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스님께 묻습니다. / 불교를 정신적인 수행이라고 평하는 이유에 관하여 질문 :
불교의 모든 것은 마음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수행이라고
평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답 :
불교를 종교라기보다는 마음의 과학이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위대한 불교학자인 나가르주나의 논서에는 불교를 수행하려면
믿음과 지성의 기능을 조화롭게 사용해야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영어로 ‘종교’ 라는 말의 자세한 의미를 저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불교는 정신적 수행과 철학체계를 결합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째든 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을 세 종류로 나눕니다.
첫째는 눈앞에 명백히 보이는 현상들입니다.
우리가 직접 경험하거나 말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둘째는 논리적 추론을 필요로 하지만 명백한 전제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종류의 현상들입니다.
셋째는 제3자의 증언에 의지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애매모호한 현상들’입니다.
불교에서는 그 제3자가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우리가 그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증언일지라도 부처님의 대한 맹목적인 신앙 때문에
받아드리지는 않습니다. 논리적인 이성과 이해로 검사할 수 있는
주제나 현상에 대해서 부처님의 말씀을 적용했을 때
그것이 믿을 만하다고 증명되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증언을 받아들입니다.
그런 주제들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을 믿을수 있다고 증명된 것으로 추론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명백하지 않은 주제들에 관해서도 부처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으로 보면 믿음의 역할이 있지만 여전히 불교는
궁극적으로 이성과 지성과 이해에 의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철학체계와 정신적 수행의 결합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불교의 방법론에서 특히 대승불교의 방법론에서 이성과 이해를 크게 강조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두 가지 범주로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류의 불교경전들은 문자 그대로 명확하게 해석되지만,
다른 종류의 불교경전들은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니라 해석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경전들이 문자 그대로 명확한 경전인지 아닌지,
문자의 밑에 깔린 의미를 알기 위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를 우리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요?
그것은 논증에 의거해서만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궁극적으로 이해와 조사가 재판관입니다.
그런 정신은 부처님이 하신 말씀에도 명백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비구들과 현자들은 존경하는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말을 받아들이지는 마시오.
대장장이가 여러 공정을 통해서 금을 시험하고 최종적으로 판단을 내리듯이,
그대들이 분석하고 조사한 후에 나의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되면 받아들이시오.”
이와 같이, 부처님 자신이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을 더 조사할 자유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을 근본적인 물질주의자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오직 믿음에만 의지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불교는 그 두 종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불교는 마음의 과학이기 때문에,
믿음을 중시하는 편에서는 불교를 종교가 아니라고 거부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불교는 매우 정신적입니다.
불교는 명상과 기도 같은 것들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물질주의자들은 불교를 거부합니다.
이렇게 불교는 그 둘 사이에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불교의 장점일지도 모릅니다.
불교는 그 두 극단을 잇는 다리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그 두 극단의 세계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불교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가끔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