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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생애 12강 / 고향을 방문해서



* 12강 : 고향을 방문해서


 
* 여인도 수행하면 깨달을 수 있다

부처님이 사위성에 머무는 동안 고향인 카필라성을 방문한 적이 있다. 분명치는 않지만 성도 후 5-6년쯤의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향에서 부왕을 위시한 가족과 친지들을 만난 일은 참으로 감격적이었다. 샤카족의 사람들도 부처님을 열렬히 환영했으며 이때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귀의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계율에 뛰어났던 지계제일의 우바리존자는 샤카족의 이발사였으며, 부처님을 시봉하며 비서 역할을 했던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었다. 또 천안제일의 아니룻다도 부처님의 사촌으로 이들은 모두 부처님이 고향을 찾아갔을 때 출가한 사람들이다. 그밖에도 많은 샤카족의 젊은이들이 출가했다.
 
또한 부처님의 카필라성 방문은 여성 출가의 효시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부처님의 이모이자 부처님을 양육하기도 했던 마하파자파티 부인은 오백 명의 샤카족 여인들과 함께 부처님을 찾아와 출가를 허락해 주실 것을 간청하였다. 부처님은 처음에는 여성의 출가를 반대하였다. 당시 상황으로 여성이 여기저기 유행을 하며 교단생활을 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사위성으로 돌아오자 마하파자파티와 오백 명의 여인들은 스스로 머리를 깎고 기원정사까지 와서 다시 출가하기를 간청하여 드디어 허락을 하게 되었다. 이때 아난존자의 역할이 상당히 컸다고 한다. 부처님이 여성의 출가를 거절하자 마하파자파티 부인은 아난존자를 찾아가 도와줄 것을 간청했다. 그래서 아난존자는 부처님을 만나 뵙고 이렇게 여쭈었다.

“여인도 수행하면 깨달을 수 있습니까?”
“물론 그렇다.”
“그렇다면 여성의 입단을 허락해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부처님은 여성출가자는 비구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하며, 비구가 없는 곳에서 여름의 안거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등의 여덟 가지 계[八敬戒]를 지키는 조건으로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였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볼 때 이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획기적인 일이었다. 당시 인도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로 보아 비구와 동등한 성직을 부여한 것 자체가 파격적인 조치였던 것이다. 이것은 여권신장의 차원으로 보아도 대단한 일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종교 가운데 여성이 성직을 부여받고 있는 예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성의 출가는 불교의 평등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남녀의 구별이나 신분의 귀천이 없다. 모두가 여여한 불성을 지닌 고귀하고 평등한 존재이다. 부처님이 샤카족의 이발사인 우바리를 아니룻다를 비롯한 여러 왕자들보다 먼저 출가시킨 것도 불법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혹 직장에서 여성이라고 차별하거나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여성이 운전을 한다고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불법 안에서 손에  손잡고 진리의 길을 함께 가는 소중한 벗이기 때문이다.

 
* 부처님으로부터 상속받은 라훌라

부처님이 카필라성을 방문하였을 때 어린 아들인 라훌라도 출가하여 행자가 되었다. 라훌라는 처음 뵙는 아버지인 부처님께 상속을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부처님은 사리불을 시켜 머리를 깎도록 하였다.

라훌라는 사미승으로 기원정사에서 공부하며 성장했다. 그런데 라훌라는 아직 나이가 어렸으므로 장난도 곧잘 했다. 사람들이 부처님이 계신 곳을 물으면 일부러 엉뚱한 곳을 가리켜 주어 골탕을 먹이기도 하였다. 하루는 이를 알게 된 부처님이 라훌라를 찾아갔다. 부처님은 라훌라에게 물을 떠다가 자신의 발을 씻기도록 했다. 다 씻은 다음 부처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라훌라야, 너는 이 물을 마실 수 있겠느냐?”
“마실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발을 씻어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너도 이 물과 같으니라. 이 물은 본래 깨끗하였는데 발을 씻어 더러워진 것이다. 너는 왕의 손자로 태어나 세속을 버리고 출가하였는데, 수행에는 힘쓰지 않고 계행도 지키지 않으니, 삼독(三毒)의 때가 마음에 가득하여 마치 이 물처럼 더렵혀져 있느니라.”

라훌라는 아버지 앞에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부처님은 다시 라훌라에게 물을 버리고 오라고 하였다. 라훌라가 물을 버리고 오자 다시 말하였다.

“라훌라야, 너는 이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왜 먹을 수 없느냐?”
“손발을 씻은 물그릇이기 때문입니다.”
“라훌라야, 너도 이 그릇과 같으니라. 출가한 사람이면서 수행은 게을리하며,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니 더러운 물을 담은 그릇과 다를 게 없지 않느냐? 그런 그릇에 마음의 양식이 될 것을 담을 수 있겠느냐?”

이렇게 엄중히 꾸짖은 다음, 부처님은 그 물그릇을 발로 힘껏 걷어찼다. 물그릇은 저만치 굴러 떨어졌다. 라훌라는 놀라 부처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부처님은 준엄한 표정으로 다시 라훌라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 물그릇이 깨지는 것을 걱정하느냐?”
“아닙니다. 값이 헐한 것이므로 별로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너도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괴롭혔으니, 이 물그릇처럼 그들로부터 사랑이나 아낌을 받을 수 없지 않겠느냐?”

이러한 부처님의 말씀에 라훌라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 후 열심히 정진하다가 스무 살이 되던 해,

“몸과 마음을 포함한 모든 것이 다 흐름 속에 있고 무상하다고 보아야 한다. 자비심을 가지고 중생을 마음속에 포용하고 번뇌를 없애라.”
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라훌라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불리었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훌륭한 행과 실천을 잘 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부처님은 아들인 라훌라에게 훌륭한 상속을 해준 것이다. 아직 어려서 별 생각 없이 공부를 게을리 할 때 삶의 지표를 세워주는 일, 이것이 참다운 상속이 아닐까.
 

* 물과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소중한가?

부처님이 고향을 방문했을 때 물싸움을 말린 일이 있었다. 고향인 카필라국의 이웃에는 같은 샤카족인 콜리국이 있었다.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 부인, 이모인 마하파자파티, 부인인 야쇼다라 등이 모두 콜리국 사람이었기 때문에 카필라국과는 예로부터 깊은 관계에 있었다.

그런데 한 번은 두 나라 사람들 간에 물싸움이 일어났다. 두 나라 모두 농업국이었으므로 물은 소중한 자원이었다. 두 나라 사이에는 로히니란 강이 흐르고 있는데, 마침 가뭄이 극심해 강물이 거의 바닥이 난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물을 서로 자기 쪽으로 끌어오기 위해 싸움이 일어났던 것이다. 양편이 살기가 등등해져서 금방이라도 치고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부처님은 마침 그 소식을 듣고 급히 로히니 강변으로 달려갔다. 부처님을 보자 양쪽 사람들은 모두 합장을 했다. 부처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들은 물과 사람,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소중합니까?”
“물론 사람이 더 소중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물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몇 사람이 다쳤을지도 모릅니다.”
부처님의 이 말에 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하나 들면서 지금의 이 싸움이 서로에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차근차근 설명하였다.
 
옛날 깊은 산속에 사자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바람이 불어 나무의 열매가 사자의 얼굴에 떨어지게 되었다. 화가 난 사자는 이 나무를 꼭 혼내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며칠 뒤 마침 한 목수가 수레바퀴에 쓸 재목을 구하러 산에 왔다. 사자는 이번이 나무를 혼내 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자는 목수에게,

“수레바퀴에 쓸 재목으로 이 큰 나무를 베어가라.”
고 일러주었다. 목수는 사자의 말대로 그 나무를 베어버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무가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나무 역시 사자에게 복수를 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무는 목수에게,
“사자의 가죽을 바퀴에 쓰면 아주 질기고 좋다.”
고 했다. 목수는 마침내 곁에 있던 사자도 잡아버렸다. 이처럼 사자와 나무는 하찮은 일로 서로 시기하다 목숨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부처님은 지금 벌이고 있는 물싸움이 마치 이 사자와 나무의 싸움과 같이 아주 위험하다고 하였다.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서로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부처님의 말씀에 양쪽 사람들은 서로 부끄러워하면서 돌아갔다고 한다.

이처럼 부처님은 말로만 하는 이론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문제가 있으면 삶의 현장에 직접 달려가 중생과 함께 실제적인 문제를 풀어 가는 산 가르침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불교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생생한 삶의 현장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 석가족의 비극

부처님의 고향에서 있었던 일 가운데 하나를 더 소개할까 한다. 이 일은 아주 비극적인 일에 해당된다. 석가족은 인접한 코살라국의 새로운 왕인 비유리에 의해서 멸망했는데, 그때 부처님께서 취한 태도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비유리 왕은 군대를 동원하여 카필라성을 치려고 했다. 그때 부처님은 비유리와 군사들이 지나가려고 하는 길목을 앞질러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 잎이 무성한 큰 나무가 있는 데도 부처님은 잎이 적은 고목나무 아래 앉아 계셨다.

비유리는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어째서 무성한 나무 아래 앉지 않고 잎이 적은 고목나무 아래 앉아 있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부처님은,
“친족의 그늘은 시원하다.”
는 말 한마디만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비유리는 군대를 돌려서 퇴각시켰다.

두 번째로 비유리가 군대를 동원할 때도 부처님은 같은 행동을 보였다. 역시 비유리는 정복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세 번째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네 번째에는 부처님도 나무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는 일을 그만 두었다. 그리하여 비유리는 석가족을 정복하는 뜻을 관철시켰다.

여기에서 고목나무는 석가족을 나타내고 무성한 큰 나무는 코살라국을 나타낸다. 이처럼 부처님은 쓰러져 가는 고목과 같은 고국에 한없는 애정을 보여 주었다. 고국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신 부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처님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이나 인간적인 면은 이런 데서 잘 나타나는 것 같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부처님께서 세상일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현장에 달려가서 진력하신 모습을 볼 수 있다.

흔히 부처님을 여래(如來)라고 부른다. 이 말은 진리로부터 온 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진리의 세계로 갔다가[如去] 우리의 고민과 아픔을 함께 하고 그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다시 오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도 우리는 부처님의 중생 사랑, 현실 사랑의 따스한 모습을 알 수 있다.


2019.10.19 10: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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