗어올라간 산줄기가 한치고개 또는 대치에 이르는 등산로인 광장로다. 언젠가 다시 칠갑산에 오게 되면 한치고개에서 출발하여 칠갑산장을 지나 정상에 오른 다음 천장로를 밟아 보리라.

 


*동쪽으로 천장호에 이르는 천장로

 

칠갑산의 등산로는 마치 부채살처럼 퍼져 있어서 일명 칠갑칠로 부채살능선이라고도 한다. 휴양로(칠갑호에서 송골 사찰로로 이어지는 등산로), 사찰로(장곡사에서 정상에 오르는 등산로), 광장로(한치고개에서 칠갑산장을 지나 정상에 이르는 등상로), 천장로(천장호에서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 도림로(도림온천에서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 도림삼거리에서 천장로와 만남), 지천로(지천에서 삼형제봉을 거쳐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 지천삼거리에서 장곡로와 만남), 장곡로(장곡리 주차장에서 삼형제봉을 거쳐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를 일컬어 칠갑칠로라고 하고, 이 능선들이 부채살처럼 퍼져 있어서 부채살능선이라고 한다. 동쪽으로 천장호에 이르는 등산로가 천장로다. 천장로에서 도림온천으로 내려가는 도림로가 갈라진다. 백제시대 고찰인 도림사지와 백제 유적인 자비성(도솔산성)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도림로와 천장호의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천장로는 한가하면서도 옛 산길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라는데..... 다음 산행 때는 이곳을 꼭 보리라 기약해 본다.

 

*삼형제봉으로 가는 등산로 위의 잔설

 

칠갑산을 떠나 삼형제봉으로 향한다. 산등성이에는 아직 채 녹지 않은 잔설이 남아 있다. 지난해 12월인가 충남지방에는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는데..... 아마 그때 내린 눈인가 보다.

 

*잔설을 헤집고 올라온 노루발풀

 

무심코 걷다가 파릇한 이파리가 보이길래 다가가서 보니 등산로 한쪽 옆으로 노루발풀이 잔설을 헤집고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칠갑산에도 봄이 오고 있구나! 자연의 흐름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법..... 사실 노루발풀은 노루발과에 속하는 상록의 여러해살이풀로 5~6월에 하얀색의 꽃이 핀다. 겨울에도 초록색 잎이 달려 있고 그늘진 곳에서도 잘 자라므로 나무 밑에 심으면 좋다. 이와 비슷한 식물로는 매화노루발과 홀꽃노루발이 있다. 홀꽃노루발은 백두산에서 자라고 꽃이 줄기 끝에 1송이만 달리며, 매화노루발은 중부 이북지방에서 자라고 꽃줄기 끝에 1송이씩 피나 때때로 2송이도 달리며 잎끝과 잎밑이 뾰족하다.

 

옛날 민간에서는 뱀이나 벌레, 개에 물렸을 때 노루발풀을 찧어서 바르기도 했다. 꽃이 필 때 식물 전체를 캐서 말린 것을 한방에서는 녹제초(鹿蹄草), 녹함초, 파혈단이라고 하는데 피임약을 만들거나 각기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하였다. 녹제초의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달면서 써서 보허, 익신, 거풍제습, 활혈조경, 이뇨(補虛, 益腎, 祛風除濕, 活血調經, 利尿) 등의 효능이 있다. 민간에서는 심장병이나 고혈압, 류머티즘, 부인의 신허요통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간혹 쓰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한방에서는 지금 거의 쓰지 않는 약재다.


*칠갑산 남쪽에 있는 삼형제봉

 

30분 정도 걸려서 삼형제봉(544m) 정상에 올라선다. 삼형제봉은 칠갑산의 남쪽으로 고만고만한 세 개의 봉우리가 정답게 모여 있다. 세 개의 봉우리가 마치 한 형제처럼 모여 있다고 해서 삼형제봉으로 불린다. 다른 이름으로는 작은칠갑산이라고도 한다.

 

*

*생강나무 꽃봉오리

 

삼형제봉에서 잠시 머무르며 경치를 완상하다가 장곡로를 따라서 하산길에 오른다. 양지바른 산비탈에는 물이 오른 생강나무들이 더러 보인다. 꽃봉오리들이 금방이라도 막 터져나올 듯 하다. 생강나무의 가지를 꺾어서 냄새를 맡아보면 생강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 그래서 생강나무란 이름이 붙었다. 이른 봄철 꽃이 가장 먼저 피는 나무가 바로 생강나무다. 산수유꽃과 비슷한 노란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면 비로소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생강나무는 녹나무과에 딸린 낙엽관목으로 개동백, 황매목, 단향매, 새양나무, 아기나무라고도 한다. 생강나무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잎 뒷면에 털이 있는 털생강나무, 잎의 끝이 세 개로 갈라지지 않고 둥글게 붙어 있는 둥근잎생강나무, 잎이 다섯 개로 갈라진 고로쇠생강나무 등이 그들이다. 그런데 고로쇠생강나무는 전라북도 내장산에만 자라는 한국의 특산식물이다.

 

김유정이 쓴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은 붉은색 꽃이 피는 그 동백꽃이 아니라 생강나무꽃이다. 생강나무를 강원도에서는 동백이라고 한다. 생강나무꽃을 산수유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생강나무는 녹나무과이고 산수유는 층층나무과로 서로 다르다. 옛날에는 생강나무 씨앗으로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이나 등불용 기름으로 사용기도 했다. 생강나무의 어린 잎이 참새 혓바닥만큼 자랐을 때 따서 말렸다가 차로 마시기도 한다. 이것을 작설차라고 부른다. 또 잎을 말렸다가 튀각을 만들거나 나물로 먹기도 하는데, 생강향의 득특한 풍미가 있다.  

 

생강나무는 약간 맵고 신맛이 난다. 생강나무를 한방에서는 삼찬통이라고 하는데 타박상이나 어혈, 염좌, 두통, 기침, 산후풍에 효과가 있다.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약재다. 민간에서는 씨앗으로 약주를 담가서 마시면 근육과 뼈가 튼튼해지고 머리가 맑아 진다고도 하고, 또 간장질환이나 여성들의 산후병에 좋다고도 하는데..... 글쎄다. 생강나무로 약주를 담가서 마셔보기는 했는데, 향은 비교적 좋은 것 같았다. 한편 생강나무는 도가나 선가에서 귀하게 여기는 약재다. 도가의 신당에 차를 올릴 때 이 나무의 잔가지를 달인 물을 사용하는데, 그렇게 하면 신령님이 기뻐한다나 어쩐다나.....

 


*삼형제봉에서 장곡리 장승공원에 이르는 장곡로. 오른쪽 능선은 사찰로

 

장곡로는 길고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사찰로와 나란히 뻗어 있다. 이 능선에도 소나무와 참나무, 굴참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한두 군데를 제외하면 가파른 곳도 별로 없다. 송림 사이로 난 길을 걸으니 호젓하기가 이를 데 없다. 진달래와 철쭉도 꽃망울이 올라와 있다. 1시간 정도 걸려서 장곡리 장승공원으로 내려오니 아직도 해가 많이 남았다.

 

이왕 온 김에 백제의 천년고도인 부여에 들러서 가기로 한다. 여기서 약 30km 정도의 거리니까 그리 멀지도 않다. 부여읍에 들어와 백마강을 건넌다. 백제가 멸망할 때 의자왕과 함께 3천 궁녀가 스스로 몸을 던졌다는 백마강..... 청마산 기슭에 있는 영명사에 들르니 비구니스님이 버선발로 뛰어나온다. 스님의 모습에서 자유자재와 걸림이 없는 경지를 느낀다. 방에 들자 스님이 떡과 식혜를 내온다. 스님은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다. 여행도 많이 하는 여행가이기도 하고. 특히 중국, 인도, 네팔, 티벳여행을 많이 했다. 지금은 백두대간을 순례하고 있는 중이다.   



*간월도 간월암

 

스님과 함께 서해안 낙조를 보러가기로 한다. 목적지는 천수만에 있는 간월도. 논산 천안간 고속도로를 타고 홍성에서 천수만으로 들어간다. 천수만의 잔잔한 바다 위로 지는 낙조가 아름답다. 천수만은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천수만 방조제로 인해서 만들어진 간척지가 어마어마하게 넓다. 바다를 메워서 간척지를 만드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은 짓이다. 개펄의 가치는 간척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것을 두고 앞으로는 남고 뒤로는 판판이 밑지는 장사라고 했던가!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면 남극과 북극지방의 빙산이 녹아내리게 된다. 빙산이 녹아내리면 바닷물이 대량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동남아시아를 휩쓸었던 쓰나미가 다시 밀어닥친다면 천수만 간척지같은 곳이 가장 위험할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쓰나미를 기억할지어다!

 

간월도에서 저물어가는 천수만을 바라다 본다. 간월도는 행정구역상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속한다. 천수만 한가운데 떠 있던 작은 섬으로, 1980년대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뭍이 되었다. 예전에는 굴양식배나 드나들던 외딴 섬이었으나 지금은 어리굴젓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변했다. 간월도의 동쪽에는 간조 때는 섬이 되고 만조 때는 뭍이 되는 작은 돌섬이 하나 있다. 이 섬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창건했다는 간월암이 있다.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데서 간월암이라는 이름이 유래한다. 간월도에서 바로 앞에 있는 간월암을 바라보니 암자의 마당에는 무엇을 태우는지 불길이 환하다. 지금은 만조라서 간월암으로 건너갈 수가 없다.

무학대사가 처음 이곳에 작은 암자를 지었을 때는 무학사라고 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암자가 자연 퇴락되어 폐허가 된 절터에 1914년 만공 대사가 다시 암자를 세우고 간월암이라 불렀다. 법당에는 무학대사를 비롯 이곳을 거쳐간 고승들의 인물화가 걸려 있다. 무학대사가 여기서 수행하고 있던 당시 이성계에게 보낸 어리굴젓은 궁중의 진상품이 되었다고 한다. 간월도에서는 풍어제의 일종인 굴부르기 군왕제가 매년 정월 보름날 만조시에 간월도리 어리굴젓 기념탑 앞에서 벌어진다. 간월암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낙조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붉게 물들면 장렬하고 비장한 느낌이 든다. 어떤 때는 한없는 인생무상을 느끼기도 하고.....

 

홍성에서 달려온 후배와 함께 근처 횟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싱싱한 자연산 광어회와 우럭회가 올라온다. 개불과 소라, 새우, 멍게도 한 접시씩 나온다. 바지락으로 끓인 조개탕이 무척 시원하다. 소주 한잔에 나그네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 하다. 어리굴젓으로 밥을 비벼서 저녁을 먹는다. 어리굴젓이 간월도 특산물이라서 그런지 아주 맛있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정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다.

 

후배를 떠나 보내고 스님과 함께 부여로 향한다. 밤이 이슥해서 청마산 기슭 산사에 도착했다. 스님이 중국에서 왔다는 귀한 차 한 잔을 내온다. 사람은 찻잎을 딸 수가 없어서 원숭이를 시켜서 따오게 한다는 차라던가. 차향이 입안에 그윽하게 감돈다. 밤이 많이 늦었다.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 스님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귀로에 오르다.

 

 

 

 


 

2021.02.07 11:51:30 | 내 블로그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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